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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문화칼럼]전쟁의 승자는 원래 없다
[김희철의 문화칼럼]전쟁의 승자는 원래 없다
  • 교수신문
  • 승인 2020.07.01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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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 ‘6·25전쟁 70주년 기념 특별전: 경계 위로 부는 바람’ 온라인 기획전 상영작
남부군(1990) 복원본 리뷰

1950년 6월에 시작되어 1953년 7월에야 멈춘 한국전쟁은 민족 간의 지역 전쟁이 아니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의 대리전 형태로 일어난 세계대전이었다. 이후 남북 간에는 실로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최근 몇 년은 온탕과 냉탕을 드나드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던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과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불과 1,2년 전 일인데 북한의 개성 연락사무소가 허무하게 폭파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한반도의 운명은 도대체 언제쯤 평화롭게 될 수 있을까?  

한국영상자료원은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기획전을 마련했다.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영작에는 30년 전 개봉되었던 <남부군>이 포함되었다. 이 작품은 자료원이 정지영 감독으로부터 위탁받은 35mm 필름을 4K로 디지털 복원하여 공개한 것이다. 안성기, 최민수, 이혜영, 임창정 등 스타 배우들의 젊은 시절, 고인이 된 최진실의 모습이 반가움과 애잔함을 선사한다. 

한국전쟁 당시 1년 5개월간 지리산 빨치산 대원으로 활동했던 이태의 동명 수기가 영화 <남부군>의 토대가 되었다. 영화의 시선과 나레이션의 주인공도 이태라는 합동통신 기자 출신의 빨치산이다. 빨치산(PARTISAN)이란 ‘이념적 항쟁의 성격을 띤 소규모 무력투쟁을 하는 사람들’을 부르는 명칭이다. 이들은 주로 게릴라전처럼 적진의 후방에서 기습, 침투 등을 통한 비정규전을 벌인다. 

하지만 빨치산들의 가장 큰 적은 국군 토벌대가 아니었다. 북한 인민군의 지원은 이미 오래전 끊겨 어떻게든 지리산에서 살아남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고열과 심한 통증을 수반하는 전염병, 살을 에는 추위와 그로 인한 동상, 굶주림, 국군 토벌대를 지원하는 비행기의 포격, 귀순을 유혹하는 선전물, 치아의 빠질 지경의 영양실조...  

<남부군>, 감독 정지영, 1990

전투에 지쳐 모닥불을 지피고 앉은 빨치산들 가운데 이태가 속한 정치 지도원들도 몸을 녹이면서 토론을 벌인다. “어느 쪽에도 승리는 없습니다. 우리의 비극은 애초에 일본 제국주의 침략자들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몰아내지 못하고 외세에 의해 해방을 얻은 데서 비롯된 것이죠. 남과 북 그 어느 쪽이 이긴다 해도 그건 우리 조선 인민의 승리가 아니라 소련이나 미국의 승리가 되는 것이죠.”

1952년 시천면 외공마을에서 토벌군에게 체포되기까지 주인공 이태는 너무 많은 죽음들을 목격했다. 한국전쟁 기간 동안 130만여 명이 사망하고 111만여 명의 행방불명되었다. 후방이었지만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던 지리산에서만 2만여 명의 군경과 빨치산이 사망했다. 53년 체결된 휴전협정 조인서에는 양측 후방에 남겨진 장비의 철거, 전사자에 관한 조문은 있었지만, 지리산에서 헤매고 있는 빨치산들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었다. 

인민군 빨치산들과 남한 국군이 전투를 하던 중 강아지를 쫓던 동네 꼬마 때문에 잠시 사격을 중지하는 장면이 나온다. 서로를 “빨갱이 산돼지”, “노랑개”라고 놀리면서도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같은 노래를 부른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음식 문화, 같은 역사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죽여야 하는 이 비극적 상황은 70년이 넘도록 우리의 현실 조건을 제한하고 있다. 

<판문점 에어컨>, 감독 이태훈, 2018

이번 한국영상자료원 기획전에서는 <남부군> 말고도 많은 수작들이 소개되고 있다.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 중 가장 오래된 <삼천만의 꽃다발>(신경균 감독, 1951)을 비롯하여 유현목 감독의 <장마>(1979), 임권택 감독의 <짝코>(1980),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등의 장편은 앞으로 언제든 볼 수 있게 공개되었다. 분단의 상징적 장소에서 벌어지는 코믹 드라마 <판문점 에어컨>(이태훈 감독, 2018) 등 7편의 단편 작품들도 7월 14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김희철
<잠깐 운전하고 오겠습니다> 저자, 서일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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