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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숙의 숨겨진 그림 이야기] 인류를 위협하는 전염병
[박희숙의 숨겨진 그림 이야기] 인류를 위협하는 전염병
  • 교수신문
  • 승인 2020.07.01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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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슈도드에서 창궐한 전염병'-1630에서 1631년, 캔버스에 유채,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아슈도드에서 창궐한 전염병'-1630에서 1631년, 캔버스에 유채,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지금 현재 전 세계인들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질병이 코로나19다. 치료제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상태여서 전 세계를 공포 속에 몰아넣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기니, 나이지리아 등등 아프리카 대륙에서 발생한 치사율 60%에 이르는 에볼라 바이러스와 중동 지역에서 발생한 메르스 바이러스 등 특정 지역에서만 창궐한 것과 달리 중국에서 발생했지만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코로나19가 바이러스가 더 위험한 것은 교통수단이 발달해 잠복기의 전염병 환자들이 발병 사실을 몰라 본인이 의도하지 않아도 장소를 쉽게 옮길 수 있어 질병이 확산되고 있는 현실이다.  

역사적으로 많은 인명을 앗아갔던 전염병을 꼽으라고 한다면 한센병, 페스트, 결핵, 천연두 등등이 있다. 지금은 이러한 질병들은 치료약이 개발되어 완치할 수 있지만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에는 죽음의 공포로 사회를 마비시킬 정도였다.   

수많은 전염병 중에서도 인류를 죽음에 공포에 몰아넣은 전염병을 꼽으라고 한다면 페스트다. 흑사병으로 불리는 페스트 병은 페스트균에 의해 발생하는 급성 전염병으로 페스트균은 숙주 동물인 쥐에 기생하는 벼룩에 의해 사람에게 전파된다. 페스트는 전 유럽에 대유행을 해 희생자가 굉장히 많았다. 

전염병의 치료약이 없었던 시절에는 한센병, 페스트 환자들을 감염을 막기 위해 격리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전염병 환자들은 치료는커녕 음지에서 목숨만 연장했을 뿐이었다.

페스트가 창궐한 도시를 그린 작품이 푸생의 '아슈도드에서 창궐한 전염병'이다.

이 작품은 17세기 유럽 사회를 뒤흔들었던 유행성 전염병 페스트를 그린 것으로 당시 떨어진 평균 기온으로 인해 농작물이 자라지 않아 도시민이나 농민들이 영양부족 상태였다. 영양부족은 질병에 대한 면역력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와 전염병에 취약하게 만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17세기 프랑스 군인들과 용병들이 군사작전에 의해 이탈리아 북부로 전염병을 옮기기 시작하면서 유럽 전체가 전염병에 타격을 입었다.  

화면 중앙 어린아이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여성의 가슴에 손을 올린 채 하늘을 보고 울고 있고 왼쪽에는 아이가 쓰러져 있는 여성의 얼굴을 보며 누워 있다. 여성의 다리에 앞에 서 있는 남자는 상체를 구부린 채 한 손으로는 입을 막고 한 손으로는 울고 있는 아이의 머리를 만지고 있다.  

울고 있는 아린아이 옆에는 둥근 통에 기대어 있는 남자와 바닥에 주저앉아 고개를 들지 못하는 남자가 있다. 

도시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피해 도망가고 있으며 화면 오른쪽 상단에는 두 사람이 시체를 거적으로 옮기고 있으며 회색의 옷을 입은 남자는 몸을 일으키지 못해 계단에 주저앉아 있는 남자를 향해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광장 바닥에 이리저리 도망가기 바쁜 사람들이 사이로 쥐들이 먹이를 찾아 움직이고 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여성의 회색빛 몸은 붉은색 옷과 대비되면서 여인 죽은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온몸이 흑색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은 흑사병을 나타낸다. 가슴에 기대어 있는 어린아이는 살아 있다는 것을 나타내며 왼쪽의 바닥에 누워 있는 아이의 회색빛 몸은 흑사병으로 죽은 아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얼굴을 쓰러져 있는 여성에게 향하고 있는 것은 두 사람이 모자지간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여성의 발아래 몸을 굽힌 채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있는 남자는 아이의 아버지를 나타내며 여성의 남편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오른쪽 둥근 통에 기대고 앉아 있는 남자의 몸이 검은색에 가까운 것은 그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며 팔로 얼굴을 괴고 있는 자세는 질병에 자포자기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파의 페스트 환자를 방문한 나폴레옹'-1804년. 캔버스에 유채,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자파의 페스트 환자를 방문한 나폴레옹'-1804년. 캔버스에 유채,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니콜라 푸생(1594~1665)의 이 작품에서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 질병을 피해 도망하는 사람들을 통해 17세기 전염병이 창궐하는 유럽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는 당시 유럽의 현실을 보여주면서도 개인의 운명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화면 정면에 죽은 아내와 어린아이 그리고 살아 있는 남편과 우는 아이를 그려 넣었다.

