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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교수의 내가 본 함석헌 34
김용준 교수의 내가 본 함석헌 34
  • 김용준
  • 승인 2004.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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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CF 활동때의 어던 기억과 민청학련 주변

▲1970년대 함석헌의 모습 ©

나의 기억으로는 한국 기독자교수협의회란 전국의 기독교 교수들이 일년에 한번 연초에 주로 수유리에 위치하고 있는 크리스챤 아카데미 하우스에 모여 1박2일 코스로 일정한 주제로 일종의 세미나를 가지며 서로 신년 인사를 나누는 것이 이 협의회가 갖는 행사의 전부였다. 그렇기 때문에 물론 회원도 있고 간단한 회칙에 회장 총무직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무슨 재정이 잇는 것도 아니고 그때그때 참석자들이 각자가 내는 회비와 주로 기독교계의 대학 내지는 기관에서 다소의 찬조금을 얻어서 회비만 가지고는 부족한 경비를 메꾸는 것으로 한해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따라서 회장이라고 해보았자 다음해의 연회를 위해 연초에 모이는 절차를 작성하는 일이 고작이었다. 예컨대 다음해의 년회의 세미나의 주제를 무엇으로 한다던가 그에 따른 발제강연 및 질의 토론자를 선정하는 등등의 일이 중요한 업무였다. 회장의 임기래야 일년이 고작이었다. 그야말로 친목회와 비슷한 성격의 모임이었다.

그러기에 처음으로 발제강연을 맡은 사람을 중앙위원으로 뽑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1968년도에 뽑힌 회장이 감리교 신학교의 김용옥 교수였고 다음해 즉 1969년에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현영학 교수가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기억은 확실치 않지만 현영학 교수 때부터 회장의 임기를 한해 늘려 2년으로 회칙을 바꾼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회장으로 선출된 해가 1971년도 초였다고 생각된다. 내가 회장직을 맡고 있는 동안 숭실대학교의 조요한 교수가 총무직을 맡았다. 후에 알고보니 조요한 교수가 나보다 나이가 하나 위였는데 순서가 엇갈린 셈이다. 그러나 조요한 교수는 내색도 않고 2년간 총무직을 너무나도 충실하게 담당해 주었다. 이름 그대로 조용한 신사였다. 일부러 그러자는 것은 아니었는데 1968년도에 발제강연을 맡았던 노명식 교수, 양호민 선생 그리고 조요한 총장(후에 숭실대학교 총장을 역임했기에 우리는 그를 조 총장이라고 부르고 있었다)과 함께 한달에 한번씩 점심을 나누는 월례행사를 오래전부터 즐기고 있었는데 조 총장은 지병인 천식과 폐렴으로 세상을 떠난지 두 해가 되온다.

날벼락식으로 KSCF 부이사장 돼

생각해보면 이치에 맞는 일이었지만 기독자교수협의회 회장은 자동적으로 한국기독학생운동 총연맹(약칭 KSCF)의 이사로 취임하게 되 있었다. 그래서 1971년 회장이 되면서 동시에 KSCF이사회에도 참석하게 되었다.

정상복 간사의 부지런한 활동으로 내가 회장을 맡고 있는 동안에 부산 대구 대전 광주 전주 그리고 서울의 기독자교수협의회가 조직되었고 각각의 협의회는 월례회 등을 열어 기독자교수들의 친목 및 활동(주로 학제간의 세미나 개최 등)을 활발하게 진행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KSCF 내부에서 학생들과 사무당국 사이에 불협화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 당시 KSCF의 학생 간부들이 주로 후에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심지어는 사형선고까지 받게되는 이철, 유인태, 나병식, 나상균 및 황인성 등등이었고 당시 KSCF 사무총장은 신인현 목사였다. 한번은 이사회를 연다하여 참석했더니 당시 이사장님이 김치묵 목사님이셨는데 학생들과 사무당국간의 불협화음이 심하니 아무래도 대학생들의 문제이기 때문에 대학교수들의 모임인 기독자교수협의회 회장이 대학생들과 사무당국 사이의 알력을 해결하는데 적임자라고 하여 나를 부이사장으로 선출해버리는 것이었다.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이사회에 참석했다가 날벼락식으로 KSCF의 부이사장이 되고 말았다. KSCF의 사무총장인 신인현 목사와 학생 간부들 사이의 갈등은 좀체로 가라앉을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요새 식으로 표현한다면 코드가 서로 맞지 않는다고나 할까? 당시 학생 간부들은 소위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되는 3선 개헌 반대투쟁과 맥을 같이하고 있었다.

