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21세기 한국사회를 위한 학술아젠다'를 시작하며
신년특집: '21세기 한국사회를 위한 학술아젠다'를 시작하며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4.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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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지향점 위에서 현안들을 논의하자"

신년호에서 우리 신문은 시급한 사회현안을 '21세기 한국사회를 위한 학술아젠다'로 제안한 바 있다. 설문조사 결과로 공교육의 정상화, 정치개혁 및 부패척결,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확립, 빈부격차 해소 및 빈곤퇴치, 환경문제 해결 및 대체 에너지 개발, 인문학·이공계 기초학문 확립 등 10개의 현안이 선정됐다. 이번 호에서는 이를 진지한 학술토론의 장으로 만들어나가기 위해 구체적인 질문으로 만들어 제시한다.  

흔히들 한국은 합의가 부족한 사회라고 한다. 이렇게 된 데엔 지식인 사회의 책임도 크다. 전문지식을 빌려주는 데 만족할 뿐, 국가현안의 밑둥치에서 철학적 힘으로 버텨주지 못한 것이다. 그건 지식인 사회에서 국가현안이 공론화 되지 못해왔고, 당연히 합의를 도출해서 그를 통해 여론을 형성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국가에 철학이 없다'는 비판을 할 게 아니라 지식인들이 국가현안에 철학의 엔진을 장착해야 할 때가 됐다.

공교육 정상화 : 고등교육의 목표를 성찰하자

최우선 현안으로 선정된 '공교육의 정상화'를 보자. 지금까지 지식인 사회에서 공교육 혹은 고등교육의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떤 인재를 키워낼 것이지 합의가 돼야, 그런 인재양성에 맞는 교육방법과 제반 제도에 대한 모색이 가능할 것이다. 현재 공교육과 관련된 담론은 사교육비 문제, 학생선발 방식의 문제점, 자립형 사립고교 설립 여부, 조기유학 열풍 등에 대한 각계의 주장으로 채워져 있다. 여기엔 공교육이 모든 이에게 평등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이념이 작용한다. 하지만 한국의 공교육에서 왜 평등이 가장 우선해야 하는가. 사회는 몹시도 불평등한데, 교육의 실질적 평준화가 될 수 있는가.

그 반대편엔 교육의 질이 중요하다는 담론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엘리트주의로 곧잘 빠진다. 장춘익 한림대 교수(철학)가 "질적 향상이 우수학생 유치로 이해된다"라고 지적하듯이 말이다. 이 대립의 상쇄를 위해서는 평등과 질이 끊임없이 상호 교섭을 해야겠지만, 한국사회가 지향하는 방향 속에서 그에 부합하는 인재양성의 비전이 먼저 제시된 다음에야 그 교섭의 기준도 생겨날 것이다.

정치개혁과 부패척결 : 다시 '정치'란 무엇인가

우리는 1천억원대의 차떼기로 선거를 치른 정당대표가 다른 정당을 '부패정당'이라고 욕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정치에서 부패의 고리를 끊기 위한 법제개혁은 적어도 현 시점에서는 형용모순이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정치학)가 지적한 것처럼, 그것은 오른손이 왼 손목을 긋는 "자해를 통한 문제해결 방안"이다. 그렇다면 다른 식의 논의가 필요한데 김진석 인하대 교수(철학)는 이에 대해 "권력에 대한 새로운 개념규정이 필요하다"라고 밝힌다. 김 교수는 일본과 독일의 예를 든다. 일본의 의원내각제에서 일관되게 지속된 권력구조의 원형은 '권력의 분산'이었고, 독일의 의원내각제는 '수평적' 권력분립 형태 및 연방과 지방간의 '수직적' 권력분할 제도를 도입했다. 둘 다 분산된 권력 개념에 대한 제도적 합의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부패의 고리는 주체의 변화가 아니라, 부패 당사자를 약화시킬 수 있는 권력시스템을 만들어내는 데서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한 학계의 담론이 필요하다.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확립 : 한국형 노사 패러다임 모색

노사관계처럼 골칫거리도 없다.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의 모델은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향점일 뿐이다. 문제는 생산적 지향이 되고 있느냐는 점. 노사문제를 외부적 토대 위에서 논의해서, 그걸 노사내부 논의와 절충할 수 있는 외삽적 모델이 필요하다. 박병섭 상지대 교수는 "노동자 삶의 질 향상과 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동시에 도모할 수 있는 한국형 노동구조의 혁신모델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한다. 여기서 논의는 맴돌기 시작한다. "어떻게, 어디부터, 어느 나라의 것을"이라는 물음표가 찍히기 시작한다.

