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9:25 (금)
닭들이 고발한 불신사회…대안은 '닭다리나 뜯으며'
닭들이 고발한 불신사회…대안은 '닭다리나 뜯으며'
  • 김선욱 숭실대 철학
  • 승인 2004.02.2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류독감의 문화사회학

조류독감에 대한 소식이 매체를 통해 전해지면서 먹거리에 대한 불안이 확산됐다. 음식은 생명 유지를 위한 일차적 조건이기 때문에 먹거리에 대한 불안은 보다 근원적일 수밖에 없다.


불안을 이기는 최상의 방법이 그 원인을 바로 아는 것임은 서구 계몽기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도깨비 이야기가 어린아이들을 불안하게 만들어 마당 건너에 있는 변소에 가지도 못하게 만들었던 시절에도, 그 도깨비를 보고 “너는 피 묻은 몽당 빗자루다”라고 말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책이었다. 자연의 공포와 인습적 권위의 힘은 ‘감히 앎’으로써 극복될 수 있었다고 믿고 서구의 근대인은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켜 왔고 우리도 그러했다.


사실 근대 문명의 발달을 통해 우리는 절대 빈곤의 문제를 해결했고, 부족사회에서 풍요사회로의 전환을 수행해 가고 있다. 그런데 울리히 벡의 말처럼 도구적 이성의 활용을 통해 이뤄낸 풍요사회는 그 이면에 위험사회의 그림자를 동반하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쌓아 올린 문명의 토대가 그리 튼튼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의 붕괴가 단지 옛날 일로만 치부될 것이 아니라는 것은 대구 지하철 참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낙동강물의 페놀 오염이 옛일이 아닌 것은 한반도의 줄기 수맥에서 페놀이 미량이나마 검출됐다는 사실을 통해 확인됐다. 부자들은 2리터 들이 한통에 몇 만원씩 하는 심해심층수를 사다 먹질 않는가. 농산물이 중금속으로 오염됐다는 이야기나 광우병이 쇠고기 대량생산을 위한 욕심 때문에 만들어진 재앙이라는 것을 언급하는 것은 오히려 시간낭비다.


조류독감이 한국 사회에 야기한 불안은 한국이 위험사회라는 이 같은 일련의 보고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이는 중국산 깨에 콜타르를 칠해 국내산 검은 깨로 속여 판 농산물 유통에 대한 불신과, 외국산 쇠고기를 한우로 속여 판 전력, 이런 일들을 적발하고 좋은 먹거리를 보장해 줘야 할 행정 관료들이 뇌물을 받고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른다는 불안, 이 행정 관료들을 이끌어 사회를 만들어 가야할 정치가들이 차떼기 해먹고 온갖 나쁜 짓은 다 해먹는다는 인식에 연장돼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경험하는 불안의 원인은 불신에 있다.


유리잔의 품질을 평가하려면 유리잔을 퉁겨 소리를 내 봐야 한다. ‘쨍’하는 소리의 청명도로 유리의 순도가 확인된다. 조류독감은 우리 사회의 불신의 정도를 측정하기 위해 퉁겨진 것이며, 조류독감이 준 불안은 우리가 만들어 온 불신 문화의 결과인 것이다.


문을 닫는 오리, 닭 요리점들, 도산하는 축산업계를 돕기 위해 정치인들의 시식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구제역 파동 때 다른 지역의 돼지고기를 구워먹으면서 마치 구제역 지역의 고기를 먹는 듯이 쇼를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과학자들이 왜 닭고기가 안전한지를 설명해도 그들의 말이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 주리라는 확신을 갖게 하지는 못한다. 새만금 사업을 놓고 연구비를 더 타기 위해 관이 원하는 대답을 과학적 연구 성과라는 미명으로 내놓았던 과학자들의 모습은 빙산의 일각이다. 이제는, 축산농가의 붕괴는 외국 축산업계에 의한 한국시장 지배라는 애국심에 호소하는 논리와, 코미디언들의 인기를 이용한 방법이 동원된다.


어쨌든 시간은 지날 것이고, 달리 대안이 없는 우리 국민들은 호소된 애국심을 갖고, 코미디언들이 삼계탕 먹는 모습을 보면서, 별로 미덥지 않은 과학자들의 말을 위안삼아 한껏 자극된 민감성을 스스로 둔화시켜갈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느꼈던 불안의 감정과 불신의 응어리는 기억의 아래로 잠복돼 있다가 ‘쨍’ 소리 나게 사회를 퉁길 어떤 일이 다시 발생하면, 다시금 인식의 전면으로 튕겨 나와 불안의 형태로서 우리 사회를 지배할 것이다.


그러면 진정한 대안과 해결책은 무엇인가. 그런데, 우리는 정말 대안과 해결책을 모르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 그리고 앞서 언급한 각각의 분야에서 피터지게 노력하는 활동가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다 잘 안다. 그러면? 이 글을 읽은 분들 각자가 이제 조용히 삼계탕 집으로 가서 불안한 마음으로 닭다리나 뜯으며 생각해 볼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