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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철주의 미술놀이 ‘외화내빈(外華內彬)’ 4] 빚는 족족 얘깃거리가 된 도자기
[손철주의 미술놀이 ‘외화내빈(外華內彬)’ 4] 빚는 족족 얘깃거리가 된 도자기
  • 교수신문
  • 승인 2020.07.15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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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 달 항아리’, 18세기, 높이 45㎝, 런던 브리티시 뮤지엄 소장. 낳았다 하면 순산이라는 우리 도자기가 본디 이렇다.
‘백자 달 항아리’, 18세기, 높이 45㎝, 런던 브리티시 뮤지엄 소장. 낳았다 하면 순산이라는 우리 도자기가 본디 이렇다.

부르는 이름마저 어질고 푸근한 도자기가 있다. 이르기를 ‘달 항아리’다. 이토록 정겨운 칭호가 달리 있을까. ‘달 항아리’는 알다시피 애칭이다. ‘대호(大壺)’나 ‘원호(圓壺)’라는 근엄한 명패를 놔두고 너도나도 입 모아 ‘달 항아리’라고 한다. ‘큰 항아리’와 ‘둥근 항아리’로 직역해도 그럴싸하건만 에둘러 ‘달 항아리’로 되풀이하는 그 마음 밭은 왠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 것 같다. 크고, 둥글고, 두렷한 보름달이 안겨주는 후덕, 원만, 순정을 어느 누가 도리질하겠는가.

18세기 백자 달 항아리 한 점을 이 자리에 모신다. 몸뚱어리가 보암직하여 마냥 미덥다. 입술이 바깥으로 살짝 벌어졌어도 헤프지가 않다. 굽은 짧고 곧은데, 입보다 지름이 짧아 펑퍼짐하지 않고 산뜻한 앉음새다. 아니, 앉았다기보다 떠 있다고 해야 옳겠다. ‘달’이라 했잖은가. 가운데가 밋밋해서 둥근 맛은 좀 덜하다. 이 민춤한 뱃살이 위와 아래를 이어 붙인 자취다. 억지로 동그랗게 성형하지 않고 되는대로 되게끔 두었다. 접합 흔적을 애써 숨기지 않는 맘씨가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조선 도공의 안다미라고 할까.

유약은 고르게 씌워졌다. 표면에 광택이 있어도 반점은 군데군데 남았다. 구울 때 가마 속에 날아든 불순물이 얼굴에 그대로 박힌 탓이다. 뭐랄까, 검버섯처럼 여겨진다. 세월의 풍상을 거치며 흠집은 도드라지고 손때까지 덧붙는 게 달 항아리의 후천성이다. 이 사람 저 사람 손에 옮겨 다녔을 달 항아리의 인생유전이 떠오른다. 내켜한다면 드라마 한 편은 지어낼 수 있으리라.

이 달 항아리의 임자는 조선인이 아닌 영국인이었다. 그이는 세계적인 도예가 버나드 하우웰 리치다. 일본에서 동판화를 공부하던 리치는 조선 도자기에 매료돼 도예가로 전향했다. 1912년 일본 우에노 박람회에서 조선 자기를 본 리치는 청화백자의 유려한 빛에 혼이 팔려 탄식했다. “이런 빛깔을 낼 수 있다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조선에 건너와 본격적으로 도자기를 탐사하던 그는 단김에 서울에서 도예전을 열었다. 그게 1935년 일이다. 그는 서울에 머물며 달 항아리 하나를 샀다. 바로 이 항아리다. 항아리를 한 아름에 껴안은 리치는 외쳤다. “나는 행복을 안고 간다.” 백자 달 항아리가 리치에게는 ‘행복’이었다. 그 항아리는 세계대전을 피해 한동안 리치의 제자가 보관했다. 나중에 리치의 부인에게 돌아갔고 후손이 경매에 내놓아 마침내 브리티시 뮤지엄의 어엿한 소장품이 됐다. 조선의 보름달은 지금 런던의 높다란 지붕 아래 휘영청 떠 있다.