각 대학의 동맹휴교, 계속되는 정부 당국의 강압과 비상사태선포, 연이은 전국비상계엄 선포하의 유신헌법 국민투표실시, 헌정사상 초유의 통일주체국민회의 제8대 박정희 대통령 선출 그리고 유신헌법 공포 등등 1972년까지 겉잡을 수 없는 군사독재정부의 일방통행적 횡행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와 같은 학생간부들의 정서와 신인현 사무총장의 학생간부들에 대한 이해는 그야말로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내가 부이사장이 된 다음부터 김치묵 이사장은 이사회에 출석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사회의 사회는 자연히 부이사장인 내가 맡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KSCF는 학생단체였고 그들의 간부들의 반항에 부딪힌 신인현 사무총장은 드디어 사표를 제출하는 파경에 이르고 만다. 결국 이사장 대행으로서 부이사장인 나는 신인현 사무총장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72년이 거의 저물어 가는 때였다고 생각된다. 기독자교수협의회 회장직은 1973년에 접어들면서 노명식 교수를 추대했으나 회장직을 떠나면서 나는 KSCF의 부이사장직은 그만둘 수가 없었다. 사무총장의 사표가 수리되니 결국 부이사장인 내가 차기 총장이 선임될 때까지 사무총장 직무를 대행할 수밖에 없게 되자, 이사회 결의를 거쳐 결국 KSCF 사무총장 직무대행이라는 칭호까지 얻게 되었다. 이러한 경위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소위 민청학련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다. 물론 민청학련 사건의 행동 중심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민청학련 사건의 주동자의 대부분이 KSCF의 학생간부이고 보면 KSCF의 사무총장대행은 이들의 방패 역할을 담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러분, 나 이제 놀라운 말을 하나 하렵니다. 이것은 사실 이 시간까지 이 강연회를 같이 마련해온 동지들한테도 아직 발설하지 않은 말입니다. 나는 요새 남북통일하자는 소리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이 납니다. 아직 결정된 건 아닙니다마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내가 이날껏 평화통일을 강조해온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러던 내가 왜 갑자기 그 주장을 그만두려나? 들리는 말이 있어서 그럽니다. 인지 아닌지 정치란 것이 본래 민중은 모르게 쑹쑹이로 되는 것이니 진상을 알 수는 없지만 돌아가는 말이 표면으로는 남북협상을 한다 하면서 사실은 요새 비밀리에 이북에서 어떤 거물급의 사람이 왔다 갔다고 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큰일입니다. 왜? 그 뜻이 뭐냐하면 표면으로는 협상한다 하면서 막 뒤에서는 흥정을 한단 말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그것은 나라일로가 아니라 자기네의 정권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할 때 무엇으로 변명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민족통합을 참으로 하려면 우리의 대적이 누군가부터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분열시킨 도둑이 누구입니까? 일본? 미국? 소련? 중공? 아닙니다. 어느 다른 민족이나 이데올로기 때문이 아닙니다. 국민을 종으로 만드는 국가지상주의 때문입니다. 이제 정치는 옛날처럼 다스림이 아닙니다. 통치가 아닙니다. 군국주의 시대에조차 군림은 하지만 통치는 아니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참 좋은 군주는 그래야 한다 말입니다. 그런데 이 민주주의 시대에, 나라의 주인이 민중이라면서 민중을 다스리려해서 되겠습니까? 분명히 말합니다. 남북을 구별할 것 없이 지금 있는 정권들은 다스리려는 정권이지 주인인 민중의 심부름을 하려는 충실한 정부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이 설혹 통일을 한다해도 그것은 정복이지 통일이 아닙니다. 민중의 불행이 더해질 뿐입니다. 나는 그래서 반대합니다.> (전집 12:34-35)

"우리를 분열시킨 도둑은 누구입니까?"

이상은 1972년 6월 20이리 대성빌딩에서 열린 民主守護國民協議會 주체 강연회에서 하신 함 선생님의 강연의 일부이다. 요새 말로 함석헌 선생님은 분명히 경계인은 아니셨다. 선생님께 직접 들은 이야기이지만 수없이 외국여행을 하시는 동안에 이북으로부터 여러 차례 북행 권유를 받으셨다는 것이다. 이북에 당신의 큰아드님과 손자 손녀들이 살고 있었으며 캐나다에 거주하는 친척을 통해 손자들로부터 편지도 받으셨는데 그 편지를 직접 보여주신 것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의 선생님은 그리고 그 후에도 내가 KSCF와 깊숙하게 관여하고 있었던 사실을 모르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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