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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적 억양 탈피, 대상의 급소를 치다
상투적 억양 탈피, 대상의 급소를 치다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4.01.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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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전범을 찾아: 인문사회

인문사회 분야의 비평은 글의 완성도보다는 비평대상과의 생산적 대화의 물길을 열어나가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래에 추천된 비평들은 주로 서평들로서, 텍스트에 대한 충실한 해제를 바탕으로 한 날카로운 비평이 돋보인 글들이 많다.

인문사회 분야에서는 16명의 전문가가 총 45편의 우수비평을 추천했다. 주로 역사, 철학, 사회 분야 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역시 인문사회 분야에서 표몰림 현상은 없었다. 각자 고심해서 비평 중의 비평을 골랐지만, 아무래도 자신의 전공분야에서 대표작이 나오게 마련이었다. 따라서 뚜렷하게 서열이 나뉘기보다는 다양한 주제들을 다룬 양질의 비평들로 목록이 만들어졌다.

우선 복수 추천된 상황을 보자. 역사 분야에서는 총 4편의 비평이 눈길을 모았다. 정연태의 ‘식민지 근대화론의 새로운 성과에 대한 비판적 검토’(역사비평, 2002년 봄)가 가장 많은 3표를 얻었고, 하원호의 ‘역사는 배반하지 않는다-박노자의 한국근대 인식 비판’(역사비평, 2003년 가을), 오종록의 ‘한국중세사는 유교에 의해 발전했는가’, 신동원의 ‘향약의술 발달이 인구증가를 이끌었을까’(이상 역사비평, 2002년 겨울)가 각각 2표를 얻었다. 공교롭게 모두 계간 ‘역사비평’에 실린 글들이다.

철학 및 인문학 일반에서는 김명인의 ‘신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신경숙 소설비평의 현황과 문제’(주례사비평을 넘어서, 2002), 김진석의 ‘동양대안론의 비판적 고찰’(오늘의 동양사상, 2001), 장석만의 ‘민족 언어 공간에 도전하는 다언어적 글쓰기’(당대비평, 2002년 여름), 조민환의 ‘조선조 유학자들의 ‘노자’ 읽기’(오늘의 동양사상,1999), 권성우의 ‘생산적 대화는 어떻게 가능한가?-비판, 그리고 성찰의 현상학’(한국문학평론, 2000년 봄), 김지하의 ‘칠십일과의 괴’(창작과비평, 2002년 여름) 등이 꼽혔다. 여기서 김명인이 2표를 얻었고, 나머지는 1표, 김진석 교수는 다른 글로 1편이 더 추천됐다.

그 다음 경제학과 사회학, 정치학을 같이 보면 다음과 같다. 이근의 ‘한미관계와 파병문제’(미래전략연구원 홈페이지), 강준만의 ‘카오스 정치’(오버하는 사회, 2003), 권혁범의 ‘월드컵 국민축제-블랙홀에 빨려 들어간 대한민국’(당대비평, 2002년 가을), 전상인의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이해’(한국현대사연구, 1998), 이창기의 ‘종족마을연구의 새로운 시각과 방법’(사회과학논평, 1999), 이병천의 ‘세계화의 깨어진 약속과 대안의 길’(민주사회와 정책연구, 2003년 3월), 백승욱의 ‘동아시아의 도전?-세계체제의 위기와 동아시아 자본주의’(경제와사회, 2002년 봄), 전규찬의 ‘국민정치에서 인민정치로의 이동’(사회비평, 2002년 여름), 김문조의 ‘에밀 뒤르케임의 사회학’(한국사회학, 2001) 등이 꼽혔다. 모두 1표씩 추천을 받은 글들이다.

