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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졸업시즌에 스스로 묻다
학이사:졸업시즌에 스스로 묻다
  • 이현석 경성대
  • 승인 2004.02.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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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관련 업무로 부산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 인사차 점점이 연구실을 찾는다. 선생된 이로 사회에 나가는 제자들의 향방에 주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터이나 근래 들어 한결 관심이 커짐을 스스로 느낀다. 솔직히 말하면 학생들의 미래보다는 '취업 상황'에 은근히 신경을 쓰게 된 것이다. 여러 언론기관들이 각 대학 졸업생의 취업률을 두루 조사해 공개한지는 이미 오래 됐고, 그것으로 대학의 우열을 판단하는 분위기가 사회 전체에 녹아든 것도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사정이 이러니 모처럼 만나는 학생에게 직장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냐는, 하는 이나 듣는 이나 객쩍기는 한가지인 소리를 생뚱맞게 건네 보는 것이다.

이제 대학은 학생이라는 노동력을 자본의 입맛에 맞게 다듬어 내보내는 공장이다. 돌이켜 보면 대학이 다른 역할, 가령 민족 엘리트를 양성하는 등의 책무를 떠맡은 시절도 있었던 것 같으나 오늘날의 대학은 거의 완전히 시장에 흡수되고 말았다. 학생을 가르치는 자의 입장에서 여간 난처하지 않다. 학생들을 가공하는 데 나부터 한 몫 해야 하는가 스스로 묻게 되기 때문이다. 인문학이나 순수 자연과학 같이 자본의 요구와는 무관해 보이는 내용을 가르치고 배우는 분야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전공과목을 가르치면 학생들의 사회 진출을 돕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방해하게 되지는 않나 하는 자괴감마저 드는 까닭이다.

현대의 노동 환경은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마저 파괴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와 같은 반인간적 노동 환경에 걸맞게 학생들을 가공하는 작업도 반인간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지적 호기심을 채우면서 복합적인 시각으로 대상을 분석하고 비판적으로 스스로를 반성해 보는 작업은 노동력 공급 공장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학생들은 군대 훈련소를 연상시키는 환경 속에서 획일적인 몸과 마음을 갖도록 조련되며, 그들이 어렵사리 집중하는 교과서엔 단세포적이고 체제순응적일 것을 요구하는 훈령만이 빼곡하다.

이런 현실에 우리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을 가능하게 만드는 시스템 전체에 제동을 걸어야 할 것이다. 아마도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스템의 볼트와 너트라 할 수 있는 노동력을 공급하는 일부터 그만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누가 그럴 수 있을까. 살벌한 경쟁 속에 단지 한 뼘의 안온한 공간을 차지하고 싶을 뿐인 이들을 무슨 권리로 몰아붙인단 말인가. 이들에게 직장에 정착하지 말고 사회의 주변을 얼쩡거리는, 혹은 '횡단하는' 인간이 되라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다시 생각하면 이런 질문으로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여기엔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학생들을 어느 쪽으로건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야말로 자기 처지를 반성하지 않는 오만이고 자기도취이다. 학생들을 내가 원하는 데로 제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대개 그 자신부터 이미 이 거대한 시스템의 볼트와 너트일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우리가 대단한 결심을 하고 대학이라는 제도를 이용해 제도에 근본적으로 저항하는 이들을 양성하고자 분투노력한다고 하자. 그것이 오히려 시스템의 우수성과 체제의 관용성을 시위하는 물증 노릇을 하지 않는다고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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