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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표준화의 함정
[원로칼럼] 표준화의 함정
  • 교수신문
  • 승인 2020.06.30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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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평균주의적 사고에 짙게 물들어 있다. 계량화된 평균값을 통해 문제를 진단하고, 사람을 평가하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학교에서는 시험을 보고 평균값을 내어 등수를 결정한다. 우리나라에는 천재로 태어난 사람이 천재로 성장하기가 어렵다. 천재적 재능을 길러줄 수 있는 교육기관을 허용하지 않고 평준화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학교는 규격화된 틀 속에 넣고 그에 맞는 학생을 길러내는 데만 관심이 있다. 우리나라에 인문사회․과학 등의 분야에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규격화를 지향하는 교육제도의 문제가 그 하나일 것이다.   

학교의 이러한 행태는 프리데릭 윈즐로 테일러(Frederick Winslow Taylor)로부터 받은 영향 탓이다. 테일러는 평균주의를 채택함으로써 업계의 비효율성을 체계적으로 해소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1890년대부터 비효율성을 최소화시켜 줄 새로운 산업조직의 비전으로서 표준화(standardization)를 제시했다. 작업규칙에 정해진 틀에 따라 일하는 근로자가 요구되었다. 그렇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하는 근로자는 일의 효율성을 떨어트리는 암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근로자들은 지시대로 행해야 하는 로봇이 되어버렸다. 교육계에도 표준화 모델이 도입되어 학생들이 표준화된 직업세계에 나가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테일러주의자들은 학교는 특출한 재능을 길러주려 힘쓰는 것이 아니라 평균적 학생을 위한 표준교육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점은 오늘날까지 학교교육을 지배하고 있다. 

능력중심사회를 지향한다는 취지하에 국가직무능력표준(National Competency Standards: NCS)을 대학교육에 적용하는 사례는 표준화의 전형이다. 국가가 직무별로 도달해야 할 직무능력표준을 정해 놓고 거기에 맞춰 교육하는 것이다. 직무능력이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은 교육훈련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산업교육기관에서 해야 할 일이다. 교육부는 대학평가의 중요한 요소로 NCS 관련 내용을 넣고 그 적용 비율을 평가함으로써 각 대학은 NCS 비율을 높이기 위해 거의 모든 과목에 적용하고 있다. 국가가 직무능력표준을 정하지 않은 영역이나 과목에도 적용해야 하므로 담당하는 교과목의 직무능력표준을 자신이 정하는 해프닝도 벌어지고 있으니 이는 NCS가 아니라 PCS(Personal Competency Standards)라고 해야 맞다. 효율성을 지향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이것이야말로 비효율적 교육이다. 교육내용이나 방법에 있어서 창의성이나 자율성이 끼어들 틈이 없다. 이러한 교육이 과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한 것인지 의문이다. NCS의 장점도 있겠으나 대학교육에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교수와 학생 모두를 수동적 존재로 격하하고 로봇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의 방향과 거리가 멀다.  

<미디어오늘>이 지난 해 11월 「교육기관이 아닌 ‘기업’이 된 한국대학」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하여 대학이 취업양성소로 변질된 현실을 꼬집었다. 또한 기업화가 되어 버린 대학을 향해 ‘추락하는 대학에 날개가 있을까’라고 묻는 책도 등장했다. 어느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대학이 취업기관인가?’에 관한 공개토론을 진행될 정도로 학생들도 대학교육의 문제를 심히 우려하고 있다. 취업과 연결되지 않는 기초학문 영역은 대학에서 밀려나고 대학에 없어도 될 학과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대학은 이제 ‘심오한 학문’을 연구하는 곳이 아니라 학원과 유사한 교육기관일 뿐이다. 

미국의 교육신경과학 분야의 선도적 학자인 토드 로즈(Todd Rose)는 『평균의 종말』이란 저서를 통해 평균주의로부터의 탈출을 주장한다. 평균주의는 개인성을 무시하고 창의성을 손상시킨다는 것이다. 그가 제안한 들쑥날쑥의 원칙, 맥락의 원칙, 경로의 원칙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를 통해 유형과 등급 대신 진정한 개개인성의 패턴을 발견하고, 평균에 부여된 권위에서 탈피하여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질 날을 기대해 본다.

차갑부 명지전문대 명예교수
차갑부 명지전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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