추천자들은 과연 무엇을 좋은 비평의 기준으로 삼았을까. 문학이나 예술분야와는 달리 인문사회 쪽에서는 글쓰기의 문제보다는 내용의 충실에 가장 큰 잣대가 가해졌다. 정연태의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서 박태균 서울대 교수는 “서평이면서도 나름대로의 실증과 이론적인 측면을 뒷받침해 묵직한 글임을 알 수 있다”라고 말한다. 신동원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는 “상투적인 억양법을 벗어나 있는데도 저자에 대한 존경심을 놓치지 않으며, 그러면서도 서평대상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찔러나가고 있다. 독자로서는 이 서평을 통해 조선후기부터 현대까지 지속되는 한국경제사의 쟁점을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고영진 광주대 교수도 “텍스트의 학문적 성과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연구방법론의 문제점과 한계, 나아가 텍스트 필자의 역사와 경제에 대한 시각과 지향점까지 날카롭게 지적한 수준 높은 비평”이라고 말한다. 이 주제와 관련해 이기훈 서울대 강사는 배성준의 ‘식민지 근대화논쟁의 한계지점에 서서’(당대비평, 2000)를 최고의 비평으로 꼽기도 했다.

하원호의 ‘박노자의 한국근대 인식 비판’은 이론적 설득력이 최고조에 오른 학자의 주요한 역사인식을 본격검토해 추천물망에 올라왔다. 박주원 서강대 강사는 “완성도가 높은 건 아니지만, 대상글에 대한 소개에 머물지 않고 그 글이 다룬 주제 자체에 대한 비평이며, 비평의 작업이 자신의 독자적인 또 하나의 글로 표현됐다”라고 말하며 안병진 서울대 강사는 “박노자의 도발적 근대인식에 애정을 갖고 당시 시대적 맥락과 텍스트를 연결시켜 예리하게 비판, 박노자의 초역사적 오류를 발견해낸다”는 점을 높이 샀다.

조민환의 ‘조선조 유학자들의 ‘노자’ 읽기’에 대해서는 “40~50매 분량의 내용있는 글이다. 관련주제에 대한 깊은 이해, 균형잡힌 비판적 태도가 돋보인다”는 의견이, 권성우의 ‘생산적 대화는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자기반성과 타자인정의 관계에서 이뤄지는 비판적 글쓰기를 근본적인 의미에서 이뤄냈다”는 의견이 나왔다.

주제에 대한 천착, 비평 스스로를 표현하다

오종록, 이태진, 신동원의 글이 많이 추천된 건 한권의 책을 놓고 세명의 관련 전문가가 논문 분량의 본격서평을 시도했다는 신선함 때문이다. 김성보 충북대 교수는 “실증성과 분석이론 양면에 대한 심도있는 비평이 가능했다. 이태진 교수는 한국 역사학계에서 이론과 실증을 결합한 연구성과를 꾸준히 내온 인물로 그의 대표적 연구서를 유교국가, 농업기술, 의약기술 세 분야로 나눠 소장학자들이 허심탄회하게(예의에 어긋날 정도로) 비판할 수 있는 지면을 제공한 게 긍정적”이라고 평했다. 이 때 서평을 쓰기도 했던 신동원 교수는 “화끈한 비평에 대해 강단있게 반론을 펼친 이태진 교수의 글은 반론의 모범이다. 인정할 부분을 과감히 인정하고, 논쟁이 가능한 부분에서는 더욱 심화된 자신의 주장을 내놓았고, 무리한 주장에 대해서도 화끈한 반격을 시도해 읽는 이로서 즐거웠다”고 말했다.

성실함이 돋보이는 글로 이창기의 ‘종족마을연구의 새로운 시각과 방법’이 꼽혔는데 한도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는 “기본개념 정확히 소개하고, 입장 분명하고, 독자 위한 통계자료도 제시해 성실성과 책임감이 돋보였다”라며 “거기에 그 분야의 연구동향까지 문맥에 녹여가며 글을 진행시키고 있었다”라고 평했다. 메타비평 부분에서 표를 얻은 김명인의 ‘신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해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는 “창비 계열의 신경숙 신드롬에서 시작된 우리 비평계의 문제를 잘 짚었다”라고 추천의 변을 밝혔다.