전염병이 발생하거나 사회적으로 대형 사고가 터지면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 중에 하나가 정치인들의 병원 방문이다. 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대중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환자를 방문한 정치인을 그린 작품이 그로의 '자파의 페스트 환자를 방문한 나폴레옹'이다. 

나폴레옹 군대는 이집트 원정 초반 시리아 지방을 점령하기 위해 시나이반도를 건너가면서 자파라는 도시를 공격해 점령한다. 하지만 자파에서 페스트 전염병 때문에 프랑스 군인들이 쓰러지게 된다. 프랑스 군대 지휘자들은 페스트 환자들을 수용하고자 모스크 사원을 개조해 병원으로 사용했다. 

화면 중앙 나폴레옹이 팔을 뻗어 환자의 몸을 만지고 있고 옆에 군인이 나폴레옹의 팔을 잡고 있다. 나폴레옹 뒤에 있는 참모는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가리고 서 있다. 바닥에는 병사들이 쓰러져 있다.

나폴레옹이 환자의 몸을 만지고 있는 것은 병사를 걱정하는 지도자라는 것을 나타내며 그의 팔을 잡고 있는 군인은 의사로서 페스트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 제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관에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고 있는 것은 전염병이 옮을까 두려워하는 것을 나타내며 나폴레옹의 행동과 대비되면서 영웅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장군에 등장에도 불구하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병사는 비참한 현실을 나타내며 왼쪽 턱을 고인 채 앉아 있는 환자는 절망을 의미한다.

배경의 돔 형태의 건물은 모스크 사원을 나타낸다. 

앙투안 장 그로(1771~1835)의 이 작품은 실제의 상황을 그린 것이 아니다. 나폴레옹은 자파의 병원을 방문해 페스트 환자의 몸을 만지거나 위로하지도 않았다. 그는 방문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나폴레옹은 군부대에 페스트가 돌자 시리아 원정을 중단하고 이집트로 후퇴하면서 환자들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로는 나폴레옹이 자파의 병원을 직접 방문하지는 않았지만 환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나폴레옹을 위해 이 작품을 제작한다. 그는 나폴레옹의 영웅적 이미지를 나타내기 위해 예수 그리스처럼 표현했다. 

나폴레옹이 환자의 몸에 손을 대고 있는 행동은 인간미를 나타내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병 환자의 몸에 손을 댄 기적을 암시한다. 즉 나폴레옹은 평범한 지도자가 아니라 인간을 위해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그로가 이 작품에서 나폴레옹의 영웅적 이미지를 잘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종군 화가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당시 화가들은 나폴레옹의 영웅적인 행동을 찬미해야만 했다. 그로는 이 작품으로 1804년 살롱에 데뷔했으며 중군 화가로 공로를 인정받아 나폴레옹에게 남작의 작위를 받는다. 하지만 그로는 나폴레옹에게 인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작품에 대한 불만과 스승 다비드와의 갈등으로 센 강에 투신해 자살한다. 

그로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불만이 컸지만 오늘날 그는 고전주의 전통적인 기법을 존중하면서도 명암이 뚜렷한 회화적 효과를 추구해 낭만주의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의 일상을 많이 바꿔 놓고 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 치료제가 없다 보니 스스로 방역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다. 비말에 의한 전염을 방지하기 위해 사람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밀폐된 공간에서는 무조건 마스크를 작용해야 하며 물건을 만지면 손을 씻어야 한다. 

또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회에 전반적인 영향을 끼쳐 재택근무라는 새로운 형태의 근무환경을 만들어냈다. 이렇듯 예기치 않게 발생한 언택트 문화로 인해 사회구조 자체가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우리는 불편하게 만들고 생활을 어렵게 하지만 그래도 이승의 끈을 잡기 위해서 우리가 감내해야만 하는 것을. 

박희숙 화가, 전 강릉대 교수.
박희숙 화가, 전 강릉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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