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9:20 (금)
[학술대회] 자본주의로 귀환한 정치경제학
[학술대회] 자본주의로 귀환한 정치경제학
  • 김재환 기자
  • 승인 2001.04.0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사회경제학회 봄 심포지움(동국대)
90년대 이후 학술담론의 주류는 이른바 '문화론'이었다. 욕망, 사이버, 디지털, 문화권력 등등의 용어는 문화론의 득세속에서 시민권을 획득한 어휘들이었다. 그러나, 금융자본의 세계화와 한국경제의 '위기'속에서 사회과학자들의 분석의 칼끝은 다시금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로 향하고 있다. 문화가 토대로부터 '상대적 자율성'의 영역을 구성하고, 심지어 '문화자본'을 형성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자리하고 있는 토대의 일차적 중요성은 상쇄되지 않는다. 문화론에서 '정치경제학'의 중심이동은 이른바 위기시대에 뚜렷이 감지되는 담론의 흐름이다.
지난 30일 열린 한국사회경제학회의 봄 학술대회 '한국경제와 정치경제학'은 80년대 사회과학의 주류였던 '정치경제학'의 현실분석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에 대한 진단과 구조조정에 대한 평가와 전망, 정경유착, 러시아와 독일의 자본주의, 사회구성체 논쟁의 부활을 예고하는 논문등 모두 8편이 발표된 이날 대회는 자본주의 일반과 한국자본주의에 대한 진보 경제학계의 논쟁적 담론이 선을 보였다.

"월가의 기준을 포기해야 한다"
최근의 '위기담론'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발표는 조영철 연구위원의 '한국경제의 구조조정과 정책대안에 대한 소고'. 조영철 박사는 "한국경제발전모델은 폐기되어야하는가, 세계기준(global standard)의 수용은 불가피하며, 구조조정도 세계기준에 입각해 진행할 수밖에 없는가"라는 논쟁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그에 의하면, 세계기준의 도입이 투자율이 저축율을 밑도는 거시경제불균형을 초래하여, "구조조정의 걸림돌이 되며 성장잠재력을 훼손하고 불확실성을 심화"시킨다. 따라서, 경제회복을 위한 단기적인 정책과제는 "투자율을 저축율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거시경제 불균형을 해소하면서 구조조정을 신속히 마무리하는 것"이고 그 핵심은 한국적 투자기준의 확립에 있다는 것. 그는 은행 구조조정의 핵심기준이 되었던 BIS 기준을 포기할 것을 제안한다. 그는 "월가의 포트폴리오 투자기준에 불과한 세계기준을 구조조정의 기본으로 삼아서는 안되고, 한국적 투자선별 기준을 찾아야 한다"며 "BIS 기준을 유보하고, 은행이 장기적 시계를 회복하여 기업구조조정을 적극적으로 주도할 수 있도록 제도적 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영철 박사의 논문이 '단기적 정책대안'을 제기하고 있다면, 김준일 씨(고려대 박사과정)는 '한국자본주의의 금융취약성'을 주제로 한 논문에서 한국경제를 자본주의 일반의 문제와 연관시키고 있다. 그는 "현대 자본주의 일반의 금융취약성은 현대 자본주의가 전세계적으로 금융부문의 과도한 팽창으로 인해 작은 충격에도 매우 취약한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는 경제학자 민스키(H. P. Minsky)를 원용하여 97년 외환/금융위기를 재해석하고 있다. 그는 한국 자본주의가 경제개발시기에는 금융부문의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했지만, "90년대 이후 금융자유화 등 일련의 변화들로 인해 자본주의 일반의 금융취약성이 심화, 위기로 전화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일반의 금융취약성에다 '국가의 퇴각'으로 인한 취약성이 더욱 심화된 한국경제의 대안은? 그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금융자율화, 자율적인 대출심사를 통한 시장규율의 확립, 자본시장 활성화, 건전성 감독"등은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못박는다. "과도한 단기차입에 대한 대책과 투기적 자본이동에 대한 제한이 필수적"이라는 것이 그의 제안.

자본주의를 넘어, 초근대를 향하여
이날 발표된 논문 가운데, 가장 논쟁적인 토론이 기대되는 논문은 정성기 교수(경남대 경제학)의 '사회주의 몰락이후의 탈자본주의 사회?: 사회구성체 논쟁의 부활과 전진을 위하여'. 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과의 연속성을 의식하며 쓰여진 이 '시론적' 논문은 사회과학과 현실운동과의 긴장이라는 '80년대적 문제의식'이 담겨져 있다. 토론자로 장석준 민주노동당 교육부장이 나선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 비판"의 유효성을 신뢰하는 그는 "90년대 근대사회주의가 몰락하여 자본주의로 퇴보한 이후, 20세기말 21세기초에 들어와서 근대자본주의는 선진국이 선진으로 계속 발전하지 못하고, 적어도 부분적으로 중진국화, 후진국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한다. 미국경제의 침체, 일본의 최악의 장기불황, 기독교적인 '서구적 중세로의 회귀'인 헌팅턴의 문명충돌론, 울리히 벡의 '서구의 브라질화'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징후들이다. 맑스와 신고전학파의 절충적 종합으로 "생산의 객관적 사회성과 조화하지 못하는 생산주체의 불합리한 욕망"을 자본주의의 근본문제로 설정하고, 이를 넘어서기 위한 '초근대의 사회구성체 논쟁'을 제안한다. 그의 제안은 자본주의적 근대에 대한 정치경제학의 '사회의학'적 기능을 복원하자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의 탈근대론과 동양론까지 아우르려는 그의 고투의 흔적은 역력하지만, 그가 명명한 대로 '2차 사구체논쟁'의 구체적 모습은 분명하지 않다. 후속 논의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김재환 기자 weibliche@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