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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의의 문학프리즘] 노동의 미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심영의의 문학프리즘] 노동의 미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 교수신문
  • 승인 2020.07.1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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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엄혹한 시절에 발표됐던 박노해 시인의 시 「노동의 새벽」에서 시인은  “전쟁 같은 밤일에서/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어쩔 수 없지”라고 비극적인 노동현실에 절망한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트려 솟구칠/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다짐한다. 

그로부터 40여 년의 시간이 흘렀으나 우리 사회의 노동현실은 근본적으로 나아졌다고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2천 년대의 한국문학에서 노동(자)의 문제는 이제 금기시되었나 싶을 정도로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도 우리는 노동을 통해 삶을 영위하고 있다. 더 나은 삶, 그것을 인간다운 삶이라고 추상화할 수밖에 없을지라도, 우리는 노동을 통해 그것을 꿈꾼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의 대량 양산으로 어느 직종 어느 사업장을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간의 갈등구조가 깊어졌다. 2017년 4월 광주의 기아자동차 공장에서 근무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총투표를 통해 같은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노동조합에서 내보낸 사건이 있었다. 노동조합 내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약 90%,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약 10% 정도였는데, 서로 간의 인식과 이해의 차이가 있었을 것이나 아무튼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나와는 다른 존재로 규정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와 신분의 고착화에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투항함으로써 노동자들이 사용자 내지 자본가가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조건에서 일하는 동료 노동자와의 경쟁 내지 투쟁을 벌여야 하는 작금의 상황은 억압받는 현실에 저항하는 주체로서의 개인의식의 성장과 노동하는 인간 누구나 평등하고 존엄한 존재라는 보편적 인식의 확산, 연대를 통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의 추구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포기하게 한다. 노동자들 간의 연대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이제 체제 순응적인 태도를 내면화하면서 최우선적으로 자신의 삶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밖에 없게 된다. 

최근 인천국제공항의 보안업무를 담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과 관련한 우리 사회의 소모적 갈등 역시 노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노력이 첫 단계에서부터 불공정한 게임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누적된 불신의 표출이면서, 우리 사회 연대의 고리가 얼마나 허약해졌는가를 방증한다. 사실에 대한 일부 오해와 함께 갈등을 부추기는 일부 정치권과 언론의 무책임이 가세해서 노동자들의 삶의 문제를 정쟁의 도구로 만들어 버린 것은 우리 사회 논의 구조가 얼마나 천박하고 위태로운가 하는 것을 드러낸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성장을 통한 일자리 만들기 신화에만 매몰되어있는 한 인간다운 삶이라는 미래는 어쩌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공존을 포기하고 자신의 이해만을 우선시하는, 그렇게 부추기는 교육과 사회체제에 변화를 모색하지 않는다면 40여 년 전에 시인이 비장한 결의와 다짐으로 바라던 더 나은, 인간다운 노동자의 삶은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노동을 급속하게 대체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과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비대면 일자리가 늘어가는 추세에서 노동의 위기를 극복해나갈 지혜와 함께 보듬어 살아가는 연대정신의 회복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심영의 문학박사. 소설가 겸 평론가.
심영의 문학박사. 소설가 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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