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례사를 뛰어넘는 매서운 글쓰기들
주례사를 뛰어넘는 매서운 글쓰기들
  • 최강민 문학평론가
  • 승인 2004.0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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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전범을 찾아-문학

교수신문은 지난 5년간(1999∼2003) 발표된 평론 중 '最高'의 평론을 선정해달라고 질의서를 발송해 총 20명에게서 답신이 왔다. 이 글은 이 자료를 토대로 해 최근 비평계의 흐름을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다.

혼돈과 기대가 교차했던 세기말과 세기초. 평론가들은 어떤 '화두'에 매달려 시대와 인간을 끌어안으려고 몸부림쳤을까. 첫째, 근대의 무자비한 개발 프로젝트에 저항하는 생태주의 세계관의 등장이다. 생태주의 세계관은 지칠 줄 모르고 질주하는 근대의 속도에 브레이크를 걸어 인간과 환경이 더불어 사는 세계를 꿈꾼다. 김종철, 최동호 등은 생태학적 상상력을 통해 인간의 오만이 생산한 근대의 병폐를 개선하려고 시도한다. 특히 '녹색평론'의 발행인인 김종철의 '시적 인간과 생명의 논리'는 평론가 구모룡과의 대담 형식의 글을 통해 생태학적 문제들을 평이한 수준에서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통합적 사유와 탈식민의 실천 돋보여

둘째,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전통적 대립 관계를 청산하고 양자의 화해를 모색하는 경향이다.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전통적 대립 관계를 청산하고 양자의 화해를 모색하는 경향이다. 흔히 현실주의와 문학주의로 대변되는 양 진영의 갈등과 균열은 문학판을 왜곡시킨 면도 있지만 서로를 자극하며 문학을 풍성하게 만든 현대문학의 쌍생아이다. 전지구적으로 확대된 후기자본주의의 공세 속에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은 물신주의라는 공통의 적과 맞서 싸워야 하는 동맹군인 것이다.


최원식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회통'에서 '리얼리즘/모더니즘'의 정체성을 차이 속에서 정의하려는 노력을 통해 얻어진 상상된 또는 창안된 표지이기 쉽다고 평한다. 그는 "최고의 작품들이 생산되는 그 장소에서는 이미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 회통의 경지"에 이른 것으로 간주하면서, 김수영 이후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으로 나뉜 것을 다시 회통시켜 위축된 문학의 귀환을 열망한다. 뒤이어 나온 임규찬과 윤지관의 글들은 최씨의 주장을 이어받은 후속 작업들이다. 이러한 논의에 대해 황종연은 '모더니즘에 대한 오해에 맞서서'에서 일단 긍정적 평가를 내린다. 하지만 그는 곧 이어 마샬 버먼의 이론을 활용해 현실주의 진영의 모색이 새로운 관계 설정에 필요한 사고 전환을 이룩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황종연은 '회통론이나 통합론'이 "모더니즘의 업적을 리얼리즘의 이념으로 흡수해 리얼리즘의 판도를 넓히는 일종의 제국주의적 팽창"이 아니냐고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다.


이러한 양상들을 고려해볼 때, 아직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 사랑스럽게 결합해 신방을 차릴 시기가 아닌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서로 얼굴을 외면했던 양 진영이 통합의 가능성에 대해 진지한 모색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셋째, 민족문학의 유효성에 대한 탐색과 탈식민 논의들이다. 백낙청의 '한반도에서의 식민성 문제와 근대 한국의 이중 과제', 하정일의 '탈민족주의 시대의 민족문제와 20세기 한국문학', 한기욱의 '9·11사태와 미국 고전문학의 통찰', 조정환의 '역지구화를 위한 문학적 주체성의 재구성' 등은 '민족문학'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언급하거나 초강대국 미국의 일방적 패권주의를 비판하면서 식민성과 탈식민성의 문제를 고찰한다. 이 중에서도 하정일의 글은 민족 환원론과 통일지상주의를 비판하면서 비역사성의 '민족주의문학'과 역사성의 '민족문학'을 변별해 사용한다. 그는 한국의 민족문학 운동을 탈식민주의 운동의 전범으로 평가하면서, 한국문학의 탈식민주의적 실천은 한국적 특수성을 인정한 비자본주의적인 '복수의 근대'에서 찾는다. 이러한 탈식민의 저항담론은 허구적 서구중심주의를 해체해 서구적 근대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주체적 노력이다.


넷째, 섬세한 텍스트 비평을 통해 해석학적 다양성을 보여준다. 90년대부터 현재까지 평론가들이 가장 풍성한 성과와 한계점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 바로 텍스트 비평이다. 80년대 지도비평의 반작용이라 할 수 있는 텍스트 비평의 극단적 몰입은 또 다른 반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편식하지 않는 비평적 접근이 요구된다. 게다가 상업주의적 광고문으로 전락한 주례사 비평인 해설과 표사의 남발은 비평의 타락과 문학의 위기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주범이라 할 수 있다. 유종호, 남진우, 성민엽, 김태환, 이광호, 김치수, 오형엽, 정과리, 유성호, 김동식, 임홍배, 장석주, 오생근, 구모룡 등의 글은 텍스트 비평의 빼어난 성취를 보여준다.

