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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풍경]-불교 다르게 읽기(『탈식민시대 우리의 불교학』,『한국 중세의 불교의례』,『유식무경(唯識
[책들의 풍경]-불교 다르게 읽기(『탈식민시대 우리의 불교학』,『한국 중세의 불교의례』,『유식무경(唯識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1.04.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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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4-02 00:00:00
바야흐로 종교도 상품이 되는 시대다. 아니, 종교마저 상품이 되는 것이 아무렇지 않게 여겨지는 시대다. 불교의 상품들은 아직 개발의 여지가 많고 자본주의가 심화될수록 효용가치도 함께 커져간다. 자본의 무한질주에 질린 이들은 산사의 고즈넉한 풍경과 참선의 고요함에 열광한다. 상류층의 새로운 문화가 된 ‘선’(禪, Zen) 열풍은 세기말의 흉흉한 마음들을 파고들며 빠르게 유행했다. 禪 카페, 禪 화장품, 禪 음악 등 ‘고급스러운 심플함’ 뒤에는 인도로, 네팔로, 티베트로, 깃털처럼 가벼워지기 위해 배낭을 짊어진 여행객이 줄을 잇고 도심의 선방은 성업중이다. 버리고 인연 맺지 않음을 본령으로 하는 불교에 관한 상품들이 개발되고 저항 없이 유행되는 것은 지독한 모순이다.

불교학 방법론의 두 모색

어수선한 한국 불교 주변을 바라보는 불교학은 어떤가. 최근 발간된 두 권의 불교학 관련 책을 통해 현재진행형인 이슈들을 짚어볼 수 있을 듯하다. 심재관 강릉대 교수(철학과)의 ‘탈식민시대 우리의 불교학’을 가로지르는 키워드는 90년대 이후 화두로 등장한‘탈식민 담론’이다.
“한국 불교계 지식인들이 다소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식의 식민성이 정치적 식민주의의 종결과 더불어 끝났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근대적 학문의 이식은 여전히 외국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지식인들은 서양의 지적 헤게모니에 계속 종속되고 있다.”날카롭게 벼려진 비판의 칼끝은, 짐승의 터럭 한 올, 우주의 먼지 한 톨에도 부처가 들어있다고 가르치는 교리가 아니라, 서구 근대 불교학의 방법론을 발빠르게 등에 업은 몇몇의 학자들에게로 향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수입되는 것은 그들의 후광일 뿐이고, 근대적 방법의 토착화를 위한 어떤 노력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주체도 타자도, 전통도 근대도 아닌 이상한 자세로 엉거주춤 서 있는 것이다”는 심 교수의 비판은 서구 시각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거부와도 통한다.
‘한국 중세의 불교의례 : 사상적 배경과 역사적 의미’의 저자 김종명 동국대 교수(철학과)는 바로 심 교수가 자신의 책에서 실명으로 비판하고 있는 학자 중의 한 사람이다. 심 교수의 비판과는 상관없이, 외국에서 불교를 연구한 김 교수의 눈에 비친 한국 불교학계는 연구풍토가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 척박한 땅이다.
‘한국 중세의 불교의례’는 고려 불교의례의 탄생 배경과 성격, 역사적 의미를 분석한 저서로, 왕실의 후원 아래 자주 개최되었던 불교의례들의 기원과 의미, 형태, 특징과 절차들을 각종 문헌과 수치들을 통해 밝히고 있다. 김 교수는 먼저 기존의 ‘고려불교=호국불교’의 도식은 틀린 것이라고 지적한다. 연등회, 팔관회 등 엄청난 물량이 투입되는 화려한 행사가 계속되면서 고려 불교는 고단한 민심을 어루만지는 생활 불교의 자리를 잃고 왕실의 불교, 낭비의 불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고려에서 불교의례를 개최한 결과가 왕권 강화나 국민적 공감대 형성에 기여한 증거는 찾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불교 의례에 대한 연구를 통해 김 교수가 알리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그는 종교사가 종교사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면서, “고려 불교의례의 성격을 규명하는 연구는 종교를 통한 한국인의 삶 자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김종명 교수 역시 한국의 불교학 풍토를 비판하고 있지만, 이유는 심재관 교수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남의 것을 무턱대고 받아들여서”가 아니라, “남이 차려놓은 밥상조차 제대로 받아먹지 못하”고 있다고 보기기 때문이다. 보존자료가 부족하고 검증이 허술한 것은 기본이고, 대표적인 승려들의 저서도 외국의 연구가 더 깊이 있고 상세한 경우를 예로 들며, 그는 서구 연구에 대한 합리적인 수용을 강조한다.
이 책들이 함께 관심을 끄는 이유는 이렇듯 공통된 주제를 상반된 태도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문의 식민주의에서 벗어나는 것과 서구의 연구성과를 적절히 받아들이는 것은 어쩌면 손바닥과 손등처럼 함께 가는 것은 아닐까.
두 책이 불교학의 방법론을 다룬 ‘불교 밖’의 책이라면 한자경 계명대 교수(철학과)의 ‘唯識無境 -유식 불교에서의 인식과 존재’는 불교를 지탱하는 이론적 토대인 유식 불교의 본질을 다룬 ‘불교 안’의 책, 한마디로 불교철학서다. 한 교수는 유식불교의 본질인 “오직 識(일체의 주관적 마음 상태)만 있고 境(존재하는 세계, 감각의 대상)은 없다”는 명제가 비현실적이라는 오해로부터 관념론의 본질을 보호하려 한다. 관념론은 세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의 대상인 ‘세계’와 주체인 ‘나’의 조화와 합일을 꿈꾸는 철학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세계와 주체의 합일 꿈꾸기

“나는 관념론자이다. 나는 현미경으로 세계를 관찰하기보다는 눈을 감고서 사색에 잠기기를 더 좋아한다. 나는 왜 관념론자일까? 인식과 존재, 정신과 물질, 나와 네가 대립되고 분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하나라는 것, 영혼의 깊이와 세계의 깊이에서 우리 모두는 뗄 수 없는 하나로 융합돼 있다는 것, 그 예감이 나를 관념론자가 되게 한 것이다.”어쩌면 한 교수가 꿈꾸는 관념론의 세계는 이 세상 어떤 것도 외톨이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불교의 연기사상과도 통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분법이 사라진 이상세계, 타아의 구별 없는 조화롭고 평등한 세계가 곧 불교가 꿈꾸는 극락이 아니겠는가.
‘세속화’와 ‘수행의 부재’라는 심각한 불교 외적인 문제들과 함께 간화선과 위빠사나 논쟁 등 내부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다툼들이 한국 불교를 無心의 자리에서 멀리 밀어놓는 듯 하지만, 그 멀어진 자리를 메우기 위한 학자들의 노력이 돋보이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알고 보면 無我의 세계는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 원효와 지눌이 평생 걸려 찾고자 했던 것은, 진리는 멀리 있지 않다는 진실은 아니었을까.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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