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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사회적 타살의 공모자들
교수논평: 사회적 타살의 공모자들
  • 조경배 순천향대
  • 승인 2004.02.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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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배 / 순천향대 법정학부 교수 ©
지난해 여러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손배가압류’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또 다시 계약직 노동자와 사내하청 노동자가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요구하며 자신의 몸을 불사르고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이들을 죽음의 벼랑으로 내몬 것은 가혹한 배상청구나 정규직과의 차별과 멸시만이 아니다.

 

오히려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처우를 정당화하고 희망을 꺾어버린 법적 제도적인 모순과 경제구조의 탓이 크다. 노조활동을 이유로 전과자가 되고 보증선 친척들과 이웃들의 재산마저 압류당하는 현실. 법의 미비와 허점을 이용한 사용자의 위협 때문에 노조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항상적인 고용불안과 부당한 근로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 우리 사회에서 노동기본권은 제헌헌법에 규정된 이래로 지속적으로 제약돼왔다.

 

하지만 노동기본권은 노동자가 자주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버팀목이다. 그러기에 최고규범인 헌법이 이를 기본적인 인권의 하나로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개발독재시절 노동기본권은 보편적인 사회의식으로 자리 잡기도 전에 노사가족주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하여 제압됐다. 국가의 경제발전을 위해 자기 몫에 대한 요구를 최대한 자제하고 고통을 노사가 함께 나누자는 논리는 누구도 거역하기 어려운 힘을 지닌 국가적인 이데올로기로 승화됐다.

 

이들 이데올로기 앞에서 노동기본권은 물론이고 정치적 시민적 자유와 인권조차 사치스런 것으로 치부됐고 유보됐으며 금기시됐다. 이리하여 합법적이고 정당한 권리의 주장조차 집단이기주의로 매도됐고 그나마 경제성장의 성과에 대한 배분의 약속만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그러나 이들 이데올로기를 지탱해왔던 지속적인 성장의 동력이 주춤하자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누구도 이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이 말은 공식적인 문헌에서도 사라졌다.

 

그러면 왜곡된 노동기본권은 본래의 모습으로 제자리를 찾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인간적인 유대와 정서적인 동질감을 은유하던 노사가족주의 대신 국가경쟁력, 노동유연화, 구조조정 등 친자본적인 용어들이 새로이 등장했고 노동기본권은 다시 유보됐다. 어제의 가족이었던 노동자는 더 이상 가족이 아니었다. 소수의 주주와 경영자의 이익을 위하여 언제든지 내버려질 수 있는 구조조정의 대상이며 숨 막히는 경쟁세계에서 낙오자일 뿐이다. 그런데 노동자들을 더욱더 절망에 빠뜨린 것은 오늘날 경제적인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부의 축적방식이다. 과거 고도성장의 시절에는 비록 성과배분의 형평성에는 문제가 있었더라도 노동자에게도 그 혜택의 일부가 주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자본의 소유자가 경제적 약자를 더욱 가난하게 만들고 그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주지 않음으로써 턱없이 많은 부를 축적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수억대의 연 수입을 올리는 기업의 경영자, 투자자, 펀드매니저들이 있는가 하면 하루아침에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전락하여 수입이 절반으로 줄고 힘들게 살아가는 수백만의 노동자가 병존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IMF 이후 한때 떨어졌던 1인당 국민소득은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위 부유층의 소득은 크게 증가하였지만 비정규직의 처지는 오히려 더 나빠졌다. 이들은 자신의 노동에 대한 대가에 대하여 인간의 존엄성은커녕 모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이러한 현실을 두고 과연 시장논리의 합리성이나 노동가치의 차이에 따른 것이라며 정당화 할 수 있겠는가. 소득과 지위의 공정한 분배는 사회적 연대의 바탕이고 사회정의의 지표이다. 좀더 공정한 가치와 보상의 균형을 실현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복지의 확충을 통한 사회안전망의 구축도 중요한 과제이지만 노동기본권의 보장은 이를 위한 출발점이다. 법적 제도적인 억압과 구조적인 모순이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면 이를 두고 사회적 타살이라는 노동계의 주장이 과연 지나친 비약일까. 그럼에도 정부가 노동자를 억압하고 불평등 구조를 고착화하는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일은 소홀히 하고 저임금 비정규직을 양산해 일자리를 늘리겠다면 사회적 살인의 공모혐의를 벗기 어려울 것이다. 정부나 기업이 노동유연화와 인건비절감을 통한 경쟁이란 주술에 빠져있는 한 비정규직의 참극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고용안정을 비롯한 노동기본권의 보장에 보다 더 관심을 갖는 것이 제대로 된 방향이며 노동자들의 한스런 죽음을 멈출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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