大家 비판을 통한 비평 신세대 등장

다섯째, 90년대 문학에 대한 성찰과 21세기문학을 전망하는 글들이다. 황종연의 '비루한 것의 카니발-90년대 소설의 한 단면', 황국명의 '90년대 소설론, 그 치욕과 영광', 황광수의 '1990년대 소설의 모험과 반성'이 90년대를 성찰하고 있다면, 백낙청의 '2000년대의 한국문학을 위한 단상', 우찬제의 '경계를 넘어서-21세기 문학지도를 위한 밑그림'은 새로운 21세기의 문학 지형도를 미리 그려본다.


여섯째,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식민성의 과거를 청산하려는 친일문학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 대표적인 논란거리의 주인공은 지금은 고인이 된 시인 서정주였다. 김진석의 '초월적 서정주의에 스민 파시즘적 탐미주의', 김환희의 '국화꽃의 비밀', 구모룡의 '초월미학과 무책임의 사상 : 미당 서정주의 미학 비판'이다. 이 중에서 창비게시판에 처음 실린 김환희의 평론은 "서정주 문학에 대한 찬반의 이분법적 논란에서 벗어나 역사적이고 신화적인 분석을 통해 서정주 문학의 식민지적 무의식을 탐구"(장시기)한 독창적 비평이다.

相扶相助로 읽어주는 풍토 아쉬워

일곱째, 정체된 비평계를 개혁하려는 '주례사 비평'에 대한 비판과 '문학권력 논쟁'이 소장파 진보문인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권성우는 '비평과 권력'에서 김현을 신화화하는 '문학과 사회' 동인들을 비판하면서 본격적인 비판적 글쓰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생산적 대화, 성찰의 현상학'으로 대변되는 그의 작업은 비판과 매혹을 함께 보여주는 균형감각을 통해 시대적 보편성을 획득한다. 1970년생 평론가인 이명원은 김윤식, 김현 등의 대가 비판을 통해 문단에 일대 충격을 가하며 새로운 비평세대의 등장을 선언한다. 최근에 발간한 '파문'은 배타적인 문학권력의 비판을 통해 문학계의 건강을 회복시키려는 아웃사이더의 고민과 처방이 담겨 있다. 이들의 비판적 글쓰기는 현재 문단 주류의 침묵하기와 왕따 작전에 의해 논쟁이 소강상태에 빠지면서 새롭게 진전된 논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여덟째, 남근중심주의를 비판하면서 남성과 여성의 공존을 모색한 페미니즘 비평이다. 페미니즘은 90년대 들어 활발한 이론적 논의를 통해 실제 비평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選者들이 뽑은 평론 중에서 페미니즘에 관련한 것이 하나도 없다. 아마도 이것은 응답한 선자들 다수가 공교롭게도 남성 평론가였다는 점이 페미니즘 평론에 대한 홀대로 이어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선자들이 뽑은 비평 목록을 보면 자신의 비평적 세계관과 유사한 비평을 대개 최고의 비평으로 손꼽았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자신의 비평적 세계관이나 방법론에 못지 않게 다른 쪽에 서있는 비평가들의 작업도 소중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자신의 비평관과 일정한 거리가 있는 비평을 최고의 비평으로 선정한 극소수의 평론가 김용규, 이현식, 이명원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러한 분들이 좀더 많아져야 패거리주의와 정실주의로 비판받는 비평계가 역동적인 비평담론의 생산기지로 부활하지 않을까. 잡지 편집자나 동종 업계의 평론가들이 상부상조의 마음으로 비평을 읽는 시대에 비평의 설자리는 무엇인가. 이 화두를 풀기 위한 평론가들의 진지한 고민이 담보될 때, 우리 비평계는 좀더 건설적인 미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열악한 객관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여전히 비평의 진정성이다.

*지난 5년간 우수 문학비평목록

아래의 목록은 2회 이상 추천된 비평 15편이다. 최원식 11회, 황종연 6회, 권성우 5회, 이명원 3회, 백낙청 3회, 남진우 3회, 구모룡 3회이고 나머지는 2회씩 추천됐다(추천순).

최원식,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회통, 문학의 귀환, 2001
황종연, 모더니즘에 대한 오해에 맞서서, 창작과비평, 2002
권성우, 비판, 그리고 성찰의 현상학, 문예중앙, 1999
구모룡, 초월미학과 무책임의 사상, 포에지, 2000
이명원, 비난의 수사학에서 비판의 해석학으로, 비평과전망, 1999
백낙청, 2000년대의 한국문학을 위한 단상, 창작과비평, 2000
남진우, 행복의 시학, 유출의 수사학, 그리고 신은 시인을 창조했다, 2001
황국명, 90년대 소설론, 그 치욕과 영광, 오늘의문예비평, 1999
유종호, 서정적 진실의 실종, 서정적 진실을 찾아서, 2001
김종철, 시적 인간과 생명의 논리,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1999
김태환, 이야기꾼의 자의식, 푸른 장미를 찾아서, 2001
우찬제, 경계를 넘어서-21세기 문학지도를 위한 밑그림, 문학과사회, 2000
윤지관, 속물비평의 기원, 문예중앙, 1999
이광호, 문학의 호명-문학의 자율성을 둘러싼 이론의 연대기, 문학과사회, 2001
정과리, 한국적 서정의 정신적 작업, 시와정신, 2003

*추천인 명단

구모룡, 고명철, 김경복, 김동식, 김선태, 김성수, 김용규, 김인호, 남송우, 류보선, 박기수, 박혜경, 신수정, 유성호, 이강은, 이명원, 이욱연, 이현식, 장시기, 하상일(문학평론가, 가나다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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