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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이제는 말해야 한다
교수논평: 이제는 말해야 한다
  • 김혜순/ 계명대
  • 승인 2004.01.16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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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 계명대 사회학과 ©
“여자가 그럴 듯한 남자와 결혼해서 이후 행복하게 잘 살았다,” 순치되지 않던 여자가 남자중심 세계로 진입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나지만, 여자의 입장에서는 남자중심 세계에서의 여자의 삶이 이제, 시작이다.

 

국립대의 여교수 채용목표제 실시, 사립대에 권고. 여교수는 소수 고학력 집단이기 때문에 성차별과 무관하리라는 게 일반의 기대이다. 그러나 대학 또한 우리 사회에 내재된 남자 중심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교수생활에 대한 정의나 기준이 남자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여자로서는 낯설고 부대끼기 마련이다. 우리의 어머니들처럼, 여자교수 몇 년이면 “책 몇 권은 쓸” 이야기를 품게 된다. 

 

성차별은 교수의 본분이라는 연구, 교육, 사회봉사에서 뿐만 아니라 대학 내 일상적인 생존과 생활에 걸쳐, 다양하면서도 유형별로, 포괄적이면서도 단계적으로 나타난다. 가장 핵심은 남자 중심으로 작동되는 연계망과 언로에서 배제되면서 정보와 의사결정에서도 배제된다는 것이다. 여교수가 남교수들과 연계망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 여교수들끼리 연계를 구축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 또한 일반 직장의 경우와 대동소이하다.

 

대학은 상대적으로 가장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직이라는 속설은 문제해결을 위해 적용되기보다는 여교수의 성격적 결함으로 문제를 봉합하는 방편으로 활용돼왔다. 교육과 연구에 대한 개인적 헌신을 전제로 하는 ‘지성과 학문의 전당’에서 여교수는, 평상시에는 여자라는 집단의 일원으로 평가되고 평판이 만들어지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개별적이고 예외적인 부적응, 미달사례로 간주된다. 여교수는 상대적으로 혜택받은 특권층 집단이라는 사회적 인식 또한 여교수들을 침묵시켜왔다. 배부른 자의 불평이며 지나친 피해의식이라는 오해와 부적응자라는 매도를 두려워하며, 이 땅의 여자로 어쩌겠느냐는 끼리끼리의 넋두리, 자기검열, 주변화, 분리, 은둔 또는 언행의 연출, 자기최면, 내면화, 도닦기 등의 전략을 구사하면서 남자 중심의 조직에 개인차원에서 필사적으로 적응하려 노력해왔고, 병에 걸리거나, 죽거나, 그래 왔다.

 

그러나 미국 MIT의 사례를 보면 역시 해결방안은 문제의 공론화와 연대를 통한 세력화이다. 1993년 이 대학의 여교수들은 월급, 연구비, 실험실크기, 의사결정권 등에서 겪어 온 성차별을 처음 공식적으로 제기했고, 이후 과정을 밝힌 보고서가 1999년 학교 홈페이지에 올려지면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켜왔다. 미국의 9개 아이비리그 대학총장들이 모여서 이 문제를 논의했고, 여러 대학이 이 사례를 벤치마킹하면서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이를 통해 개인차원의 문제라며 각자 섬처럼 표류하던 여교수들이 단합되고, 연구와 교육의 효율성이 제고됐다고 한다.

 

이미 보도된 대로 우리나라에서도 작년 말 전국여교수연합회의 주최로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당시 토론자로 지정토론자로 또는 청중으로 참석하신 교수님들의 정말 ‘열화’와 같은 반응은 교육인적자원부와 대학교육협의회에 관련 정책의 건의문을 만장일치, 일사천리로 채택하는 것으로 모아졌다. 뚜껑이 열렸으니 이제는 말할 수 있고, 말해야만 한다.

 

그동안 여교수들은 말과 글을 통해 조직 내 성차별에 대해 개인적인 적응노력과 아울러 조직원리 자체를 양성평등적으로 만드는 구조적 제도적 차원의 대책마련도 함께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런 요구를 이제, 우리 스스로도 실천하는 용기와 헌신을 보여야 한다. 여성관련 정책이나 제도의 변화가 일고 있으나 인식의 변화는 쉽지 않다. 이제 당사자로 부각된 여교수들도 학문적으로나 실천적으로 화답할 책무가 있다. 여교수로서 경험하는 성차별을 공론화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여교수의 지위나 소득을 높이기보다는 집단의 위상을 낮출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여자집단보다 지위나 생계의 위협이 덜 한 여교수로서, 사회진출을 앞둔 학생들의 교육자로서, 이런 노력은 성차별 일반에 대한 사회적 가시성을 높이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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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객이 2004-01-16 14:10:48
어디다 대고 하소연할 수 없고, 분하고 억울하리만치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한 미개의 나라라고 까지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는 어찌보면 무지한 부모세대들의 성의 역활에 대한 잘못된 교육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요? 알면 분통터지고 모르면 그냥 그게 전부인줄알고 순명하며 사는 한국여자들의 의식교육 이제는 정말 새롭게 눈뜨게 해야 할 것입니다. 여자의 정당한 권리와 요구가 실현되기 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