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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워 벌이는 토론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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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4.02.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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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모임을 찾아서 13 : 필로-바이오날레

“유전자를 지나치게 '이타적' 또는 '이기적'이라는 인간적 관점에서 보는 거 아닌가요? 유전자는 생명체가 아니거든요.”

지난 20일, 서울 양재동의 한 세미나 실에서는 10여명의 필로-바이오날레 회원들이 다윈의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 대하여', 스티븐 제이 굴드의 '풀하우스', '인간에 대한 오해', 존 메이나드 스미스와 에올스 스자스마리의 '40억년간의 시나리오'를 읽어내고 있었다. 번역서라고는 하지만 교재만 총 4권인 까닭에 오후 5시를 조금 넘겨 시작한 세미나는 밤 11시가 다 되서야 끝이 났다.

이름만으로는 좀처럼 그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필로-바이오날레'는 생물철학을 연구하는 모임이다. 필로소피와 바이오를 합성해서 만든 이름인 것. 생물철학이라는 분야도 낯설긴 마찬가지다. 진화론에 대한 철학적 이해를 시도하겠다는 설명에도 고개가 갸웃할 수 있겠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까지 과학철학이 아울렀던 범주는 주로 물리학이었다. 거칠게 정리하자면 '과학적 인식', '실증론' 등으로 대표되는 과학철학의 개념들은 거시적인 차원의 인식을 조망하는 학문임을 은연중에 반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생명공학의 비약전인 발전과 더불어 사회생물학, 진화심리학 등 생물학과의 관계를 고민하는 학문분과들이 늘었고, 이것은 과학 철학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것이 과학철학의 주류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기존의 과학철학이 다분히 형이상학적 인식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었다면, 생물철학은 생물학이 보여주는 보다 구체적인 사실에서 철학적 명제를 고민하고자 한다. 생물학적 선천성과 도덕의식간의 관계를 재규정하는 것이라든가, 종분류 방식에 대해 고민하는 것 등이 이들이 가진 과제인 셈이다. 

모임은 2002년 11월부터 시작됐다. 첫 아이디어는 최종덕 상지대 교수(과학철학)와 이상하 계명대 교수(과학철학)가 제출했다. 알음알음 주변을 수색한 결과, 강신익 인제대 교수(의학철학), 박석준 대구한의대 교수(한의학) 등이 합류해 모임을 시작했다. 한 회 한 회 세미나가 진행되면서, 정세근 충북대 교수(동양철학), 김시천 숭실대 강사(동양철학), 이성호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편집위원(생물학) 등이 참석하기 시작했다. 새내기 연구모임인 탓에 커리큘럼은 ‘생물종’, ‘생물학적 이타주의’ 등 관련 서적을 독회하거나, 국내 번역서를 리뷰하는 정도다. 그러나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생물철학에 "관심있는 연구자"라는 가입 기준 때문인지 고작해야 10여명 남짓한 회원들의 전공 분야가 생물학과 의학에서 과학철학과 동양철학까지 대충 꼽아도 서너 가지 이상이라는 사실. 그렇다 보니 토론은 절로 각 분야를 가로지른다. 진화를 이야기하면서 業을 논하고, 윤회를 이야기하는 것이 낯설지 않다. 새로운 지식을 꼭꼭 씹어 자신의 언어로 다시금 만들어 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모임의 또 다른 특징은 세미나 방식이다. 지난 가을까지는 한 달에 한번 세미나를 개최했는데, 회원들이 서울, 청주, 원주, 대구 등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터라 다함께 모임을 꾸려가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석 달에 한번 모이는 대신에, 시간 제약을 두지 않는 인텐시브 세미나로 운영하게 됐다. 초저녁에 시작한 세미나는 새벽녘까지 이어지고, 소주 한잔 기울이면 먼동이 떠오른다. 그런 까닭에 대여섯 시간을 내달린 세미나는 너무 일찍 끝나서 어색할 정도다. "책 한권 읽어오면 책 열권 읽혀주니, 이래저래 남는 장사"라는 정세근 교수의 말처럼, 먼길 달려 와도 아깝지 않게 배워간다는 것이 이들이 모임에 참석하는 이유다.

진화론에 대한 철학적 이해를 탐구라는 큰 명제 아래에 있는 이 모임이 최근 고민하는 것은 '개념의 수평화'다. 영역을 가리지 않고 가로지르는 용어들이 신선하기도 하지만 공통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적어도 모임 내부의 소통을 가능케 하는 개념을 고민하고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학제적 대화의 가능성이 내부적 필요에 의해서 구성되고 있다는 것인데, 이들이 욕심이 어떤 성과를 낼지 기대해도 좋을 듯 하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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