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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의의 문학프리즘] 예술작품과 예술상품의 차이
[심영의의 문학프리즘] 예술작품과 예술상품의 차이
  • 교수신문
  • 승인 2020.06.29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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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선생의 단편소설 '금시조(金翅鳥)'는 예술에 대해 서로 상반되는 견해를 가진 스승과 제자의 갈등을 통해 예술을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에 대해 질문하고, 진정한 예술을 창조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치열한 자기 부정의 정신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청준 선생의 단편소설 '서편제(西便制)'에서는 떠돌이 소리꾼이 자신의 딸이 잠든 사이 두 눈에 청강수를 넣어 일부러 두 눈을 멀게 하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좋은 소리를 얻을 수 있다고 믿은 탓이다. 

두 소설은 공히 시장에 내다 팔 상품으로서의 예술, 곧 기교가 아니라 예술가의 치열한 정신이 보다 소중한 가치임을 말하고 있다. 이제는 예술에 대한 저 완강한 언설들은 고루하게 취급되는 것만 같다. 화투 그림 시리즈를 그려 유명해진 어느 대중가수가 최근 대법원으로부터 사기 혐의가 무죄로 확정된 사건은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숙고하게 한다.

최종 판결 후 그의 환호작약은 충분히 이해되고, 미대를 다니지 않아도 일정한 재능과 꾸준한 노력으로 좋은 작가가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하겠지만, “조수를 두는 건 문젯거리가 안 돼요. 당연하지. 바쁜 화가가, 잘나가는 팝아트 화가가 화투짝을 어떻게 일일이 그려요?”라는 반문에는 말문이 막힌다. 

19세기 후반에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그린 ‘구두’ 그림에 대한 철학자들의 논쟁이 떠오른다. 검누런 바탕에 달랑 놓인, 신을 대로 신어서 너덜너덜하게 망가진 일그러진 검정 구두 한 짝에 대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구두 그 자체보다도 생활과 고난의 모든 것을 말하여 주는 저 한 장의 그림이 농민들의 본질에 있어 구두가 무엇인가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평하였다. 미국의 저명한 예술사학자 샤피로(Meyer Schapiro)는 실증적인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건데, 곧 네덜란드의 농토는 습지가 많기 때문에 당시 농부들은 금방 젖게 될 구두를 신을 수 없었고, 그래서 나막신을 신었다는 것, 고흐가 그린 그림의 소재가 가죽인 한 그것은 농부의 구두일 수 없다는 사실을 들어, 구두는 농부의 것이 아니라 고흐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하니 하이데거의 고흐 작품 ‘구두’에 대한 해석은 그의 주관적 상상과 전원 취향을 뒤섞은 해석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비유컨대, 고흐의 ‘구두’ 그림 속 구두의 주인이 누구인가 하는 객관적 사실이 작품의 감상과 해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화투 그림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그의 책임 하에 그림이 완성되었다면 그림 속 화투는 그의 것이니 비록 작품의 완성에 대작 화가의 기여가 컸다 하더라도 그것을 사기로 볼 것은 없다는 것이니까.

사실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확정적으로 답할 수는 없다. 다만 인간 정신의 산물이라는 것, 그것도 창조적인 행위라는 것, 창조란 세상에 전혀 없는 새로운 것을 내놓는 것이라기보다는 기왕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반성을 동반한 일종의 발견이어야 한다는 것들을 제시하면 이 또한 고루한 언설이 되는 걸까? 

그가 인터뷰에서 들고 있는, 뒤샹(Marcel Duchamp)이 1917년 ‘샘Fountain’이라는 명명으로 들고 나온 남성용 소변기는 변기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보다는 예술작품을 굳이 만들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면서, 일상적인 사물이라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얼마든지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한 데 더 큰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딴따라가 예술을 하는 것이 마땅치 않아서”하는 말이 아니다.

심영의 문학박사. 소설가 겸 평론가.
심영의 문학박사. 소설가 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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