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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경쟁의 '원초적 불평등성'
자유경쟁의 '원초적 불평등성'
  • 이승환 / 서평위원·고려대
  • 승인 2001.04.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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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수상]

요즘은 어렸을 때 읽었던 ‘토끼와 거북이’가 다시금 생각나곤 한다. 이 이야기는 사회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 있는 사람에게는 자만에 빠지면 안된다는 교훈을 심어 주고, 불리한 위치에 처해 있는 사람에게는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열어 준다.

그렇다면 유리한 위치에 서 있는 사람과 불리한 위치에 서 있는 사람 모두가 정말로 ‘토끼와 거북이’에 나오는 교훈대로 열심히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다시 말해서, 토끼는 토끼대로 자만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달려가고, 거북이는 거북이대로 쉬지 않고 달려간다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결과는 당연히 토끼의 승리, 즉 유리한 고지에 서 있는 사람의 승리로 끝나게 될 것이다.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는 오직 ‘토끼가 게으름을 피며 낮잠을 잔다’는 전제 아래서만 그 교훈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토끼와 거북이가 둘 다 낮잠을 자지 않고 열심히 달려간다면, 이러한 경주는 처음부터 이미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어 있는 것과 다름없다. 승자와 패자가 처음부터 결정되어 있는 경주는 그 자체로 불공정하기 그지없다.

따라서 공정한 경주가 되려면 토끼는 토끼끼리 그리고 거북이는 거북이끼리 경쟁을 하도록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각종 스포츠 경기에서는 이러한 불공정한 경쟁을 피하기 위해, ‘체중’이나 ‘성별’ 등을 기준으로 참가 자격을 제한한다. 예를 들어 프로복싱에서 선수들의 체중에 따라 체급을 ‘플라이급’ ‘라이트급’ ‘밴텀급’ ‘헤비급’ 등 16가지로 구분한다든지, 역도 경기에서는 ‘52kg’ ‘56kg’ ‘60kg’ ‘67.5kg’ 등 10여 가지로 구분하기도 한다. 이는 모두 불공정한 경쟁을 피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인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신자유주의자들은 경쟁 이전에 존재하는 ‘원초적 불평등’은 그대로 놓아둔 채 모든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자유 경쟁’에 임하도록 강요한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헤비급’과 ‘라이트급’이 싸워서 ‘라이트급’이 참패하는 것은 자신의 게으름 탓이며,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를 해서 거북이가 참패하는 것도 자신의 무능력 때문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논리가 아닐 수 없다. 경쟁이 시작하기 이전에 존재하는 ‘원초적 불평등’은 은폐한 채 ‘자유경쟁’만을 내세운다면, 이는 서로 다른 출발선을 그어 놓고 경주에 임하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런 논리대로 따른다면, 우리는 씨름·복싱·역도·유도 등의 시합에서 일체의 중량 제한을 철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너무도 불공정하고 무자비한 게임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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