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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반론 : 총체적 역사이해가 중요
재반론 : 총체적 역사이해가 중요
  • 김인호 경성대
  • 승인 2004.01.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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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익종 교수의 반론에 답한다

▲근대한국의 공업화는 식민지라는 건축물 위에서 진행됐다. 사진은 경성방직 모습. ©
본 서평이 호리 가즈오 교수의 연구에서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이 빠져있어서 의미없다고 반대한 글일까. 아니면 일방적인 수탈론을 옹위하고자 호리 교수의 연구를 매도하려는 음모일까? 결론적으로 말해 주교수의 반비판문은 대단히 경솔하다. 서평자의 32매에 달하는 서평에서 일부가 신문사에서 논점중심의 논의로 편집되어 자칫 호리교수의 연구성과 중 긍정적 부분이 제대로 소개되지 못한 것은 실로 유감이다.

하지만 서평의 골자는 실증의 문제보다는 호리 교수의 동아시아 담론이 또 다른 형태의 식민지 공업화 찬양이나 그동안 일본측이 자행했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무책임성을 합리화할 가능성이 높은 연구라는 점에 대한 우려가 담긴 것이다. 

왜 하필 동아시아 담론인지 굳이 묻지 않아도, 한국사가 분명 세계사적 피조물임에는 틀림없으나 왜 유독 동북아의 발전에 시각이 경도되어 동아 삼국간의 민족적 국가적 모순구조가 사장되고 수탈적 제 관계가 화려한 성장기조 속에서 방치되어야 하는지 그것에 관한 저자의 저의를 의심하는 것은 역사학자의 기본 도리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을 위한 연구인지도 물어야 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일본인이 자행했던 식민지배의 긍정적 측면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려했는지 아니면 현 동북아 경제 발전의 원형을 식민지 지배관계에서 확인했다는 사실을 전도하기 위한 것인지 확실하게 답변을 줄 필요가 있다.

만일 서평자가 실증적 연구성과를 무시하는 논지로 일관했다면 일본에서 많은 사실탐구에 나서고 있는 한국학자들을 매도하는 말이기도 하다. 일본인 학자의 우수한 성취는 많은 감화를 동반하며 그런 연구성과는 우리가 충분히 섭취하고 경의를 표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실증과 화려한 자료복원에 현혹되어서 역사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제약을 받을 수는 없다. 물론 오렌지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나는 오렌지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글은 단순한 동호회 잡지가 아니며 경제학자를 위한 경제론만이 아니라 식민지 역사라는 타이틀에서 존재하는 나름의 역사서이다. 그리고 역사라는 이름을 단 이상에 역사적 각도에서 비판될 이유가 있다. 나아가 역사서는 시대적 과제 혹은 사회적 당위성과 긴밀히 호흡을 같이 해야 하며 과학적 역사의식이 연구의 밑바탕에 은근히 깔려서 연구되고 작성되어야 한다.

바른 역사 저술은 시대적 과제와 불가분 연관할 수밖에 없고, 바른 역사의식을 배제하고 존재할 수 없다. 이병도류의 역사연구가 욕먹는 이유는 실증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시대적 의미를 외면한 연구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널리 불리는 대중가요 노래 한 꼭지도 지금은 인기순위로 그것을 평가하지만 언젠간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순간이 올 것이다. 마찬가지로 경제는 경제, 정치는 정치로 파편화된 역사는 제대로 된 역사가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총체적으로 바라보길 원한다. 그러므로 섣부른 동북아 담론은 나름의 진척과정에서 주변의 학문성과를 참고하면서 자신의 길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호리 교수의 연구에 대한 역사학적 평가는 기본적으로 그의 대단한 실증에 대한 것이 아니라 역사의식에 대한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물론 글에 따라서 민족이 빠지고, 역사의식이 빠진 글도 존재할 수 있고, 특별한 실증만을 담은 연구도 있을 수 있다. 우리는 그러한 글을 모두 서평의 대상으로 보진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분명한 서술 의도를 밝히고 작성된 논문이며, 그에 대한 역사적 관점에서의 평가는 정당하다.

서평자가 저자의 역사의식을 문제 삼는 것은 바로 저자가 결국 말하고자 하는 귀결을 추적한 결과이다. 분명히 호리 교수는 동북아 담론의 원형을 제공하고, 지역사 일국사의 탈구성과 모순을 동아시아적 틀 속에서 용해하여 한반도의 20세기 왜곡된 역사를 희석화시키려는 연구로 귀결되고 있다. 화려한 실증의 용광로 속에 우리 학자들이 하지 못한 치밀함이 비록 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면죄부는 될 수 없다.

열린 마음 그리고 차이를 차별로 보지 않는다는 정신은 필요하다. 앞으로도 일본에서의 연구성과 또한 차분하고 겸손하게 그 수준 높은 실증성에서 얻을 것은 얻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역사는 종합적 학문이며 경제적 측면의 식민지사의 일부분에 대한 집착이 다른 모든 총체적 역사의 잘못된 이해를 동반할 가능성도 한국의 역사학자라면 같이 고민해야 한다.

주 교수가 진정 역사란 무엇인가를 좀더 깊이 있게 생각하는 학자라면, 서평자를 천박, 자질, 공연한 트집 등으로 매도할 것이 아니라, 서평의 내용에 대하여 구석구석 조목조목 비판하는 것이 보다 생산적임을 알아주길 바란다. 나아가 저작의 어떤 특정한 장점만을 이해해 달라는 태도는 대단히 소아적이다.

그리고 출판된 저작의 역자 서문에서도 역자 자신의 논지를 보다 분명히 말해주는 친절도 있어야 한다. 오로지 자신의 이해를 뒷받침하는 일본인학자에 대한 동경과 벅찬 희열로 글이 옮겨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도대체 역사학자라는 사람이 무엇을 위한 연구를 하는지 되묻고 싶다.

마지막으로 역자는 호리 교수의 연구에서 어떤 감화 받은 것 같은데 마치 100년전 나라 판 친일파가 했던 행실과 어찌 그리 닮았는지 놀랍기조차 하다. 왜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학자는 자신의 논리를 설파하는데 늘 일본학자들의 응원을 받아야 힘이 나는지 모르겠다. 진정한 역사학자는 그 저의를 알고 있기에 늘 그들의 혀가 두려울 뿐이다.

김인호 / 경성대,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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