최근 유럽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화두라고 한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왜 노동자가 사회적 책임을 질 권리는 인정하지 않는가. 기업과 노동자가 사회구성원에 대한 하향적·상향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다면 질문은 勞使와 사회의 관계를 어떻게 맺을 것인가가 된다. 거기서 적절한 윤리강령이 마련될 때, 사회의 평균심리에서 많이 빗나가지 않는 노사타협의 문화가 가능할 것이고 사회통합의 기반도 마련될 것이다.

환경문제 해결 : 우리시대 환경정의란

환경문제는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가열돼 지금 새만금과 핵폐기장 문제로 1차 폭발을 거친 불안한 휴화산이다. 문제는 환경론자와 개발론자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줄 중간담론이 부재한다는 점. 환경론자는 근본주의적 접근을 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정부와 개발론자가 아무리 양보를 한다한들 불씨는 남아있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환경정의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인가. 해결의 실마리는 환경문제의 담당 층을 새롭게 정의하는 데서 찾아야 하는 지도 모른다. 그런 철학적 정의가 있어야, 환경담론에 못마땅한 관심층이 그 지점을 향해 정체성을 형성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후에야 환경과 개발, 일반 시민이 합의할 수 있는 중립적인 정책이 수립될 수 있을 것이다. 경제논리와 환경논리가 만날 수 있는 적정 수준의 모색, 환경보호가 중장기적으로는 경제적 이득을 가져온다는 식의 제안과 주장은 이런 토대 위에서 검토될 필요도 있다.

빈부격차 해소 및 빈곤퇴치 : 국가의 책임과 역할

빈곤의 문제는 그 동안 운동적 차원에서 일방적으로 개선이 요구돼왔고, 또한 사회복지학 분야에서 현실분석부터 정책연구까지 폭넓게 다뤄져왔다. 지금까지의 쟁점은 국가주도의 공공성을 넓혀나갈 것이냐, 서구의 분권복지를 앞당길 것이냐 등이었다. 하지만 이런 논의 전에 분배의 필요성에 비해 그것을 감당할 제도적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건 누누이 지적돼 왔다. 문제는 어떤 제도도 경험적으로 그 실효성이 검증된 단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제도를 마련하기 위한 정책대결로 논의를 끌고 갈 필요는 없다.

지금은 무엇을 얼마나 분배해야 할 것인지, 우리 사회에 분배돼야 하는 자원이 얼마나 있는지, 그것을 분배했을 때 빠져나간 빈자리가 크지는 않을지 등 분배의 역학구조와 사회함수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분배의 문제를 지나치게 근대적 배치 속에서 사유해온 것은 아닌지에 대한 반성일 것이다. 행정, 정치, 경제, 문화가 모두 자신의 전문분야로 분할된 상태에서 말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분배의 통합모델을 개발하는 일일 것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가 지적하듯 "국가의 수출이 늘어나도 자국경제의 회생이 어렵다는 현실을 고려하면, 국가의 부와 국민의 부를 구별해야 한다"는 것도 분배의 질적 차원이 다양하다는 의미로 통한다.

기초학문 확립 : 기초학문 육성의 원칙은.

기초학문 확립은 제도적 보완이 대증요법으로 등장하면서 위기를 무마시키는 단계다. 문제는 기초학문을 확립해야 한다는 '확신'이 기초학문 전공자 외에는 별로 없다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익광고에서 기초학문이 중요하다고 해서 그렇게 알뿐이다. 그렇다면 기초학문의 확립을 위해서는 먼저 그 필요성을 제대로 증명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간 해외 사례와의 비교를 통해 그 부분도 많이 역설돼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응용학문과 기초학문의 관계 설정,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전공분야와 인력의 규모, 기초학문 사이의 역할 분담 등 실제적인 부분은 논의가 빠진 채 지원육성에 대한 논의만 비대하게 부풀어 있다.

이상 6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봤다. 그 외에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노인복지제도 방안 마련', '외국인 노동자 등의 인권문제', '평화·생명 가치의 확산', '지역분권 및 지방 자치의 확립'도 이와 비슷한 수준과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젠다들이 독립적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하나의 틀 속으로 통합될 수 있는 거시적인 작업도 필요할 것이다. 앞으로 본격적인 논의를 통해 다시금 '한국사회의 방향'의 가능한 모델들이 생산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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