공제욱 상지대 교수는 사회과학 분야에서 몇편을 꼽았는데 지승종의 ‘한 가문의 백년 일기에서 추상된 촌락 생활사’(사회와역사, 2001)는 “매우 열심히 쓴 본격서평”이라는 점을, 이병천의 ‘세계화의 깨어진 약속과 대안의 길’(민주사회와 정책연구, 2003)은 “경제현상에 대한 통찰력”을, 백승욱의 ‘동아시아의 도전’에 대해선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변화에 대한 파악능력”을 높이 샀다.

학문적 근친성과 편향된 독서 넘어서야

강수택 경상대 교수는 이영림의 ‘근대초 프랑스에서의 사적 영역의 창출’(사회와역사, 2003), 김문조의 ‘에밀 뒤르케임의 사회학’(한국사회학, 2001), 조희연의 ‘과잉 과거청산인가 과소 과거청산인가’(경제와사회, 2002)의 세편을 꼽았는데, 이영림은 “번역서 내용이 우리 역사에서 갖는 의미에 대해서 비교적 진지하게 언급했다”는 점을, 김문조는 “내용소개-의미부여-한계지적이라는 다소 무미건조한 서평구조를 벗어나 자유롭고 재미있는 글쓰기를 시도했다”는 점이, 조희연은 “처음부터 책의 한계를 전면에 내세워 논쟁점을 분명히 제시해 텍스트와 끝까지 정면으로 맞섰다는 점”을 이유로 꼽았다.

우수비평으로 돌아볼 때 지난 5년간 학술계에 둥지를 튼 비평적 주제는 식민지근대화론을 둘러싼 논란, 세계화와 그 대응, 동아시아론, 유교에 대한 재인식, 비평적 대화의 가능성 등이었다. 그리고 가장 많은 비평의 대상이 된 사람은 안병직, 이태진 서울대 교수였다. 아쉬운 점은 추천자와 비슷한 학문적 주장을 펼친 사람들의 논문이 주로 선택됐다는 점인데, 비평글에 대한 학계의 독서율이 전반적으로 낮고, 또한 편향되는 등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지점이다.

지난 5년간 인문사회 분야의 우수비평을 돌아봤다. 물론 그물망을 빠져나간 좋은 글들도 여기 제시된 비평 이상으로 존재할 것이다. 그런 한계를 갖고 있지만, 이런 작업을 기회로 추천자들은 “비평은 무엇인가”라는 점을 다시 생각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었고, 좋은 비평목록도 마련될 수 있었다. 추천자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코멘트는 “굳이 하나를 고르라면”인데, 위의 45편 비평 가운데 굳이 하나를 꼽으라면 정연태의 ‘식민지 근대화론의 새로운 성과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최우수비평으로 선정됐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인문사회 분야 우수비평 10선

김명인, 신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주례사비평을 넘어서', 2002.
김문조, 에밀 뒤르케임의 사회학, 한국사회학, 2001.
김진석, 동양대안론의 비판적 고찰, 오늘의 동양사상 제5호, 2001.
오종록 외, 이태진의 '의술과 인구 그리고 농업기술', 역사비평, 2002.겨울.
이병천, 세계화의 깨어진 약속과 대안의 길, 민주사회와 정책연구, 2003.
이창기, 종족마을연구의 새로운 시각과 방법, 사회과학논평, 1999.
정연태, 식민지 근대화론의 새로운 성과에 대한 비판적 검토, 역사비평, 2002.봄.
조민환, 조선조 유학자들의 '노자' 읽기, 오늘의 동양사상, 1999.
지승종, 한 가문의 백년 일기에서 추상된 촌락 생활사, 사회와역사, 2001.
하원호, 박노자의 한국근대 인식 비판, 역사비평, 2003.가을.

*추천자 명단

강수택(경상대)고석규(목포대)고영진(광주대)공제욱(상지대)김성보(충북대)박주원(이화여대)박태균(서울대)백원담(성공회대)신동원(과학기술원)안병진(서울대)이기훈(서울대)이상호(대구한의대)이재성(계명대)임형석(부산대)조현범(한신대)한도현 (정신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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