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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기획: 자기검열 뛰어넘는 경지 열어야
예술기획: 자기검열 뛰어넘는 경지 열어야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4.01.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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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들이 보는 영상예술 속의 극한성

한국영화들은 극한성을 주요한 기법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아직 극한을 표현하는 기법의 극한성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 중평이다. 극한의 미학은 표현의 극한에서 성취된다는 지적이다.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로드무비’, ‘장화, 홍련’, ‘4인용 식탁’에서처럼 살인, 근친상간, 동성애라는 주제와, 그리고 폭력성의 이미지들은 최근 한국영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김소영 한예종 교수의 평처럼 우리 영화가 ‘극한의 미학’을 논하는 단계에 접어든 듯하다.

‘차마 말할 수 없던 것’을 쏟아내기 시작한 이상, 중요한 건 이를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다. 극한성을 어떻게 표현하고, 무슨 형식에 담을 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극한의 폭력 이미지가 영화미학의 하나의 준거가 되고 있다. 이는 내러티브가 아닌 시각적 효과의 극대화에 의지한다는 점이 특이하다”라며 평론가 문재철은 말한다. 박찬욱의 영화가 대표적인데, 그의 잔혹성은 선정성과 상징성 사이를 줄타기하며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미학적 가치를 확보한다는 평이다. 다시 말해 ‘이미지의 과잉’이 주인공들의 ‘내부 과잉’과 균형을 이룬다는 것. 이런 견해애 남완석 우석대 교수와 평론가 이상용도 함께 한다.

하지만 남 교수는 “한국영화는 기법상 아직 극한에 다다르지 못했다”라며, “이는 감독들이 아직 자기검열에 갇혀있는 탓”이라고 비판한다. 극한의 미학은 최대 극까지 밀어붙였을 때만 메시지가 전달된다는 설명. 평론가 이상용은 현존의 부재를 의심한다. “이런 류의 영화들은 ‘현재’의 인간존재의 밑바닥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과거의 시간만을 재현해 ‘지금, 여기’서 말해야 할 걸 은폐한다”라며 ‘시간성’의 차원에서 극한의 한계성을 꼬집는다.

김경욱 세종대 교수는 시각을 미적 기준의 강화에 맞춰 “극한의 미학이 현 한국영화의 미적 기준으로 논해질 수 있는 건 표현의 잔혹성의 기법만으로 판단되기보다는 궁극적으로 휴머니즘을 끌어낼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라며 ‘소진되는 잔혹’을 경계했다. 김 교수는 이 ‘소진되는 잔혹’에서 열외인 영화가 있다면 ‘김기덕의 영화’라고 평한다. “그의 영화만은 예외적으로 잔혹함이 인간존재를 잘 드러낸다. 잔인함의 극한 속에 인간의 구원을 말하려는 휴머니즘이 드러나 미학적으로 돋보인다”라며 차별성을 뒀다.

영화장르가 매체 특성상 극한성을 재현하는데 가장 유리하지만, 미술 또한 시각효과로 만만찮게 극한의 미학을 추구하고 있다. 지금 열리는 ‘2003아트스펙트럼 展’에서 한기창의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그는 손가락 사진, 동물 머리의 사진, 척추 사진, 뼈에 박힌 쇠가 보이는 사진, 바스러진 상태의 뼈가 보이는 사진, 변형된 신체 부위 사진들을 꼴라주화해 이미지의 과잉을 한껏 보여준다. X선의 싸늘함과 우울함이 더해져 예비적 죽음마저 느끼게 한다. 물론 궁극적으로 작가가 말하고 싶은 건 아름다운 휴머니즘일 것이다. 하지만 이걸 말하기 위해 극한의 표현들은 필연적인 듯하다. 상처와 고통, 죽음에서만 진정한 인간이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물론 ‘극한의 미학’에 브레이크를 거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인간 존재를 드러낸다는 이유로 잔혹함의 이미지들은 무조건 정당화 되는가”라며 평론가 이명인, 황혜진은 긍정적 판단을 보류한다. 이들은 극한의 미학보다는 오히려 일상의 비루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홍상수식 표현이 호소력을 갖는다고 말한다. ‘일상의 미학’이 인간을 더 잘 드러낸다는 건데, 냉소와 잔혹은 동류이기 때문이다.

결국 극과 극은 통하듯 ‘극한의 미학’과 ‘일상의 미학’, 양자 모두 예술가들에겐 인간존재를 드러내는 중요한 미학적 기준들이 되고 있다. 다만 얼마나 적나라하게(정확하게) 본질에 도달하느냐가 미학으로 승화되는 관문이 된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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