‘백자 양각 동채(銅彩) 쌍학무늬 연적’, 19세기, 높이 5.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문인의 글방이 화사하다면 연적 덕분이리라.
‘백자 양각 동채(銅彩) 쌍학무늬 연적’, 19세기, 높이 5.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문인의 글방이 화사하다면 연적 덕분이리라.

맨 처음 ‘달 항아리’로 멋지게 불러준 이는 누구였을까. 해방 이후 백자를 탐애하던 서양화가 김환기라고 미술계 인사는 귀띔한다. 그는 백자 항아리를 살 때마다 “나는 달을 안고 간다”고 외쳤단다. 누구에게는 ‘달’로 보였고 누구에게는 ‘행복’이었던 백자라서 그런가. 보는 이마다 달 항아리에 덕목 하나씩을 기어이 보태려 든다. 요즘 인기 있는 소설가인 알랭 드 보통도 거들었다. 그는 수더분한 달 항아리를 두고 “우리에게 겸손이 무엇인지 가르친다”며 연신 조아린다. 은성한 달빛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신화로 물드는가 보다.

달 항아리가 유독 얘깃거리를 낳은 건 아니다. 귀족의 품새를 자랑하는 19세기 조선의 연적 하나에는 발밭은 사연이 따라붙는다. 보라, 학 두 마리가 부리를 벌린 채 입맞춤한다. 날개 끝을 마주 비비며 춤까지 춘다. 학의 퍼포먼스가 아이돌의 칼춤에 버금간다. 사랑에 겨워 보는 이도 덩달아 입이 떡 벌어지는 명품이다. 바탕색이 참으로 곱다. 연적의 몸통은 화사한 자줏빛 구리 안료로 뽐을 냈고, 돋을새김이 된 학은 푸른 기운이 감도는 백자유로 치장했다. 기발한 디자인에 선명한 색상 대비가 황홀하고 손에 잡히는 맞춤한 크기는 앙증맞다. 어느 곳 하나 싫증 날 구석이 없는 애완용품이다. 

이 ‘백자 양각 동채(銅彩) 쌍학무늬 연적’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분은 박병래다. 1930년대 성모병원 초대 원장을 지낸 그는 일본 의사가 보여준 조선 접시를 우리 것이 아니라고 우긴 사실이 부끄러워 40년간 줄기차게 도자기 공부에 열중했단다. 평생 개업하지 않은 의사로 살면서 봉급을 쪼개 도자기를 수집한 그는 타계 두 달 전에 애장품을 모조리 박물관에 넘겼다. 그가 컬렉션하며 남긴 일화는 미술계에 꿀잼을 안긴다. 이 연적은 기세등등하던 아무개 장관이 먼저 눈독을 들였던 작품이다. 박병래의 수중에 들어가자 약이 오른 그이는 끈질기게 양도를 요구했다. 물론 보기 좋게 거부당했다. 박병래는 작품을 수집하면 시장에 내놓지 않았고 아무에게나 소장품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의 쇠고집이 박물관 한편에서 지금껏 빛난다.

돈 싸놓고 기다린다고 명품이 제 발로 오는 건 아니다. 박병래는 소유자가 모르는 그릇의 가치를 기민한 안목으로 가려내는 능수였다. 병실 곁에 내버려진 김치 항아리가 기막힌 청화백자인 줄 냉큼 알아냈고, 환자의 소변을 담은 병이 뛰어난 도자기인 걸 눈치채고 환자를 설득해 구입한 일도 있었다. 냉면집에 가서 식탁 위에 놓인 젓가락 통이 백자 필통임을 안 그가 탐을 내 만지작거리자 주인이 슬그머니 치워버린 일도 있었다. 포기할 박병래가 아니었다. 수년 동안 주인을 깨우쳐 그예 손에 넣었다. 1.4 후퇴 때는 마당에 구덩이를 파고 소장품을 모래로 차곡차곡 채워 보관했다는 그의 회고를 듣노라면 천석고황(泉石膏肓)에 든 도자기 사랑이 눈에 선하다.

