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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의 '주체'는 누구인가
복지국가의 '주체'는 누구인가
  • 조영훈/동의대
  • 승인 2004.01.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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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복지』고세훈 지음,아연 刊, 286쪽, 2003

2003년 끄트머리에 씌어진 이 책은 제목만 보면 저자가 여태껏 써왔던 글들이 그러했듯, 서구 중심의 논의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제목에 조그맣게 붙어 있는 부제, ‘세계화 시대 복지한국의 모색’이 말해주는 대로 이 책의 궁극적인 관심은 한국이 제대로 된 복지국가로 탈바꿈할 수 있는 길을 찾는 데 놓여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지난 몇 년간 복지국가 및 사회민주주의를 둘러싼 문제들에 대한 몇 권의 저서들과 수많은 논문들을 통해 가꿔온 견실하고 폭넓은 식견을 최대한 끌어내고 있다.

이 책의 핵심적인 주장은 복지후진국에 머물고 있는 우리나라가 진정한 복지국가가 되기 위해선 외적 민주화(복지지출 및 사회보장제도의 혁신적인 증가확대)와 내적 민주화(시장참여자들 간의 공평성 확보, 기업지배구조의 개혁)를 통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모든 사회구성원들의 이해를 고려하는 자본주의)를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서 저자는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다. 즉, 우리나라는 서구 복지국가들의 성장의 사회적 기반이었던 사회민주주의세력, 특히 노동운동이 미약한 상황이기 때문에 ‘국가’가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해 우리나라의 복지수준을 혁신적으로 향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런 주장이 단순히 현 정부에 대해 보다 진지한 개혁을 주문하는 차원의 것이라면 어느 정도는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끝에 내린 결론으로서의 그의 주장은 의외라 여겨질 만큼 비현실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자본주의 사회에서든지 국가가 자발적이고 자율적으로 기본수준을 넘어선 정도의 복지를 제공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가 제시한 정도의 복지가 보장되는 사회가 만들어지려면 국가가 강력한 사회민주주의 정치세력에 의해 지배되고 있거나 사회로부터의 체계적이고 강력한 요구에 직면해야만 하는데, 저자가 지적하고 있듯 이 두 조건은 우리 사회에 결핍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진정한 복지국가로 만들기 위한 조건들과 실천주체가 현재로선 눈에 띠지 않기 때문에 국가의 ‘선한 의지’에 의지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국가에 대한 기대 자체가 근거 없는 것이라는 점에서, ‘복지한국의 모색’은 그런 조건들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고 그런 주체들이 우리사회의 어느 곳에서 발견될 수 있는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복지국가와 사회민주주의 연구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저자의 이 책은 ‘세계화와 복지국가’ 및 ‘한국복지의 저발전 원인’라는 두 주제에 대해선 분명하고 설득력 있는 주장을 제시하고 있는 반면, 핵심주제인 ‘복지한국의 모색’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많은 주장을 펴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를 진정한 복지국가로 만들기 위한 조건들과 원동력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를 독자로 하여금 계속 묻도록 한다는 점이 어쩌면 이 책의 약점임과 동시에 미덕일 수도 있다.

조영훈/ 동의대 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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