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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그토록 불안한 시선
문화비평: 그토록 불안한 시선
  • 민경진
  • 승인 2004.03.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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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자를 242개나 기증 받았다고요? 대단한 숫자입니다. 그 정도면 복제 기법이 완벽해 질 때까지 충분히 실험을 반복할 수 있었겠지요."

황우석 박사의 인간 줄기 세포 복제 성공 소식이 전해진 날, 서구 과학자들의 관심은 황 박사의 연구팀이 어떻게 242개나 되는 난자를 확보할 수 있었는지 그 비결에 쏠렸다. 그도 그럴 것이 황 박사의 연구팀에 앞서 비슷한 실험을 성공시킨 미국의 바이오 벤처 기업 ACT의 연구진은 겨우 18개의 난자를 확보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그것도 실험에 참여한 두 명의 여자에게 각각 4천 달러를 쥐어주고 나서야.

한국 정부가 황우석 박사의 연구진에게 지급한 연구비는 연 5억원이었다. 황 박사가 비슷한 연구를 미국에서 진행했다면 난자 구입에만 무려 1억3천만 원 가량의 예산을 쏟아 부어야 했다는 뜻이다. 설령 예산이 넉넉하다 해도 난자를 확보한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체세포 복제 연구에 대한 미국 정부의 엄격한 규제와 종교 단체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반감 탓에 미국에서라면 그 많은 난자를 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클린턴 정부는 1997년 인간 복제 연구에 대한 연방 정부의 예산 지원을 대통령령으로 금지시켰고 부시 정부 역시 2001년 8월 이미 진행 중인 줄기 세포 연구 외에 추가로 예산 지원을 받을 수 없도록 규제한 바 있다. 결국 미국의 인간 체세포 복제 연구는 연방 정부의 규제에서 비껴나 있는 ACT 같은 민간 기업의 연구실에서 따가운 사회적 시선을 피해 비밀스럽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물론 줄기세포 연구가 윤리적 논란이 많은 인간 복제로 바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황 박사 역시 인간 복제(reproductive cloning)가 아니라 치료를 위한 복제(therapeutic cloning)로 자신의 연구를 한정 짓고 있다.

핵 치환에 성공해 배아로 발전한 복제 세포에서는 줄기 세포를 추출할 수 있다. 줄기세포는 신경, 근육, 눈, 간 등 인간의 모든 장기로 발전할 수 있어 난치병에 시달리고 있는 수많은 중환자들에게 단비 같은 소식이다. 뇌졸중으로 신경세포가 파괴돼 반신불수인 환자라면- 필자의 부친 역시 뇌졸중 환자다- 자신의 체세포 복제를 통해 얻어낸 줄기 세포에서 뇌신경 세포를 확보해 이식하면 거부 반응의 우려 없이 완치를 기대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전 인구의 약 3분의 1인 약 1억3천만 명이 줄기 세포 연구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문제는 치료용 복제와 인간 복제의 경계가 매우 모호하다는 것이다. 줄기 세포 복제 기술이 일단 공개된 이상 지구 어느 곳에선가는 치료용 복제의 한계를 넘어 인간 복제를 시도할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황우석 박사가 무려 242개나 되는 난자를 비교적 '손쉽게' 얻을 수 있었던 한국적 상황에 주목하는 서구의 과학자들은 인간 복제 기술의 남용이 가장 먼저 이뤄질 나라 중 하나로 한국을 눈 여겨 보고 있는 것 같다.

매년 수 만 건의 낙태가 사회적 묵인 아래에 일삼아 벌어지고 자식의 성공에 대한 집착이 유달리 강한 한국에서 인간 복제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일도 벌이지 말라는 보장이 없을 것이다.

국내에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고 있지만 한국과 더불어 체세포 복제 연구를 비롯한 생명 공학 연구가 가장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나라가 중국이다. 미국의 과학자들은 똑 같은 장비와 기술력을 지니고서도 아시아의 연구진에게 자신들이 뒤지는 것이 미국 정부의 엄격한 규제와 사회적 분위기 탓이라고 여기고 있다. 한국의 연구진들이 해 낼 수 있다면 자신들도 법적 족쇄만 풀어주면 금새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불만이 팽배한 것이다. 태어나기 전에는 태아를 제대로 된 생명체로 여기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탓에 윤리적 구속 없이 수정란을 자유롭게 조작해 보는 중국이나 한국이 아니라면 이런 연구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몇 년 전 9시 뉴스를 보다 필자는 황당한 장면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아침 조회를 하는 대구의 어느 초등학교를 카메라가 비추고 있었는데 한 학급의 아이들을 남녀로 나누어 줄을 세우니 여자 아이의 수가 남자 아이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 많은 여자 아이들이 태어나지도 못 하고 산부인과의 쓰레기통으로 사라진 것이다.

자식의 명문대 진학을 위해서라면 빚을 내서라도 8학군의 전셋집으로 이사를 가고 태아 감별로 뱃속의 여자 아이를 태연하게 낙태시키는 생명 윤리 의식 0점의 나라에서 치료용 복제가 아니라 아이큐 200짜리 아이, '얼짱' 아이, '몸짱' 아이가 산부인과에서 대량 생산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황우석 박사의 연구 성과를 두고 한국의 언론은 올림픽 금메달을 따거나 월드컵 4강이라도 진출한 양 환호 일색의 보도를 하고 있지만 정부의 지원금까지 받아 이뤄진 연구 결과를 두고 서구 언론이 마치 아이 손에 식칼을 들려 준 것처럼 우리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것을 그저 시기심에 눈이 먼 탓이라고 무시해 버릴 수 있을까.

민경진/ 미디어이론가, 오마이뉴스 국제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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