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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상상력이 빚어낸 꿈의 도시설계
인문학적 상상력이 빚어낸 꿈의 도시설계
  • 김성우 연세대
  • 승인 2004.02.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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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여의도에서 새만금으로』(김석철 지음, 생각의나무 펴냄, 376쪽)

▲책에 실린 청계천 윤하가로계획(280쪽) ©

우리는 우리의 근대적 삶의 자리 만들기를 건축으로 시작했다. 그것도 서구적 건축모델로 시작했다. 과거의 전통적 삶의 자리만들기에서는 건축·도시·조경이 나뉘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유기적 전체를 생성시키는 방향으로 접근이 됐으나 근대도시는 기능분할적 도시패턴 위에 건축물들이 집적돼있는 상태에 가깝다. 때문에 근대도시에서는 도시설계와는 또 다른 영역이 있어서 그 영역간의 괴리를 메우고 환경적 통합과 의미살리기를 해줘야 하는 짐을 지게 된다.

도시설계가 수행해야하는 짐은 막중하지만 우리의 근대도시 형성과정에서는 도시설계적 책임을 질 수 있는 인력이 없었고 官·民·學·業 계 모두 그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건축가 김석철이 최근 출간한 '여의도에서 새만금으로'는 이러한 배경을 고려할 때 흔하지 않은 시도로서 우선 반갑게 받아들이고 싶다.

서울 도시계획에 비친 건축가적 상상력

도시설계의 영역과 문제를 전문서적으로서 다루려는 책이 아니고 개인적인 회고의 성격으로 다룬 책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드리지 않았으나 꼭 있어야만 했던 영역을 건드려준 반가움과 고마움이 느껴지기 때문에 일독의 가치를 느낀다. 그는 외국에서 이 분야를 공부해 학위를 얻고 귀국한 사람이 아니며 국내에서도 개인적 관심과 프로젝트의 경험으로 이 영역을 독학하듯이 꾸려나갔다. 일종의 토종 도시설계가인 셈이다.

'여의도에서 새만금으로'는 개인적 도시설계 프로젝트의 회고적 설명서에 가깝다. 자기의 주장을 체계를 갖춰서 주장하기보다는 그 동안의 경험과 생각을 이미 연재된 글과 합해 순서대로 정리한 책이다. 15개의 도시설계 프로젝트의 배경, 과정, 추구했던 목표와 이유들을 학생들에게 설명해 주듯이 풀어나갔다.

그 중에는 3개의 외국 프로젝트가 포함돼 있고 나머지 12개 중에 5개는 서울이 아닌 지방의 경우다. 따라서 7개가 서울과 관련된 프로젝트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가장 큰 비중을 갖고 다뤄진 부분이 서울의 도시설계이고 그것이 이 책이 기여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할 것이다. 비록 내용이 그 동안 여기저기에서 이미 소개됐던 것을 포함하고 있지만 아마도 서울에 대한 장기적인 도시설계적 비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기여가치가 있다. 그 대부분이 실현되지 않고 제안된 설계안으로서 남을 수밖에 없었지만 앞으로의 서울을 구상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관점들을 제시해준 것은 사실이다.

'사대문안 구조개혁'이나 '종묘-남산간 재개발 계획'은 역사도시의 재생계획을 보여주며 그리고 '꿈꾸는 한강', '서울 Vision Plan 2000'은 서울 전체에 대한 미래의 방향제시로서의 시도를 보여준다. 서울의 도시행정 및 계획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매일의 행정과 민원적 업무에 쫓기면서 이러한 상상적 가능성에 대한 꿈과 이상이 결여된 실무를 처리하기에 급급한 사정을 생각할 때 앞으로의 서울의 도시변화를 위해 도움이 되는 자료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대하면서 실현을 가능케 하는 구체적 전략보다 건축가적 상상력이 우선적으로 동원된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공학적 부분과 인문학적 상상력의 만남이 때로는 지나치게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그것은 이 책의 성격 전체가 그러하다는 차원에서 이해해 줄 만하다.

건축가적 상상력과 미래를 위한 제안으로서의 값어치는 인정할 수 있으나 그의 입장과 주장에 대해 논쟁을 유발하게 하는 유형의 책은 아니다. 그림들과 함께 편하게 읽고 지나가며 각 프로젝트의 배경과 관심사를 파악하면 될 것 같다. 동시에 저자가 지난 수십년 간 우리 도시설계적 프로젝트에 폭넓게 참여했다는 점과 나름대로의 방법론과 관점을 주관적으로 만들어가며 작업을 수행했다는 점, 그리고 그가 추구하려했던 내용이 신선한 제안과 해법을 나름대로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하게 된다. 김석철 씨는 길게 봤을 때 건축가로서보다도 도시설계에 대한 노력으로서 더 인정받게 되지는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책에 소개된 프로젝트가 실제로 실현된 것을 몇 안 되지만 그러나 하나의 책으로 엮어서 저자의 도시설계적 궤적을 읽어보게 하기에는 충분한 양의 작업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도시설계는 집합적이고 누적적인 것

한편 이 책을 대하면서 도시설계라는 영역이 불가피하게 갖게 되는 방법론적인 어려움과 개념적인 한계를 동시에 확인하게 된다. 도시의 변화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개인적 디자인으로서 성취가능한 것인가. 실현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多者간의 의견 조율과 전문영역간의 합의도출과정을 개인적 상상력과 조화시키는 시스템이 얼마나 가능할까. 그리고 역시 우리는 근대적 또는 근대건축의 이상을 지금도 자기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등과 같은 의문이 다시금 떠오르게 된다.

도시도 디자인되어야 하고 디자인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으나 동시에 도시설계는 개인의 꿈과 이상을 실현시키는 도구가 되기에는 집합적이고 누적적인 무엇이며 개인적이기보다는 조직적이고 일회적이기보다는 과정적인 무엇이라는 생각을 지을 수가 없는 것이다. 도시는 디자인일 수 있음과 동시에 자연스러운 생성과정이기도 해야 한다. 도시는 개인적 디자인일 수 있음과 동시에 공통체적 협의도출과정일 수밖에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한 건축가가 던진 시간의 꿈

우리는 지난 50년을 서구근대문화의 가치관속에 젖어서 자신을 형성시켰지만 앞으로의 시대는 더 이상 그러한 관점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김석철의 도시설계적 열정과 노력에 감사한다. 그는 서울과 한양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가졌고 실현시키지 못했을망정 나름대로의 도시적 비전을 제시해줬다. 그것을 그가 실현시키지 못하고 그림만 그렸다는 것을 탓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당장 실현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실현시키려 한다는 것은 오히려 위험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시간을 두고 되씹어 볼 수 있는 도시적 얘기거리가 필요하다. '여의도에서 새만금으로'는 그러한 얘기거리를 나름대로 제공해줬다는 것만으로도 소명을 다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모든 건축가의 꿈은 자신의 안을 현실로 실현시키는 것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한 건축가의 도시만들기를 지향한 꿈을 소개한다. 꿈은 그대로 실현되어서 좋은 것이기 보다 꿈이기에 좋은 것이기도 하다.

필자는 미시건대에서 '한국 초기불교건축의 역사와 디자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건축 역사와 이론 및 설계를 전공했으며 '場이론에 입각한 건축에서의 장의 이해와 건축장의 가능성', '서해도서민가의 평면형식의 지역적 특성에 관한 연구'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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