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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사람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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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혜인
  • 승인 2020.06.19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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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 옆에 있는 바로 그 사람의 이야기
저자 박김수진 | 씽크스마트 | 376쪽

지금 우리나라에는 얼마나 많은 레즈비언(여성 동성애자)들이 ‘숨어’ 살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성소수자나 동성애에 대한 의식이 희박한 한국에서는 이에 대해 제대로 된 통계조차 찾아볼 수가 없다. 사실 지금 우리 옆에 함께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드는 ‘여자 사람 친구’가 레즈비언일 수도 있다. 평범한 ‘여자 사람 친구’ 사이로 보이는 두 여성은 친구 관계를 넘어서서, 일생을 함께하는 레즈비언 파트너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존재를 전혀 모른 채로 지나친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레즈비언들은 그림자와도 같다. 숨어 있는 채로, 항상 우리 옆에 있다. 

그런데 엄밀히 존재하고 있는 레즈비언들은, 왜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있는 듯 없는 듯 숨어 있어야 하는가?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한 저자 박김수진은 2003년 10월부터 <레즈비언생애기록연구소>를 운영하며 스스로 레즈비언으로 정체화한 사람들의 이야기, 아니면 레즈비언으로 정체화를 하지는 않았지만 동성애에 관해 고민해보았거나 경험해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한 뒤 공개하기 시작했다. 

『여자사람친구』는 그중에서 중요하다 생각되는 열 개의 꼭지를 묶어 낸 인터뷰집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레즈비언의 다양한 삶을 최대한 담고자 했다. 『여자사람친구』 속 레즈비언들의 삶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진로 때문에 고민하고, 최근 시작한 연애로 설레고 행복해한다.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여자 사람 친구’처럼. 
그렇지만 분명 다른 면도 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진지하게 고뇌하며, 성 정체성 때문에 가족들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 또한 그들이 받아들인 자신의 삶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레즈비언들이, 이곳저곳에서 각자 자신들의 행복을 찾아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이다. 

열 명의 레즈비언의 삶을 담은 『여자사람친구』는 우리 곁에 숨어 있을 레즈비언들의 삶을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이 되어줄 것이다. 더 나아가 소수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레즈비언들에게 손을 내밀고, 함께 연대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어주길 바란다. 언젠가 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출판사 책 리뷰>

중요한 것은 나는 여자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그런 삶을 살기로 내가 선택했다는 거예요

『여자사람친구』에는 총 10명의 레즈비언들이 등장한다. 스스로를 ‘은’ ‘달로’ ‘완두’ 등 자신이 지은 닉네임으로 부르는 그들은, 저자 박김수진에게 자신의 일생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레즈비언으로서의 정체화는 언제 어떻게 했는지, 그동안 어떤 연애를 해왔는지, 현재 파트너는 어떻게 만났는지, 가족들과의 관계는 어떤지……. 이러한 대화들을 통해 이제까지 숨겨져 왔거나 대상화되어 납작하게 눌려 왔던 레즈비언들의 삶은 생명력을 얻는다. 『여자사람친구』를 통해 그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나쳤던 레즈비언들은 마침내 실체가 있는 인간으로 드러나게 된다.