미술품 수집의 요령을 말하는 전문가는 많다. 그중 설득력 있는 조언은 ‘첫사랑 같은 작품을 골라라’ 하는 것이다. 첫사랑은 한 번 오지 두 번 안 온다. 단 한 번의 시기, 단 한 번의 만남에서 평생 곁에 둘 미술품을 낚아챌 줄 알아야 유능한 컬렉터가 된다. 흔히 말하는 ‘일기일회(一期一會)’가 그것이다. 굳이 말을 바꾸자면 이렇다. “그것 없이 못 살겠거든 사라.” 박병래가 애장했던 연적은 주제가 사랑이다. 그의 첫사랑은 풋사랑이 아니었기에 누대의 치사랑을 받고 있다.

도자기가 제작된 사정도 알고 보면 칠색 넘어 팔색이다. 술꾼의 성화에 못 이겨 태어난 그릇 얘기는 웃음꽃을 피운다. 비교적 이른 15세기에 청화로 단장한 어느 백자 접시는 보물로 지정됐다. 가운데 오목한 부분에 글씨가 있어 이채로운 도자기다. 뭐라 쓰였느냐 하면, ‘망우대(忘憂臺)’ 석 자다. ‘근심을 잊는 받침대’란다. 근심을 잊게 해주는 게 무얼까. 두말할 나위 없이 술이다. 그런즉, 이 접시는 술잔 받침대가 분명하다.

‘청화백자 시명(詩銘) 잔 받침’, 17세기, 지름 17.9㎝,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적힌 시로도 술자리의 안줏거리가 된다.
‘청화백자 시명(詩銘) 잔 받침’, 17세기, 지름 17.9㎝,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적힌 시로도 술자리의 안줏거리가 된다.

이와 비슷한 접시 하나를 찾아냈다. 역시 청화백자인데, 가운데 술잔을 놓는 자리에 표시가 없다. 그래도 잔 받침대가 맞느냐고? 곰곰 추리해보자. 바닥에 그림이나 무늬 대신 글씨가 잔뜩 쓰여 있다. 공들여 쓴 해서체에서 모범생티가 난다. 다섯 자와 두 자씩 빙 돌아가며 적었는데, 마주 보는 대칭형이 신기롭다. 간동한 디자인은 모던하기도 하다. 읽어보니 칠언절구인 시다. 무슨 까닭으로 접시에 구태여 기다랗게 썼을까.

시의 작자는 조선 중기를 살다간 이명한이다. 아버지 이정귀와 아들 이일상까지, 삼대 대제학을 지낸 명문가의 문인이 이 양반이다. 이명한은 어느 날 이 시를 지어 궁중용 그릇을 만드는 사옹원 관리에게 보냈다. 무슨 꿍꿍이셈인지는 해독해 봐야 드러날 테다. ‘표주박 잔은 소박하고 옥 술잔은 사치스러워 / 눈꽃보다 나은 도자기를 사랑한다네 / 땅이 풀리는 봄이 와 왠지 목이 마르니 / 꽃 아래서 유하주나 마시게 해주오’ 어림짐작이라도 하시겠는가. 내용인즉슨, 도자기로 술잔 하나를 만들어 보내라는 부탁이다. 이명한은 이조판서를 지냈고 사옹원은 이조에 딸린 관청이다. 이 시의 수신인은 종8품 봉사였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요청하되 위세 부리는 명령조라곤 눈곱만큼도 없다. ‘갑질’ 없는 고수의 손바람이 저토록 곰살맞다.

유하주(流霞酒)는 ‘흐르는 노을’이란 이름대로 신선이 마시는 불로주다. 이 술에 취한 선녀가 비녀를 떨어뜨려 땅에 옥잠화가 피었다. 당나라 시인들은 가는 청춘이 아쉬워 마시고, 지는 봄꽃이 그리워 들이켰다. 반죽 좋은 이명한의 민원(民願) 시는 인기를 얻었다. 도공이 여러 벌 구웠는지 이 시가 적힌 접시는 일본에서도 발견된다. 술잔은 사라지고 잔 받침만 남았는데 도자기는 영원(永遠)을 넘본다.

손철주 미술평론가. 국민일보 기자, 학고재 주간 등을 지냈다. 교양미술서 베스트셀러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의 저자다.
손철주 미술평론가. 국민일보 기자, 학고재 주간 등을 지냈다. 교양미술서 베스트셀러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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