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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서정적 진실을 찾아서』 (민음사 刊) 펴낸 유종호 연세대 교수
[저자 인터뷰]『서정적 진실을 찾아서』 (민음사 刊) 펴낸 유종호 연세대 교수
  • 이옥진 기자
  • 승인 2001.04.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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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4-02 00:00:00

50년대 등단한 문학평론가로는 드물게 현재까지도 활발히 시평론의 빼어난 전형들을 산출하고 있는 유종호 연세대 석좌교수(국어국문학과). 선글라스 끼고 등장한 박정희를 혐오해 아열대지방에서도 선글라스를 꺼린 탓에 시력을 버렸다는 유 교수는, 시비평에서도 색안경 벗어던지기를 종용하고 있다. 고전적 의미의 인문학자인 그가 최근 출간한 ‘서정적 진실을 찾아서’는 맨눈으로, 그러나 맑은눈으로 서정시를 읽어내는 것이야말로 시이해의 으뜸이자 토대라고 말한다.

책 가운데 ‘서정적 진실의 실종’이라는 제목의 글은 유 교수 나름의 리얼리즘으로 본 동료평론가들에 대한 비평이다. 백석의 시 ‘절망’을 과도하게 읽어넣기해 텍스트를 훼손한 동료들의 혐의에 대해 유 교수의 비판은 따끔하다. 김재홍 경희대 교수, 김윤식 서울대 교수, 김은자 한림대 교수의 시해석이 과도한 ‘읽어넣기’ 끝에 1차적인 ‘읽어내기’에 실패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렇다고 유 교수가 ‘의미일원론자’는 아니다. 그는 다만 시해석이 텍스트의 ‘줏대되는 뜻’을 압도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 줏대되는 뜻이야말로 찾아야할 ‘서정시의 진실’이라는 것.

유 교수가 ‘기본에 충실하자’는 원론적인 주장을 펼치게 된 까닭은 교실에서 벌어진 에피소드 때문. 몇 해 전 이화여대 영문학과에서 연세대 국문학과로 옮겨오면서 알게 된 국문학 교육현장은 어처구니없었다. “난생 처음으로 한국현대시를 교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읽어봤어요. 그런데 의견을 발표하라 하면 자기 의견을 얘기하는 사람이 없고 다들 뭔가를 보고 말하는 거였어. 백석의 ‘절망’에서 스스로 이해한 바를 이야기하라니까 한 학생이 북방정서니 고향탈출이니 이상한 얘기를 하는거야. 따져 물었더니 그 학생이 어떤 선생의 해설을 읽었다는거지.” 유 교수는 정작 평론가들의 1차 텍스트에 대한 이해부족이 교육현장에서 미칠 악영향까지 염려하고 있었다. “시평론을 읽고는 절망할 학생들을 내가 이해하겠더라고. 나도 예전에 그랬으니까. 고명한 한국사람이 쓴 한국어글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내 이해력부족 탓이 아닐까 하는 절망감. 알고 보니 평론가들의 시해석이 틀리고 내가 옳았는데 말이야. 공론에 부치고 문학교육의 현장에서 얘기를 해봐야겠다 싶더라고. 교실에서만 학생들 야단치고 바깥에서 침묵하면 그건 이율배반이지. 시와 시비평, 연구와 교육현장을 생각할 때 이건 정말 안되겠다는 충정에서 썼어.”

김우창 고려대 교수(영어영문학과)의 평가처럼, “서양 문학이나 한국 문학의 구체적인 업적에 대하여 그만큼 넓고 깊은 준비를 갖추고 있는 문학 이론가를 달리 찾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유 교수는 탁월한 詩眼으로, 50년대 그 엄혹한 시절 월북시인 정지용을 ‘현대시의 아버지’라 평가하기도 했다. 백석과 서정주를 문학사의 ‘그늘’에서 끌어낸 것도 그이다.

하지만 유 교수의 ‘현실주의 상상력’은 지금 그를 논쟁의 한가운데로 떠밀고 있다. 이미 20대 초반에 발표한 평론에서 서정주에 대한 도덕적 평가와 문학적 평가를 분리시켰던 유 교수는 로버트 프루스트에 기대어, 비평을 “문학과의 사랑싸움”이라고 표현한다. “세상을 사랑하면서 싸우자는 거야. 악으로 가득한 세상을 버리지 않고 싸우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 아니겠어요?” 유 교수가 서정주를 ‘버리지 않는’ 이유이다.

유 교수는 지금 한국현대시사의 절맥을 복원하는 작업중에 있다. 이념적 ‘색안경’ 탓에 찬사와 백안시의 극단을 오갔던 좌파시인 오장환, 임화, 이용학, 그리고 월북시인 백석의 시를 꼼꼼히 읽어내어 조만간 출간할 예정이다. 빼어난 표현인문학자로 알려진 유 교수는 한평생 비평의 칼날을 그어왔던 시에 대한 최소한의 경의를 표하려 자작시집을 출간할 계획도 품고 있다고 한다. 이옥진 기자 zo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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