『여자사람친구』에 등장하는 이들의 연령대는 1995년생(주디)부터 1956년생(윤김명우)까지 다양하다. 살고 있는 지역도 천차만별이며, 종교가 있는 이와 없는 이가 섞여 있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1970년생인 어떤 레즈비언이 벽장 속에 있다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우연히 다른 동년배들의 삶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처음에는 자신의 출생 연도인 1970년에서 시작하지만, 이후엔 1990년생인 다른 레즈비언의 삶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그 말처럼 『여자사람친구』에는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국 레즈비언의 역사가, 생생한 기록으로 담겨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그저 주변에 있는 ‘여자 사람 친구’로 여겨왔던 레즈비언들이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책 속으로>
p.8 개인 블로그와 <레즈비언생애기록연구소> 단체 블로그를 통해서만 공유해왔던 레즈비언 생애 기록을 책의 형태로 더 많은 분들과 공유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퀴어’라는 이름으로 많은 서적들이 출판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레즈비언’의 이야기를 가득 담은 책을 낼 수 있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감사한지 모릅니다. 레즈비언 관련 서적의 출판장에 작은 기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 기록의 첫번째 독자를 앞서 예로 든 소위 ‘벽장 레즈비언’으로 두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우연한 기회를 통해 우리가 남긴 기록을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요. 그리고 두 번째 독자는 ‘나의 엄마’입니다. 벽장 레즈비언에게, 그리고 나의 엄마께 세상에 이렇게나 다양하고 많은 레즈비언들이 이곳저곳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p.31 은: 그렇게 불안정한 시간을 보내고, 이렇게 불안정한 내 옆에 있는 그 사람도 불안해하고 고생하고.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나로서 서야겠다. 남자를 만나고 여자를 만나고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바로 서야겠다. 그래야 내가 어떤 선택도 할 수 있고, 어떤 선택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생각이 들고 나니 그제야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어쩌면 바로 그때 제대로 정체화를 했다고 볼 수 있어요. ‘나는 레즈비언이야’라는 의미에서의 정체화가 아니라, ‘내가 바로 서야 한다. 바로 서야 내가 온전하게 내 선택으로 누구든 만날 수 있는 거다. 그 상대방이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내 선택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 거예요. 그 후부터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충실하게 대할 수 있었고. 특별히 ‘나는 레즈비언이다’라는 정체화를 한 상태가 아니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처음으로 확실하게 ‘나는 레즈비언으로 살 거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p.74 박김수진: 좋은 계획이네요. 평소에 달로님 보면 무지개 액세서리 많이 차고 다니잖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달로: 너무 재미있어요. 이런 것들을 차고 다녀도 관련되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못 알아보잖아요. 그게 너무 재미있고, 이반들이 알아차리고 관심을 보이면 그 사람들을 보는 것도 참 재미있고요. 대중교통 이용할 때, 알아차리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네들이 반갑게 생각할 거라는 상상을 하면 너무 좋고 재미있어요. 실제로 만나서 그런 장면에서 얘기를 나누거나 그런 적은 없지만요. 이걸 차고 있는 저를 보고 누군가들이 반가운 마음을 가지면 그게 되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런 걸 생각하면 참 좋아요. 보고 웃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그럼 반갑고 되게 좋아요. 아는 사람 중에서도 친하지는 않은데 제가 레즈비언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에게 “맞다”는 사인을 주는 거라 그런 것도 좋아요. 그런데 무관심한 사람들은 이걸 봐도 뭔지도 모르고 그럴 때 이런 느낌이 들어요. ‘니들이 몰라도 나는 여기에 있지!’ 이런 걸 막 보여주는 그런 느낌이요.

p.97 박김수진: 처음 시작했던 성소수자 단체 활동은 어땠어요?
완두: 10대 성소수자를 만날 일이 많았고 활동 자체는 참 좋았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오래 지속할 수는 없었어요. 그 후에 10대 관련한 교육 과정들에 참가하다가 모 청소년 단체 활동가들과 연을 이어나갈 수 있었고요. 대학 졸업 후에 그 단체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력서에 아예 커밍아웃을 하고 들어갔어요.

박김수진: 우와. 왜 이력서에 썼어요?
완두: 이력서에 커밍아웃을 한 것은, 내가 커밍아웃을 하지 않으면 내가 왜 그 단체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지, 들어가서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 건지를 설명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썼어요. 다행히 그 단체는 성소수자 문제에 굉장히 친화적인 분위기였고, 동성애 관련한 문제가 있으면 “이 문제는 완두한테 물어봐야겠다”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했죠. 좋은 곳이었어요.

