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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학자 출판계 데뷔 활발...대중성에 쏠려
신진학자 출판계 데뷔 활발...대중성에 쏠려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4.02.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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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저작물 높이는 출판사들의 저자발굴 풍경

입시중심의 학교교육과 언론의 대중영합적 교양이 일반화된 우리의 경우 앎의 빈틈을 메우고 자기성찰적 문화를 만들 ‘탈규범적인 지식의 자유시장’이 긴요하다. 특히 자유로운 발상을 지향하고, 저자들도 집필에 큰 부담이 없는 소출판물의 확산은 바람직하다.

최근 살림지식총서 등 국내 문고판들이 의욕적으로 시도되고 있어서 눈길을 모으고 있다. 청년기에 든 ‘책세상문고·우리시대’ 시리즈도 보폭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사이언스북스 등 과학출판사도 국내저작을 늘려나가는 추세지만 애로사항이 많다.

살림지식총서는 지난해 가을에 첫 출판물을 내고 지금까지 64권을 펴내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박치완 한국외대 교수와 주위 인맥들이 기획위원으로 참가해 학계의 주요 흐름과 필진들을 물어다가 요소요소에 배치하다보니 이런 속력이 붙었다. 중요한 것은 이 가운데 40% 정도가 저자의 첫 책이라는 점이다. 이미 생각이 알려진 저자들이 자신의 지식을 다이제스트하는 것은 큰 매력이 없는 반면, 박사에 근접해있는 새내기 저자들의 신선한 생각들을 만나는 건 여러모로 즐거운 일이다. ‘캐리커쳐의 역사’, ‘판타지’, ‘무협’, ‘문신의 역사’, ‘한국액션영화’ 등이 예들이다.

살림 측은 이들 저자에게 보통 3~4개월의 집필기간을 준다고 한다. 하지만 원고가 완성되는 평균기간은 6~8개월 정도. 2백매 정도의 소책자를 완성하는 데 몇몇은 1년을 넘기기도 하지만, 숙련된 중간필자의 길이 첫술에 열리는 건 아닐 터이다.

“학진에 신선한 아이디어 많이 뺏긴다”

살림지식총서가 저자를 출판계에 데뷔시키고,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2차독서를 유발시킨다면, ‘책세상문고·우리시대’ 시리즈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를 중요시함으로써, 이슈메이커를 배출한다. 탁석산, 한서설아, 조국, 이나미 등의 논쟁적 저술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책세상 측은 요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죽는소리겠지만 학술진흥재단 연구과제로 학자들이 몰려서 원고투고량이 줄고, 섭외도 안 된다”라고 문선휘 과장은 털어놓는다. 신선한 아이디어를 학진에 많이 뺏긴다는 불만인 것이다.

하지만 책세상문고는 궤도에 올랐다. 투고되는 원고의 70~80%가 계약을 맺고 있다. 산처럼 쌓이는 ‘횡설수설 아마추어 원고’나 '업적용 논문모음’과는 달리, 기획저술이 많다는 것이다. 책세상은 원고수정이 많기로 유명하다. 거의 모든 저자에게 ‘다시쓰기’를 요구하고 있는데, 아마 위의 70%라는 수치는 再稿 허락비율을 의미할 지도 모르겠다. 논문의 틀 속에서는 문제제기가 명확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게 편집의 변이다.

저자발굴 루트는 인터넷 시대를 맞아 다각화하는 추세다.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이슈투데이 등에서 연재하는 칼럼들이 책으로 엮이고, 개인 홈페이지도 공략대상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운영하는 커뮤니티 등에 수준 높은 글들이 많이 올라 출판인의 눈길을 모은다. 도서출판 당대 등 학술기획출판을 하는 곳은 교수신문 등 교수 저자들이 많이 등장하는 매체들을 집중적으로 리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서출판 산처럼의 윤양미 대표는 “교수신문 기사에 독특한 코멘트를 한 학자와 ‘한국인의 감수성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주제로 한 책을 계약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시리즈물은 독자층 없어…대중단행본이 살 길”

저자발굴로 명성이 자자한 푸른역사는 출판사 자체로 역사학자들의 사랑방을 운영하면서 많은 소스를 얻어낸다. 저자들은 출판사를 매개로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 학계 이야기를 주고받거나 기획 아이디어를 내기도 한다.

국내물이 드문 과학출판은 약간 다른 방식이다. 책이 될만한 칼럼이나 저자정보가 없기 때문에, 출판사에서 책의 틀을 연역적으로 짜고 그것을 감당해줄 필자를 찾아다닌다. 사이언스북스는 이런 방식으로 기획해 올 한해 국내저서를 10권 정도 펴낼 계획인데, 이는 지난해에 비해 확실한 증가세다.

과학계도 물찬 제비같은 당대적 과학주제들을 다루는 시리즈의 필요성이 있지 않냐는 질문에 권기윤 편집장은 곤혹스러워한다. “현재의 회사매출이 10억인데 이 정도로는 7명 식구 건사하기도 빠듯하다. 지금의 2배 규모만 된다면 시도하겠지만, 아직은 무리다. 문고판을 기획한 상태로 3년간 묵혀두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사이언스북스의 기획서들이 철저한 대중지향을 띨 수 밖에 없다는 걸 의미한다. 한국인의 의식주를 미생물학적으로 들여다 본 책, 20세기 의학사를 노벨생리학상과 연관시켜 고찰한 책 등이 올 한해 주요 리스트인데, 학술적 교양서는 주로 번역물로 감당할 생각이다. 번역물은 국내저작물에 비해 투자비용이 적게 들고, 과학계는 화약고라서 몸을 사리는 것도 있다고 권 편집장은 밝힌다.

지식을 잘 가공해 대중적으로 유포하려는 저자발굴이 참신한 문제의식을 가진 필자발굴보다 앞서가는 게 출판계의 추세인 것 같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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