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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원의 독서유감: 반유태주의의 현대적 기원
강유원의 독서유감: 반유태주의의 현대적 기원
  • 강유원 동국대 철학
  • 승인 2004.0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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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산업』(노르만 핀켈슈타인 지음, 신현승 옮김, 한겨레신문사 刊)

▲ © yes24
서양의 기독교도들은 예수를 죽였다는 이유로 유태인들을 오랫동안 박해했다. 그런데 동족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이 유태인의 역사에서는 자주 일어났던 모양이다. 이차대전 중 독일이 설치한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에서의 봉기를 조직했던 이자크 주커만의 회상이 그 증거처럼 보인다. “우리는 유대인이 유대인을 죽음으로 이끄는 유대인 고유의 특성을 독일인들이 이용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말은 막연한 자조처럼 보이지만 역사적 사실이다.

이스라엘 건국을 추진했던 시온주의자들은 이차대전 당시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방관했을 뿐만 아니라 유태인들을 구출하려는 연합국의 계획을 방해하기까지 했다. 그들이 이스라엘 건국에 참여하지 않으려 했고, 구출해봤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노인네들이나 가난한 이들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또한 나치가 설립한 '주터라트'라는 유태인 공동체 위원회는 나치의 유태인 말살 계획에 은밀히 협조해 잡아갈 유태인을 찍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랄프 쇤만, ‘잔인한 이스라엘’ 참조)

나치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자식이면서도 일부 유태인들에게 극심한 비난과 현실적인 탄압을 받고 있는 저자 노르만 핀켈슈타인은 주커만이 언급한 그러한 전통 위에 서있는 유태인들의 행적을 낱낱이 까발리고 있다. 그가 까발리고 있는 행적은 나치 홀로코스트의 유태인들을 두 번 죽이는 짓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분명 실제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홀로코스트를 인류의 부끄러운 역사의 하나로, 그리고 다른 희생자들은 물론 유태인들에게도 참혹한 기억임을 인정한다. 그가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정치적 이익의 목적에 맞춰 새롭게 창출된 홀로코스트 신화다. 이 신화는 동족 유태인들을 갈취하고 더 나아가 폭력과 억압, 인종말살을 일삼는 이스라엘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는 극악무도한 짓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 신화가 생겨나고 현실의 정치 세계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산업'이라 불릴 만큼 온갖 악행의 연결고리들을 잘 조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신화가 만들어지고 수행되는 과정은 시온주의의 그것과 유사한 형태를 보이고 있으므로 별로 새로운 것은 아닌 듯하다.

저자의 지적처럼 유에스는 “홀로코스트 산업의 본사나 마찬가지다.” 유에스의 유태인들이 홀로코스트를 본격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한 것은 아랍-이스라엘 전쟁 이후 유에스가 이스라엘을 중동의 전략적 제휴국가로 삼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다시 말해서 홀로코스트 신화와 산업의 등장에는 유에스의 대 중동정책, 유에스 내부에서의 유태인의 지위와 영향력 변화 등과 같은 정치적인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관련돼 있다. 그렇게 시작된 홀로코스트 산업은 엘리 위셀과 같은 이들을 중심으로 역사적 사실들을 왜곡하는 한편, 홀로코스트 희생자와 생존자를 미끼로 전 세계에 걸쳐 협박과 공갈을 일삼아 왔다. 이 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유태인 단체들이 저지르는 그런 짓거리에 화가 치민다. '유태인들, 정말 나쁜 놈들'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 단체들은 그렇게 갈취한 돈을 실제 생존자들에게는 나누어주지 않고 단체의 배를 불리는 데 쓰고 있다.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이 모든 작태는 전 세계에서 반유태주의가 생겨나는 근본 원인이 된다. 내버려 둘 일이 아니다. 더 나아가 아직도 세계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또 다른 '나치 홀로코스트'들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 역시 우리가 뚜렷하게 자각해야 할 문제이다. 홀로코스트 산업 종사자들이 언론을 틀어쥐고 있는 유에스에서는 철저하게 외면당했던 이 책은 그러한 자각을 위한 적절한 자료집 역할도 하고 있다. 번역 자체나 문장이 매끄럽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팽개칠 책이 아니다.

끝으로 이 책에서 발견한 서평에 관한 재미있는 사례 하나. ‘뉴욕 타임스 북리뷰’는 1933년 10월 15일자 서평에서 히틀러의 ‘나의 투쟁’에 대해 “독일인에 대한 그의 통합, 공산주의 괴멸, 젊은 세대 교육, 애국심으로 가동되는 스파르타식 국가 건설, 독일의 특성에 맞지 않는 의회 정부의 통제, 사유재산권 보호 등등”을 이유로 높은 점수를 주었다고 한다. 서평이 당파적이지 않을 때는 이렇게 될 것이다.

강유원 / 동국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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