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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문화 칼럼]직업의 윤리, 권력의 도덕
[김희철의 문화 칼럼]직업의 윤리, 권력의 도덕
  • 교수신문
  • 승인 2020.07.13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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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포트라이트'(Spotlight, 2015) 리뷰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포스터

이 영화는 기자에 관한 이야기다. 미국 보스턴의 신문사 '글로브지'에서 일하는 기자들, 그중에서도 보스턴 사회의 부정과 비리를 파헤치는 '스포트라이트' 팀의 이야기다. 영화에서 이 팀은 보스턴 지역의 몇몇 신부들이 저지르고 있는 아동 성추행,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쉬쉬하고 있는 교회 사회의 조직적 관행을 조사해 나간다. 

피해자는 평생 고통의 기억을 지우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종교의 위엄으로 무장한 신부들과 추기경은 끄떡없다. 게다가 보스턴의 보수적 사회 분위기는 이들의 추악한 악습을 보호하는 막이 된다. 글로브지의 신임 국장을 만난 추기경은 “이 도시가 번성하려면 큰 기관들의 공조가 필요하다”면서 신부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덮고자 한다. 국장(리브 슈라이버)은 언론이 독립적일 때야말로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소신을 밝힌다. 

스포트라이트 팀장(마이클 키튼)은 자신의 모교에서도 있었던 신부의 성폭력을 취재한다. 대학 하키팀의 코치였던 탈봇 신부가 학생을 범했던 것이다. 교회 측 관계자는 “사과 몇 알 썩었다고 상자째 버릴 순 없어요.”라고 회유한다. 교회를 변호했던 변호사는 팀장의 친구다. 그는 팀장에게 ‘직업 윤리’상 교회의 비밀을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직업 윤리'라는 건 그저 자신의 비겁함을 가리는 구차한 변명이다.   

이 영화는 기자라는 직업의 면면을 보여준다. 도서관과 법원 등에서 수십 년 된 자료를 모으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인터뷰하고 힘을 가진 고위직을 만난다. 입을 열지 않으려는 사람에게 집요하게 따라붙어 증언을 받아낸다. 진실을 감추는 것이 여러 가지로 편하고 좋을 거라고 회유하는 인간들의 방해 속에서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 발로 뛰는 시간이 더 많다. 작성된 기사의 초고를 회람하고 어색한 형용사를 고치고 그러한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활자화된 기사는 세상과 만난다. 어두웠던 부분이 집중 조명(Spotlight) 되면서 독자들은 여론을 만들어 내고 세상은 조금씩 개선된다.

이 영화가 정말 품격 있는 작품인 이유는 아동 성추행 장면이 하나도 연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컷도 나오지 않는다. 기자, 성인이 된 피해자가 주고받는 말로써 충분히 그 상황이 묘사된다. 이것은 영화 제작의 윤리까지 보여준다. 고문을 한다든지, 강간을 한다든지 그런 끔찍한 현실은 굳이 시각화하지 않아도 된다. 그걸 시각화하려는 순간, 피해자 역을 맡는 배우는 심한 충격을 받게 된다. 특히 어린아이들.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한 장면.

‘기레기’, ‘군바리’, ‘짭새’ 등 한 직업군을 함부로 매도하는 단어들을 쉽게 쓰는 문화가 있다. 집단 전체를 욕 먹이는 소수의 잘못이 원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소속 집단 전체를 싸잡아 비난할 필요는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기자, 군인, 경찰, 교사, 의사, 상인, 기사 등 대다수 평범한 시민들의 힘으로 이 사회는 그나마 건강하게 굴러간다.  

서울시장의 갑작스럽고 비극적인 죽음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슬픔과 혼란에 빠뜨렸다. 민주주의의 발전, 복지 사회로의 진입에 고인의 활약과 헌신은 대단했다. 젊은 날 약자를 대변하는 일에 앞장섰고 시민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정치 행정가로서 시민과 환경을 위한 시정을 펼쳤다. 하지만 만 가지 업적으로 결정적 과오를 면제할 순 없다. 결코 죽음으로도 덮을 수 없다. 살아서 책임질 부분 감당하고 자연인으로 살았으면 될 일이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한편으로 고소장을 제출한 사람의 마음이 다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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