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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대통령과 역사의식
<대학정론> 대통령과 역사의식
  • 논설위원
  • 승인 2000.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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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1-09 11:57:13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지원하려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국민’의 건전한 양식을 파괴하고 급기야 국론분열의 양상까지 초래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해 5월 대구의 한 모임에서 국고지원을 약속하고 스스로 건립추진위원회의 명예회장직을 맡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문제제기가 있어왔지만, 비판적 여론을 무시하고 추진된 정부 지원책은 급기야 ‘박정희 기념관 반대 국민연대’를 출범시켰고 ‘10.26 재평가와 김재규장군 명예회복 추진위원회’ 결성식을 가져왔다. 그 사이 ‘박정희신드롬‘이 명멸하였고, 지난해 지원을 결정했던 국회조차 여론에 밀려 그 백지화와 예산 추가지원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여론의 핵심은 정치논리에서 나온 국고지원이 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의 역사인식을 호도할 위험성이 있으니 전면 재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립군을 토벌하던 일본군 장교이자 쿠데타로 헌정질서를 유린하고 민주화와 민족통일의 길에 매진하였던 수많은 애국인사들을 탄압해오다 심복의 총에 맞아 생을 마감한 박정희를 ‘근대화 치적’을 이룬 전직대통령으로서 기념한다고 했을 때 어떠한 결과가 올 것인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과정은 어떠하든 결과가 중요하다고 가르쳐야 하는가. 무조건 잘살고 보자는 태도가 확산되고 있는 현 세태를 어떻게 추스리려고 하는가.

평가는 무엇보다도 객관적이고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일시의 정치적 목적에 따른 평가는 그 수사가 아무리 현란하다고 하더라도 역사적 평가의 시험대를 통과해야만 ‘기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청산하고 해결해야할 부끄러운 과거를 많이 가지고 있다. 주체적으로 나라를 이끌지 못한데서 오는 어두운 과거는 저 밑에서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가까이는 독립군과 친일파, 조금 더 멀리로는 東學軍과 守城軍의 목소리가 아직도 완전히 잦아지지 않은 상태이다. 이 모두는 우리가 지혜와 시간을 가지고 같이 풀어가야 할 숙제인 것이다. 그런데 이번 정부의 졸속한 기념관 건립추진계획은 무엇인가. 그렇지 않아도 사기가 떨어져 있는 국민들을 위로는 못할 망정 정부가 나서서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민의 건전한 상식을 망가뜨려서야 되겠는가.

현 단계에서 정부가 지금껏 해오던 방식으로 기념관건립 추진계획을 밀어부친다고 했을 때, 그것을 결사코 반대하는 이들의 목소리로 인해 박정희의 치부가 낱낱이 드러난다고 했을 때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고인은 물론 현 김대중 대통령에게도 큰 부담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지금은 어느 한 대통령의 기념관을 지을 때가 아니다. 오히려 과거 대통령들의 행적을 객관적으로 살피고 그 한계까지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역대 ‘대통령자료관’을 세우는 것이 마땅하다. 국고는 바로 그런 곳에 쓰여져야 한다. 마침 얼마 전 지방자치단체가 엄청난 돈을 들여 대통령의 고향에 노벨상수상 기념공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가 대통령의 지시로 취소하였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마찬가지다. 김대중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 박정희기념관 건립 추진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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