p.159 박김수진: 언니, 중간 점검이랄까. 언니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 더 자세하게 듣고 싶은 부분들이 있어서 질문할게요. 제가 알기에 언니는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 퀴어가 아니라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고 있잖아요. 그 이유를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시겠어요?
랑랑: 내가 아직까지도 스스로에게 ‘레즈비언’이나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라고 이름 붙이려고 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해요. 내가 한국에서 활동하던 1990년대 중반 시기에는 스스로 ‘레즈비언’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조차 너무도 힘든, 위험한 일이었잖아요. 아무래도 그런 시기를 살았기 때문인지 ‘레즈비언’이나 ‘레즈비언이면서 페미니스트인 사람’이라는 명명은 내 자신이 이루어낸, 성취해낸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버리고 싶지 않아요. 그 명명들 속에 아주 큰 자부심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이런 생각을 지금도 이어오고 있는 거죠. 퀴어 담론이 주요 담론으로 부상하면서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이나 명명이 굉장히 진부한 것으로 치부되어온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나는 퀴어 담론의 확장과 무관하게 레즈비언 담론은 레즈비언 담론으로 남고, 그 기능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p.222 박김수진: 왠지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질문도 하고 싶네요. 퀴어 프라이드, 레즈비언 프라이드요. 주디님은 프라이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고 설명할 수 있어요?
주디: 사람은 결코 아무에게도 영향을 받지 않거나 주지 않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주고받고 살고 있는데, 레즈비언이나 퀴어라는 정체성을 스스로 인지하게 된 이상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프라이드를 가진 사람이라면요. 내가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또 세상이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여기에서 내가 해야 하는 역할을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갖는 것, 노력하는 것이 프라이드라고 생각해요. 일종의 마음가짐인 거죠.
내가 단독자가 아니라는 인식, 그리고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는 인식, 그런 지향들을 품는 것. 그러려면 작은 일 하나하나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작은 것에 너무 기뻐한다거나 작은 것에 너무 슬퍼하거나 너무 화를 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프라이드 함양에 있어서요. 요즘 수많은 것들에 혐오와 차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는 하는데요. 모든 혐오와 차별에 대해 에너지를 쓸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에는 중대한 혐오와 차별에 맞서는 에너지를 내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에너지를 잘 분배할 수 있어야 해요. 나의 한정된 에너지를 더 좋은 곳에 잘 쓰기 위해서 노력해야죠.

p.246 사과: 네. 뭐가 바뀌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스물일곱 살 이후에 조금 편해졌어요. 제가 수진님 처음 봤을 때가 재작년이잖아요. 재작년에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레즈비언들을 만났단 말이에요. 그 당시에 집에 가서 일기를 썼는데, “너무 기분이 이상하다. 내가 여기에서 아무에게도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얘기하지 않는데, 사람들이 나를 너무 자연스럽게 레즈비언이라고 생각하고, 나도 그게 이상하다, 너무 불편하다”라고 썼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기분이 들었다”라고 썼던 게 기억나요. 어쨌든 언제부터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어떤 계기도 없었는데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에 대해서 조금씩 편해지기 시작했어요. 아마도 대학/대학원을 다니고 일을 하면서, 그리고 공부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나를 아끼는 방법을 알아가게 된 것 같아요. 성장하는 과정이었는데, 아마 그 과정에서 정체성에 관해서도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아, 최근에 알게 된 건데요, 무엇에 대해서 생각할 때 이유를 찾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명확한 이유를 찾는 것, 이게 문제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물론 여전히 이유를 찾기도 하고요.

