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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한국법학의 자리
학이사: 한국법학의 자리
  • 김효전 동아대
  • 승인 2004.03.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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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전/ 동아대· 헌법학

얼마 전부터 세계화니, 글로발리제이션이니 하는 말이  유행하더니 영어 조기교육에서 영어 공용화, 나아가서는 이번 학기부터는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영어강의를 본격적으로 실시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기업, 세계  최초로 무엇을 개발한 학자, 운운하며 매스컴에서 야단들이다. 남의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돌이켜 볼  때 나는 세계적인 학자는 고사하고 내가 평생 공부하고 있는 헌법학이 얼마나 세계적으로 보편 타당한 것인지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우선 출발할 때부터 세계적인 포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학자로서의 꿈을 키우던 1960년대에는 고작해야 유학 후 귀국해 훌륭한 교수가 된다는 소박한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사실 외국에 유학하려면 첫째 조건이 병역을 필하고, 유학 시험에 합격하고 그 다음이 공부하려는 의지와 유학 경비를 생각하던 때였다. 또 미국이나 독일에서 학위를 받고 귀국하면 바로 부교수로 임명되는 것이 통례이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세계적인 학자보다는 당연히 국내에서 제일 가는 학자가 꿈의 스타트였다.
또 법학이란 학문 자체가 세계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편이다. 원래 법학은 분쟁을 해결하는 도구 내지는 수단으로서, 이론보다는 실제적인 필요에 봉사하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법과대학 하면 사법시험을 연상하고, 사법시험 하면 곧 판검사  변호사를 떠올리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도 학문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법의 일반이론이나 원리를 탐구하기 마련이다.

헌법학의 경우에는 크게 독일과 미국의 영향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독일  헌법학은 전통적인 대륙법의 원리에 입각한 것으로 이론중심의 사변적인 것이라면, 미국의 그것은 프래그머티즘에 따라서 판례 연구에 중점을 두고 있다. 서로 가르치는 방법은 다르지만 이 두 가지의 법원리는 오늘날 대체로 서로 보완 관계 내지는 융화 단계에 접에 들었다고 보겠다.

다시 세계화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 법과대학에서의 헌법 교육은 한국어로 된 교과서를 가지고 물론 한국어로 가르치고 있다. 이것을 영어로 번역하든지  저술하든지 하여튼 영어로 된 책자를 가지고 영어로 강의하고 또 학생들도 수강능력이 있어서 다 잘 알아듣고 공부했다고 가정하자. 무엇에 써먹기 위한 공부인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외국 사람을  만나서 한국의 헌법을 설명해주며(그것도 상대방이 한국 헌법에 관심이 있고  또 질문을 해오는 경우에 답변하기 위해서), 또는 법률 실무자가  되어서 외국인과의 소송을 수행하기 위해서라면 그처럼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가며 대학 때부터 영어로 법률학 수업을 할 필요가 있는지 매우 의심스럽다.

최근 중국 북경에서 국제헌법학회의 학술대회가 개최되어 참가한 일이 있다. 공용어는 영어와 프랑스어였는데 중국, 미국, 독일, 프랑스 등의 발표자는  모두 한결같이 자기 나라의 법제도에 관하여 이야기했다. 한국에서는 발표자가 없었지만  있었다고 해도 한국의 법제도와 현황을 이야기했음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한국에 대해서 발표하고 여기에 대해서 약간의 질문이 나와서 답변해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과학 같으면 전 세계가 서로 공통된 과제를 가지고 공통의 결론에 도달하겠지만 사회과학, 특히 그 중에서도 법학과  같은 특수한 분야에서 세계화 내지  세계적인 학자는 가능한 것인지 의심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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