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여전히 '방법론'이 문제다
논쟁: 여전히 '방법론'이 문제다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4.02.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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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 : 논쟁의 목소리들

한국사회사학회가 발행하는 반년간지 '사회와 역사' 최근호(64호)에 논쟁적 목소리가 꿈틀대고 있다. 총 3편의 논문이 크고 작게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글들은 방법론을 성찰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사회와 역사' 최근호에 '중국의 국민 정체성과 시민권'을 발표한 최현 동국대 강사는, 문화적 분석으로 동아시아의 사회변동과 발전을 설명해온 기존 문화주의자들을 익명의 청자로 설정해서 비판하고 있다.


전상인 한림대 교수의 '반사실적 추론과 역사(사회학) 연구'는 "만약 ∼이었다면"이라는 이프 가설을 역사연구에 적용하는 문제를 이론적, 연구사적 검토를 통해 제안하고 있다. 전 교수는 제안에 그치지 않고 결론 부분에서 기존연구 비판을 시도했는데, '역사추상적 비교방법'으로 논문을 꾸준히 발표해온 강정구 동국대 교수가 표적이 됐다.


마지막 하나는 김필동 충남대 교수의 서평 '사회사 연구의 한 근본 과제에 대한 도전'이다. 지승종·김준형·허권수·정진상·박재홍 교수가 공저한 '근대 사회 변동과 양반'(아세아문화사 刊)에 대해 학제적 연구의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깐깐한 쓴소리에 글의 절반 이상을 할애하고 있다.

연구방법론과 관점설정 차원에서의 성찰들

이 세편의 글은 단순한 논쟁과 비판이 아니라, 연구의 방법론과 관점설정 차원에서 성찰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토대에 대한 재성찰은 논의가 지엽화되는 걸 막아주고, 좀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역사서술, 공동연구, 사회변동 설명 등에서 방법론 논쟁이 예상된다. ©

최현은, 문화는 사회변화를 이끄는 종속변수이지 독립변수일 수 없다는 관점아래, 기어츠 등을 인용해가면서 문화주의적 접근의 한계를 짚어나간다. 그는 국익을 통해 실용적으로 국적의 테두리를 좁히거나 넓혀온 중국의 사례를 볼 때 이는 분명해진다고 말한다.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정치 지도자와 엘리트들 이 대중을 동원하기 위해 신화, 전통적 가치, 문화적 용어를 이용"해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화주의자들은 문화적 흐름 뒤에 놓인 정치경제적 요인은 과소평가하고 문화적 요인을 중국사회의 변동을 설명하는 손쉬운 도구로 사용해왔다는 비판이다.


도올 김용옥은 최근 신문칼럼에서 "이 지구상에서 도덕적인 정치의 구현을 위하여 이토록 순수하게 발버둥치고 있는 민족이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것은 다름 아닌 조선왕조 유교문화전통의 연속성 속에서 이해돼야 하는 仁의 실현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해서는 최현의 논문에서 이론적 자원 역할을 하는 브루베이커도 같은 생각이다. "독일 같은 혈통주의적 민족주의 전통이 강한 나라에서 '문화'는 국민정체성 창출의 근간이 된다"는 건데, 김용옥은 그 혈통에 해당하는 仁의 전통을 언급한 것이다. 그 인이 부정부패에 대한 리얼리즘적이고 유연한 인식을 원천봉쇄하는 근본주의적 인식인 것은 그 다음 문제다.


최현의 논문에 대해서는 국가단계로 볼 때 중국이 한일에 뒤진 '과도기'라 관주도적 정체성은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질문을 던져볼 수도 있다. 최현은 이에 대해 일단 "그런 시각도 가능하지만, 그렇게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최 씨는 "국내 문화적 동아시아론자들의 반응을 기대한다"고 전화통화에서 밝혔다.

전상인 교수, "강정구 교수의 역사추상론 잘못"

한편 전상인 교수의 논문은 그 논지가 비교적 분명하다. "이프(IF) 가설은 우연의 집적으로 이뤄진 역사의 본질에 충실할 수 있는 유용한 보조적 도구이다. 하지만 조심하고 신중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선행하는 원인이 오직 특정 결과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보이는 관계에 대해서만 가정법적 질문을 사용해야 한다"는 테틀락의 견해를 결론격으로 인용하고 있다. 거대서사나 장기서사보다는 미시서사 단기서사에 적용돼야 한다는 말이다.


전 교수는 이프 가설을 잘못 적용하는 대표적 사례로 강정구 교수의 논문을 예시 분석해 논란의 불을 당기고 있다. 그는 "만약 미국의 점령이 없었다면 남한의 농지개혁은 북한에서와 같이 혁명적 농지개혁이 됐을 것"이라는 강 교수의 주장에 의의를 제기한다. 강 교수의 시각인즉 '남한은 미국이 개입해 어그러졌고, 북한은 소련이 개입하지 않아 괜찮게 됐다'는 점인데, 전 교수는 이런 추론이 "당시 남한과 북한이 혁명적 농지개혁을 성취할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을 공유하고 있었는가 하는 점에서부터 의문을 유발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당시 남한에는 사회주의적 성향을 지닌 지주도 많았고, 미 군정 또한 토지개혁에 시종일관 부정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게 의심의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남한에서의 미국역할에 비해 북한에서의 소련역할이 (강 교수의 논문에서) 최소화돼 있는 것도 타당성을 약화시킨다"라고 비판했다. 전 교수의 이런 비판을 접한 강 교수는 우리 신문에 "연구결과 분석으로 방법론을 비판하는 건 영역오류"라며 발끈했다(아래의 반론 참조). 누가 옳고 그르든 논쟁을 제기한 전 교수와 강 교수 사이엔 밀고 당길 틈과 여유가 별로 없어 보여 아쉽다.

