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0-10-20 19:53 (화)
[대학정론] 권력자들의 성의식
[대학정론] 권력자들의 성의식
  • 교수신문
  • 승인 2020.07.21 10: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에 일어난 권력자들에 의한 일련의 성추행 사건과 그로 인한 비극적 삶은 정말로 충격적이다. 성과 관련한 그들의 표리부동한 행태는 신분의 지위와 그에 걸맞은 인간의 품격이 얼마나 사회적 기대 수준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사회는 권력자들의 성에 대한 몰이해와 왜곡된 성인식에 대한 심각한 반성적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본능(本能)은 학습이나 모방 없이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능력이다. 크게 개체 유지 본능과 종족 유지 본능으로 나눌 수 있다. 식욕과 같은 개체 유지 본능은 생존에 필수적이어서 반드시 충족되어야 한다. 반면에 종족 유지 본능의 핵심인 성욕은 직접적으로 충족되지 않더라도 생존에 지장이 없다. 오히려 승화를 통해 성욕이 다양한 양상으로 표출되어 문화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성욕을 발현하고 충족하는 방식은 그 사람의 인격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된다.

사랑은 행위자 서로에게 가치 있는 만족스러운 경험이다. 성은 그러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의 하나다. 즉, 성은 상호 간에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고 친밀감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그런 면에서 성은 본능적 욕구의 충족을 넘어 상호 간에 의사소통의 의미를 지닌다. 사람은 성의 참다운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함으로써 인간적으로 성숙한다. 성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본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격적으로 성숙할수록 성의 진정한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성추행과 성폭력은 성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성적 행위를 통해 성적 능력이나 권력 또는 지배력을 확인하고자 하는 시도다. 성추행으로 가해자가 얻는 건 성적인 만족이 아니라 피해자를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권력자로서의 자아도취감이다. 성추행이나 성폭력의 가해자는 한결같이 자신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거나 만만한 사람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다는 게 바로 그 방증이다. 성추행이나 성폭력을 통해 성적 능력, 권력, 또는 지배력을 확인함으로써 가해자는 자신의 내재된 열등감이나 왜소감을 부정한다. 성추행이나 성폭력 가해자들이 성적 만족을 얻지 못하면서도 이를 반복하는 이유다.

성추행과 성폭력은 동의하지 않는 대상에게 가해지는 가학적 도착행위라는 점에서 인간의 기본적 가치와 인간성을 저해하는 또 다른 형태의 폭거이자 반인륜적 범죄행위다. 피해자가 겪는 분노와 치욕의 감정에 더해지는 권력이라는 사회적 요소는 피해자에게 자괴감과 굴욕감을 자아내게 한다. 성추행이나 성폭력의 피해자가 자신이 처한 상황에 즉각적이고도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은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서 행위에 대한 책임을 수반한다. 행위에 앞서 상호 간의 의사나 의중을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성추행이나 성폭력과는 근본적으로 구분된다. 수작(酬酌)은 원래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이 서로 술잔을 나눈다는 뜻이지만, 성과 관련해서는 상대의 의사나 의중을 타진하고 탐색하는 무언의 행위를 지칭한다. 수작하면 떠오르는 시가 있다. 송강 정철(鄭澈)은 기녀 진옥(眞玉)에게 애정시로 수작을 건다. “옥(玉)이 옥이라커늘 번옥(燔玉)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眞玉)일시 분명하다. 내게 살송곳 있으니 뚫어볼까 하노라.” 진옥은 곧바로 송강의 수작을 시로서 응대한다. “철(鐵)이 철이라커늘 섭철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정철(正鐵)일시 분명하다. 내게 골풀무 있으니 녹여볼까 하노라.” 정철은 미천한 신분인 기녀에게조차도 성적으로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권력자들의 지배적 성의식은 조선시대에서 한 발작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정영인 부산대 의학과 교수
정영인 부산대 의학과 교수

 

참된 성은 상대를 지배하지 않고 사랑하는 것이다. 케이트 밀레트는 반세기 전에 “우리가 사랑이라고 알고 있었던 성이 실은 남성은 지배자, 여성은 피지배자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정치 행위다. 남성과 여성의 지배-피지배 관계는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지고 성을 통해 유지되어 왔기 때문에 사회가 아무리 민주화된다고 해도 이러한 불평등한 성역할은 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은 지금도 그대로 적용된다. 다만 남성과 여성의 위치가 뒤바뀌는 경우가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빼고는.

정영인, 부산대 의학과 교수 / 경암교육문화재단 이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