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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부끄러운 고백
대학정론-부끄러운 고백
  • 박홍규 논설위원
  • 승인 2004.03.03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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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 논설위원 영남대 ©
소위 '왕따 동영상'으로 물의를 일으킨 중학교의 교장 선생님이 자살했다. 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지만, 함부로 그 죽음에 대해 떠들 일이 아니다. 그 교장 선생님은 이미 사직서를 제출했으니 나름으로 충분히 책임을 졌는데도 다시 죽음을 선택했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으리라. 그런 고통을 모르는 자들은 함부로 입을 놀려서는 안 된다. 

몇 달 전 나도 그런 고통으로 인해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여름 방학에 모 방송국의 의뢰로 외국에 촬영을 갔다가 PD가 가족을 데려와 촬영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는 '부끄러운 고백'이라는 글을 섰다가 해직 당한 그 PD로부터 명예훼손 고소를 당하자, 내가 가정 파괴범이라느니, 대학은 더 썩었는데도 잘난 채한다느니, 독선과 위선이라느니 하는 등등의 별에 별 소리를 다 들었을 때였다. 그 뒤 나는 TV에 나가는 것은 물론 신문 잡지에 글을 쓰는 것을 그만두었다. 이 글은 교수신문에도 마지막으로 쓰는 글이다.

그러나 나는 자살을 생각했어도 실행하지는 않았다. 학회 회장직을 그만두는 등 일체의 사회활동을 멈추었으나 교수직 사표는 내지 않았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해명을 했지만 수업을 그만 두지도 않았다. 피의자로 검찰에 세 번이나 불려가 열시간씩 온갖 수모를 당하고 정말 죽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물론 고소가 있고 3개월 뒤 나는 무혐의처분을 받았지만 그동안의 치욕과 고통을 어떻게 말로 다하랴. 그러나 자살하지는 않았다. 나는 지금도 내가 한 일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부끄럽기에 고백한다.

나는 예체능계 교수가 아니니 입시부정을 저지를 기회도 없고, 폭행이나 성희롱을 하거나 연구비를 착복할 위인도 못되지만, 20년이 넘는 교수 생활에 잘못도 있었기 때문이다. 보직을 하면서 학교 돈으로 교수들과 회식하고 영수증 처리를 하거나, 연구비 정산 시 회의비랍시고 연구팀과 회식한 영수증을 첨부한 적이 있다. 그 후 나는 보직을 맡지도, 회식에 참석하지도, 연구비를 신청하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다. 그러나 여전히 과거는 부끄럽다. 이제 그것을 고백하고 책임을 지고자 한다.

다른 것은 괜찮으나, 연구비를 신청하지 않으면 무능한 교수 취급을 당하니 문제이다. 연구비를 연구에만 사용하는 교수가 대부분이겠지만 나처럼 잘못 사용하는 교수도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외국에서는 그런 짓이 당연히 파면 감이나 우리나라에서는 별 게 아니다. 대학 측이나 나 같은 일부 교수들의 도덕불감증은 대학을 망치는 가장 큰 독소가 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무엇보다 대학과 고수가 도덕을 회복하기를 기대하며 나 자신의 부끄러움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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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학 2004-03-04 18:25:51
저를 비롯한 젊은 세대들은 말은 바르게 잘하지만, 옛분들이 보여주셨던, 당차고 소신있는 모습은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 피디에 대해서는 참 잘하신 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