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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여교수, 참여인가 동원인가
교수논평- 여교수, 참여인가 동원인가
  • 박혜경 영남대 불어불문학과
  • 승인 2004.03.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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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헌법에 명시된 여성의 참정권 인정 이래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역시 여성의 실질적 권리를 표시해 주는 여성지수는 여전히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생명존중, 神人사상에 뿌리한 동양의 원리는 힘을 잃고 편협한 남존여비 사상이 사회 틀의 근간이 된 채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일상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남녀 성별역할 분담론, 天尊地卑의 음양론이, 힘과 물질만을 중시하는 천민자본주의, 수치적 가시성만을 존재의 척도로 삼는 수입된 경제논리와 결합돼 이 땅의 생명들을 왜곡시킨 결과이리라. 주역에 예고된 음의 세상을 들추지 않더라도 여성이 상생원리로 세상을 다시 만들어 가지 않으면 안될 만큼 경쟁과 물질획득에 기초한 사회의 위기적 상황들은 우리를 뼈 깊이 병들게 했다.

정부도 IMF 이래 국제 경쟁력 제고가 국운의 주요 변수가 되면서, 그동안 사장시켜 온 한국여성의 양질의 노동력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또 국제무대에서의 체면치레를 위해서라도 줄곧 최하위에 머문 여성지수를 높여야 하는 당위성에 직면해 있다.

이런 시대적 요청에 따라, 정부는 공공기관, 公私단체에서 여성의 참여비율을 30%까지 확대하기로 하고 이의 실천을 독려하고 있다. 문제는 그동안 사회변화를 이끌고 이 땅에서 자생하는 사상을 키우고 보급하기는커녕 특정 강대국의 이론과 삶의 틀이 이 땅과 사람들 심성마저 몽땅 파괴할 수 있는 행태를 강제해 와도 대책없이 이를 쫓기에 급급하던 대학 안에는 30%는 물론 10%의 여성자원도 없다는 것이다. 이 숫자를 채울만한 여성의 사회진입이 법적으로는 보장되고 현실에서는 교묘하게 봉쇄된 상태에서 사회 최상층부 기득권을 독점, 군림해 온 닫힌 세계들 -법조, 언론, 대학, 종교, 정치계- 안의 위원회나 보직 부문과 관련, 이 수치 달성을 위해 여성은 참여가 아니라 동원돼야 하는 형편이다.

따라서 위원회나 보직에서 여성의 비율을 논하기 전에, 여성의 제도권 진입을 막고 있는  것이 제도라기보다는 한 조직이나 남성들이 갖고 있는 여성에 대한 뿌리깊은 편견이라는 것을 인식, 이를 수정하고 제거할 수 있는 장치에 대한 논의가 우선되고 정착돼 여성들이 장벽없이 제도권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장될 수 있어야겠다. 한편, 몇몇 인기있는 고위직 여성 공무원이나 전문직 여성의 존재, 여성참여의 수치상의 증가는 권한과 책임이 따르는 영역에서 거의 절대 다수의 여성이 일상적으로 겪는 제도적인 소외를 은폐할 위험이 있다. 한 조직에 여성이 30%가 있다 해서 조직 내 30%의 권한이나 발언권을 여성이 자동적으로 갖는 것이 아닌 현실에서 이러한 숫자는 수치 달성 이전에 여성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조직 내 분위기, 목소리 크지 않은 여성들의 의견은 그대로 무시하는 관행 등이 시정돼 할당 수치만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의 비율로 이렇게 참여한 여성의 의견이나 발언이 정책에 반영됐는가 살필 수 있는 제도가 병행될 때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혹은 여성을 향한 뿌리깊은 폄하의 시선, 남성의 言路독점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어떠한 문제의식도 없이 가부장적, 보수적 틀 속에서 안존하며 남성중심적 세계관을 내재해 갖고 있는, 즉 남성의 관점에서 어여쁜 여성들이 30%를 채운다한들 진정한 의미에서 세상의 변화는 일구어지지 못할 것이다. 권력을 나누고 숫자를 채우는 것이 목적이 아닐진대 선행돼야 할 것은 남녀 모든 생명이 타고 난 에너지와 기개를 활짝 펼칠 수 있도록, 인위적이고 소아병적으로 설치해 놓은 심리적 사회적 장애기제를 우선 제거하는 일이다. 성역할 속에  갇혀 병들고  왜소해진 모습에서 서로 치유, 해방될 수 있는 선결적 방법들, 여성 언어와 세계관이 각 조직 내에서 수용되고 실천되도록 구체적인 검증체계와 법적, 현실적 제도들을 우선 마련하면서 그 단초를 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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