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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가 바꾼 노동운동, 노동자의식 추적
신자유주의가 바꾼 노동운동, 노동자의식 추적
  • 신원철 성공회대
  • 승인 2004.02.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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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경상대 사회문화연구원 연구총서

▲한국의 노동운동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계기로 운동의 이념과 진로를 둘러싸고 다양한 모색이 이뤄져 왔다. ©

신원철 / 성공회대·사회학

한국의 산업화는 그 속도가 대단히 빠르다는 점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역사적 사건으로 간주되는데, 산업화의 산물인 한국의 노동운동 또한 대단히 가파른 굴곡을 보여 왔다. 특히,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서 민주노동운동이 새로이 등장한 후 노동운동의 이념과 진로를 둘러싸고 다양한 모색이 이뤄져 왔고, 1997년 IMF의 구제금융과 더불어 진행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이후의 정치, 경제, 사회적 변화는 노동운동 위상의 재정립을 강요하고 있다. 하지만 진행 중인 변화의 핵심을 어떻게 이해하고, 노동운동이 어떠한 방향으로 대응해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혼란과 혼선이 남아 있는 것이 현실이다. 노동문제 연구자들이 현실의 변화를 따라가는 것조차 쉽지 않게 느껴지는 상황이다.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에서 발간한 두권의 책,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노동문제: 1997∼2001'(이하 '제1권'으로 부른다)과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노동운동: 1997∼2001'(이하 '제2권'으로 부른다)은 바로 1997년 이후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한국의 노사관계와 노동운동, 그리고 노동자의 의식에 어떠한 변화를 초래했는가를 추적하고 정책적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시도만으로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1997년 이후의 시기에 이뤄진 정치, 경제, 사회적 변화가 대단히 급속하고도 광범위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것이 노동문제와 노동운동에 미친 효과를 총체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은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매우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실태조사에 의거 5-6년간의 변화 분석

사회과학연구원에서는 이 방대한 연구를 위해 10명이 넘는 국내외 연구자들이 2년이 넘게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해왔으며, 이미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노동체제의 변화'와 '신자유주의와 세계노동자계급의 대응'이라는 두 권의 책을 통해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노동문제, 노동운동을 연구하기 위한 방법론적 쟁점과 비교연구의 시각을 다룬 바 있다. 이번에 발간된 두 권의 책은 2002년 7∼8월에 부산, 울산 등 영남지역 소재 금속산업 노동조합 및 조합원에 대한 실태조사에 의거해 지난 5∼6년간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이후의 변화 방향을 전망하고 있다.

이 방대한 연구의 내용을 요약하는 것조차 이 짤막한 서평에서는 불가능하므로, 이 공동연구의 핵심적 문제의식과 성과의 일부만을 소개하면서 공동 연구 내부에 존재하는 긴장과 모순에 주목하고자 한다. 개인의 연구가 아닌 집단 공동연구에서는 완전한 관점의 일치는 가능하지도 않고 또 필요하지도 않지만 이러한 서술방식을 취하는 이유는 이 책에 실린 논문들에서 나타나는 개념과 분석틀 사이의 긴장은 현재 노동운동 내부의 입장 차이와도 관련돼 있으며, 이러한 긴장을 해결하고 조절해나가는 과정이야말로 공동연구의 효과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1권'의 제1장은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을 견지한다는 점을 명시하면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노동운동의 대안으로 검토된 바 있는 '사회적 코포라티즘'이나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는 본질적으로 신자유주의적인 접근과 동일한 것이거나 역사적으로 실패한 접근이라고 보고, 조직노동운동과 반세계화운동의 결합을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제1권'의 제2장에서는 종속적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대안으로서 진보적 구조개혁이 제시되고 있는데, 이는 사회주의로 향해 가는 '이행기 강령'으로 그 성격이 규정되고 있다. 

그런데 제1권 1, 2장의 문제틀은 역사가 사회주의를 향해서 단일방향으로(비록 나선형적이라는 단서는 붙어있지만) 단계적으로 발전해간다고 하는 도식을 전제로 하고 그러한 도식 하에서 당위적인 평가기준을 도출해내고 있다. 이에 비해서 ‘제2권’의 제1장에서는 1997년을 기점으로 ‘1987년 노동체제’가 해체되는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데, 한국의 노동체제는 유럽식의 사회조합주의 보다는 미국식의 변형된 조합주의에 가까운 형태로 발전할 것으로 조심스럽게 전망하면서도 ‘신자유주의에 투항하지 않는 새로운 노동체제의 형성’ 가능성을 함께 타진하고 있다.

