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01:05 (토)
중문학에 대한 주체적 시선
중문학에 대한 주체적 시선
  • 이준식 성균관대
  • 승인 2004.02.2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간리뷰 : 『중국문학의 발생과 그 변화의 궤적』(서경호 지음, 문학과지성사 刊, 2003, 852쪽)

이준식 / 성균관대·중문학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이 말에서 연상되는 두 가지 장면. 제대로 된 고귀한 보물을 하나 엮으려는 장인은 넘쳐나는 재료로 흥분을 감추지 못하겠지만, 못난 재주밖에 없는 범인은 그 재료를 도무지 주체할 수 없어 늘상 당황하기 마련이다. 주대에서 청대에 이르는 중국 고전문학의 방대한 유산을 접하면서 우리는 ‘서 말 구슬’을 어떻게 추스르고 다듬어 어떤 모양으로 엮어낼 것인가로 부단히 고심해왔다. 그 역사가 족히 한 세기는 된다. 개중에는 재료조차 엉성하게 골라 허름한 팔찌로 엮어진 것도 있고, 재료는 그런대로 잘 골랐으되 평범한 목걸이로 엮어진 것도 있고, 그런가 하면 양질의 재료를 골라 남들이 감탄할 만큼 훌륭한 보물 한 세트로 엮어낸 것도 있을 터이다.

서경호 교수의 저작은 이 지난한 ‘구슬 꿰기’에서 과거 반세기 동안 한국의 중국문학계가 담당해온 몫과 경험을 자성하는 한 빌미 찾기에서 논의를 출발한다. 그의 담론은 중국에서 출품된 고만고만한 팔찌, 목걸이들이 우리 학계에 직수입되거나 가공 처리되는 한, 그것은 정보 집적의 차원에서나 유용할 뿐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독자적인 해석과 안목으로 새롭게 무언가를 엮어냄으로써, 중국 문학 전통이 궁극적으로는 동아시아적 삶과 사유의 궤적을 보다 심도있게 규명하는 기제가 될 수 있다는 제안이다. 물론 이 제안에는 몰개성적인 중국의 유사품에 대한 비판도 포함된다.

"우리가 문학전통이라고 부르는 것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글쓰기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흐름이며, 작가와 작품들은 그 흐름에 몸을 맡겼던 물방울과도 같다."--본문 29쪽에서

이 책에서 서 교수가 견지하는 일관된 지향은 중국 전통 문학의 전반적 흐름을 놓치기 않으려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문학사에 넘쳐나는 ‘정보’는 오히려 거의 부재한 반면, 문학양식의 발생과 그 변화를 기본축으로 한 서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개별적 작가, 작품, 유파는 그 변화양상을 설명하는 하나의 보조적 재료에 불과하다. 기존의 문학사에서 기술하는 특정 작품군, 특정 작가군의 문학적 성향이나 사상적 배경은 철저히 배제돼 있다. 그보다는 문학양식의 사회경제적 환경 변화와의 관련성, 문학적 생산의 사회적 유통관계 등 거시적 관점이 제기되고 있다. 그리하여 가령, '시경'을 서술하는 대목에서 독자는 '시경' 자체에 관한 ‘정보’를 얻지 못한다. 반면 저자는 그 노래가 문자로 기록된 사회적 배경과 의미, 문학적 글쓰기의 시원이라는 측면에 더 천착한다.

唐詩의 서술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백, 두보에 관한 정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거시적인 문학의 흐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사회경제적 변화와 특징 혹은 문화사상적 변화와 성격의 규명이 더 긴요하다. 특정 작가나 작품도 근체시 형성의 의미나 시의 사회적 기능을 규명하는 도구적 장치로서의 역할 이상은 하지 않는다. 이처럼 이 책 전반에는 중국 문학 전통의 ‘정보’를 주체적인 담론으로 이끌어낸 값진 집약이 돋보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