"공동연구, 방법론상의 한계 드러냈다"

김필동 교수의 서평은 지난 2000년에 출간된 '근대 사회 변동과 양반'이 다양한 전공이 참여, 다양한 관점과 방법(심층면접, 문헌연구, 표본조사)을 적용해 당대 양반사회를 생동감 있게 포착했고 곧 사라질 과거를 객관적 사료로 확보해낸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미덕에도 통계적 자료의 나열로 그칠 뿐, 그걸 하나로 엮어주는 성찰이나 다른 계급과의 관계에 대한 탐구로 넓혀나가진 못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를 방법론상의 한계로 강조하는데 "토론이 부족하고, 연구자 개개인의 개성과 학문적 배경에 맡겨진 측면이 농후하다"라고 말해 공동연구의 고질적 문제를 다시 환기시켰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사례연구가 경상남도의 서부지역이라는 가장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지역에 대한 표본으로 이뤄졌음에도 때로는 이를 "일반적인 (전체 양반사회의) 변화의 모습인양 서술되고 있다"라는 점이 큰 약점이라고 쓰고 있다.


최현의 논문은 문화적 환원론, 전상인 교수의 논문은 방법론의 자의적 확대, 김필동 교수의 서평은 통계적 접근법의 일반적 문제 등을 지적함으로써 연구자의 함정이 무엇인지에 대한 토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반론 : 전상인의 비판에 답한다

'영역오류' 혹은 '비판을 위한 비판'

강정구 / 동국대·사회학

전상인은 필자의 '방법론' 자체를 비판한 게 아니고 '실재 분석'에 대한 비판만 가했다. 결과적으로 연구결과물에 대한 비판을 근거로 방법론을 비판함으로써 영역오류를 범해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는 부정적 인상을 줄 우려가 있다.

베링턴 무어나 커밍스 등도 반사실적 추론을 본격적으로 적용한 것은 아니다. 아마 방법론으로 제시하면서 완결 분석을 시도한 것은 국내에서 필자가 처음일 것이다. 그런데 박명림 등의 斷想과 비교하는 것은 수필과 논문의 비교처럼 잘못된 것이다.

"전 교수, 역사추상 방법론 이해못해"

전상인은 "우리 민족이 자주적으로 쟁취한 해방이 아니었던 만큼 해방 정국의 진로가 연합국의 전후 처리 과정과 결코 무관할 수 없기 때문"에 또 필자가 "군사적 승리가 정치를 좌우한다"는 국제정치학의 일반이론을 무시하기 때문에 순수해방공간에 대한 필자의 반사실적 추론은 적실성이 없다고 본다. 그는 强者가 강요한 뒤틀린 역사를 비판하고 고발하기 위해 순수해방공간을 설정해 비판의 기준을 삼자는 나의 방법론 자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역사추상형 모델과 실제의 역사를 비교해, 양자간에 발견되는 차이를 외세의 영향력에 의한 결과물로 간주하는 것이 가장 객관적인 그리고 주체적인 기준일 것이다. 토지개혁 강령 등에서 이승만, 조선공산당, 한민당, 남로당, 국민당 등의 다양한 노선은 각자 민족 정통성을 주장한다. 그러면 이를 판별한 현실적 기준은 무엇인가. 군사적으로 승리한 미점령군의 정책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올바른가.


물론 외세가 개입하지 않은 역사추상형 모형이 무조건 이상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해방공간의 역사추상형 모형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민족사의 보편성과 당대의 세계사적 보편성을 아우르고 있었기에 정통성이 있다. 또한 당시 요구된 민족사적 핵심과제에도 부합되는 것이었다. 보기를 든다면 친일파 청산, 통일성취, 토지개혁, 민족자주 확보 등이었다.

구체적 반론 없이 '과소평가'

1996년 필자는, 소련의 개입을 외세의 미개입이라는 추상모델과 비교해본 논의에서 "만약 북한의 혁명적 농지개혁이 소 점령군의 결과라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가정을 전제로 해야 한다"라는 역사추상형 반증법을 사용해 5가지 가정이 실재 역사에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소련개입은 외세 미개입과 동일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한 필자가 현대사의 기본 출발로 삼는 역사추상 곧, "만약 외세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조선 사회 전체가 사회주의가 지배적인 사회구성체로 되는 것은 역사의 필연이었다"라는 주장과 뒷받침하는 많은 논거에 대한 구체적인 반론을 제시하지 않고 그저 스쳐 지나가며 과소평가로 단정짓는 것은 논평자의 진지한 태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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