노동배제적 구조조정으로 삶의 질 떨어져

여기에서 ‘노동체제’는 "특정한 자본축적 체제에 조응해 형성되는 노동통제, 노동시장, 그리고 노동운동의 특정한 유형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구성되는 포괄적인 계급(정치)관계"로 규정되고 있다. 이 글에서 ‘자본축적체제’와 ‘노동체제’ 등의 개념은 이론적 구성물로서 현실의 변화를 분석하면서 동시에 행위자로서 노동운동의 개입, 선택 지점과 현실의 변화가능성을 포착하는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제1권’의 제3장에서는 경제위기 이후 기업구조조정이 노동생활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를 추적하고 있는데, 이윤전략과 기업시스템의 총합으로서 생산모델이라는 개념을 동원하고 있다. 지난 시기의 구조조정은 ‘시장정합적이고 노동참여적’인 기업시스템이 구축되는 과정이 아니라, 노동배제적인 성격의 것이었고, 이에 따라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저하되었다고 보고 있다. ‘제1권’의 제5장에서는 제조업에서 간접고용형태의 비정규고용이 확산되어왔음을 보이고, 이는 인건비절감과 단기적 이익확보를 추구하는 경영전략의 산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제3장과 제5장에서 언급된 ‘시장정합적이고 노동참여적’인 기업시스템이나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인적 자원개발과 생산성 향상을 추구하는 길’이라는 개념은 ‘제1권’의 1, 2장에서 말하는 반세계화운동이나 이행기 강령과 같은 문제의식과는 쉽게 해소되기 어려운 긴장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신자유주의에 투항하지 않는 새로운 노동체제’의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개별 기업수준에서 자본, 경영측과 생산성 연합을 추구하는 활동 방식의 한계와 문제점, 그리고 그 대안이 더 논의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제1권’의 제4장의 논의는 이러한 작업과 밀접하게 관련되는데, 작업표준 및 시간관리, 그리고 노동자의 배치전환 등 노동과정과 관련된 사항에 대하여 한국의 노동조합이 단체교섭의 대상으로 삼지 못하고 있는 점을 주요한 문제로 보고 이에 대한 전술적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심층사례연구방법으로 논의 완성도 높여야

‘제2권’의 나머지 장들에서는 주로 경험적 조사에 기초하여 지난 5년간 노동운동의 변화과정이 구체적으로 정리돼 있다. 제3장에서는 노사정위원회의 구성과 노동조합의 참가 및 탈퇴 과정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통하여 노사정위원회의 본질과 기능을 해명하고 있다. 제4장에서는 단체교섭의 내용과 성격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작업장 수준의 노사관계의 변화를 추적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일괄타결 관행이 정착되고, 산별노조로의 전환에 따른 교섭방식의 집중화가 나타나고 있다. 제5장에서는 금속산업노동조합의 민주주의를 선거경쟁, 조직의 운영과 의사결정, 조합원 참여라는 측면에서 검토하고 있다.

특히 “조합원 참여의 측면에서 1987년 이후의 표출적이고 폭발적인 조합원참여는 점차 단체교섭을 위한 압력수단으로서의 도구적 참여로 의례화되고” 있다고 보고 “변화된 환경에서 노동조합운동의 활로는 단체교섭의 기능을 넘어 사회적 수준에서 노동조합의 기능과 역할을 확장하는 것, 기업수준을 넘어 조합원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노력에 달려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6장에서는 지난 시기 주요 선거 과정에서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시도와 성과를 평가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되돌릴 수 없는 하나의 정치적 흐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지만,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물적·인적 기반을 제공하는 민주노조운동 자체”의 위기상황으로 인해 노동자 정체세력화의 전망 역시 낙관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이외에도 노동자 의식의 변화와 노동력재생산구조의 변화 등 한국의 노동문제와 노동운동의 쟁점 현안이 폭넓게 다루어지고 있다. 이들 경험적 조사연구 논문의 경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설문조사 이외에 심층 사례연구방법이 결합됐더라면 작업장 수준의 노사관계나 노동자 의식, 조합민주주의 등에 대해서 보다 밀도 있는 논의가 이뤄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앞으로도 후속 연구가 계속 예정돼 있는 바 이후의 연구 과정에서 작업조직 재편 및 숙련형성, 그리고 고용조절 과정에 대하여 노동조합의 개입을 증대시키고 - 즉 노동과정 및 노동시장에서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차지하는 지위를 상승시키면서 - 자본주의 시장 경쟁 논리에 대항하는 노동자계급의 정체성을 유지, 강화시켜나갈 수 있는 방안이 탐구되기를 기대해본다.

필자는 서울대에서 '기업내부노동시장의 형성과 전개 : 한국 조선산업에 관한 사례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노동사, 노동정책, 노사관계, 노무관리, 임금제도 등에 관한 논문을 발표해왔으며, 공저서로 '금속산업 사내하청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실태 연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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