p.278 박김수진: 레즈비언, 게이 이슈가 굉장히 이슈화됐고 많은 사람들이 특히 젊은 층에서는 문제없다고 말하는 인구가 상당히 많아지고 있기는 한데, 일상에서는 그게 어느 정도 반영되고 있는지 그 변화를 체감할 기회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이 점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브라이튼: 그냥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면 멋있는지 아니까 그렇게 대답하는 경우들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럴 거라면 추측해야 할 것 아니에요. ‘이 사람이 동성을 좋아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항상 생각해야 하는데, 전혀 아무도 일상 속에서 그 생각은 안 해요. 동성을 좋아할 수 있는 동성애자일 가능성을 배제하면서 누군가와 인터뷰할 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상관없어요”라고 답할 수는 있죠. 그런데 현실에서는 바로 내 옆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수준까지는 못 미치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세상이 달라졌다는 체감을 한 적이 없어요. 운동들의 변화 속도를 보면 또 ‘세상이 달라지는 속도도 그만큼 빨라지겠거니’ 하는 생각도 들지만 내가 향유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p.300 박김수진: 지금 작가 활동은 못 하고 계시는 상황인 건가요?
해바라기: 네. 스스로 작가라고 하기엔 작업을 꾸준하게 해오지 못한 부분도 있고, 다른 일들을 하느라 바쁘게 보내는 중이에요. 그래서 누구에게 스스로 작가라고 말을 하기에도 민망한 상태가 되어버렸어요. 사실 작업이나 일에 관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아요. 지금 하고 있는 학원 일도 지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여러모로 안정적인 직업이라고 보기에도 힘들고요.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많이 고민하고 있고. 마치 제2의 사춘기처럼 그런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심리적으로 압박도 있고, 스트레스도 있고. 힘들어요. 10대 때 정체성 알아가면서 힘들었던 것에 준하게 지금 힘들고 슬프기도 하고 그래요. 하루하루를 견디면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언젠가 <성소수자 부모모임>에 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 모임에서 어떤 부모님이 “커밍아웃을 하기 전에 경제적인 독립을 하는 게 좋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저도 같은 생각인데, 언니나 부모님이 볼 때 내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심려를 끼치는 그런 상황들을 만들고 싶지 않아요. 언니는 아무래도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더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내가 내 힘으로 내 애인과 잘 산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어요.

p.309 수연: 지금 만나는 파트너는 저랑 하는 연애가 처음이었어요. 저보다 11살이 많은데도 제가 처음 만난 사람이어서 제가 다 가르치면서 연애를 했어요. 하하. 비교 대상이 없잖아요. 내가 가르쳐준 게 다인 줄 아는 거죠. 하하. 그렇게 연애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렇게까지 저한테 맞춰주는 사람을 처음 만났어요. 성격 자체가 상대방에게 맞춰주는 사람이고요. 그래서 이렇게 편안한 연애를 처음 해봤어요. ‘아, 원래 이렇게 할 수도 있는 거구나’라는 걸 배웠어요. 이전 연애에서 상대방에게 모든 걸 다 퍼붓고 관계가 허망하게 끝날 때 참 많은 생각을 했어요. 더는 그런 연애를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감정을 소모하고 힘든 연애를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원한다고 이루어지는 건 아니지만요. 그런데 지금은 나한테 맞춰주고 나를 많이 좋아해주고 편안한 연애를 처음 해보게 된 거예요. 그래서 되게 좋더라고요.

p.368 윤김명우: 나 역시 레즈비언으로 살아오면서 차라리 죽는 편이 나을 거라고 생각한 때가 많았어요. 레즈비언으로 살면서 겪어온, 겪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겪을 일들을 생각하니 죽는 것이 더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에 끊임없이 시달려왔죠. 그저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또 다른 한 사람의 여성을 사랑하는 그 감정이 왜 내 인생을 그토록 힘들게 만들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고요. 왜 이반들이 한국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가족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거나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 되어야 하는지. 나는 그게 항상 가슴 아파요.
레즈비언이라고 살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어려울수록 더 악착같이 살아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살았더라면 더 행복했을까요? 결혼을 하고도 불행해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어요. 중요한 것은 나는 여자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그런 삶을 살기로 내가 선택했다는 거예요. 나는 레즈비언이고 여자를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데, 대체 뭐가 문제인 거예요? 생각해보면 이런 삶보다 더 어려운 삶도 많아요. 더 힘든 일들이 많죠. 이런 생각을 갖는 것이 중요해요. 죽는 사람은 아무 얘기도 안 해요. 죽으면 그만이잖아요. 목숨을 끊을 용기가 있으면, 그런 힘이 자신 안에 있으면 그 힘으로 더 잘 살아야 해요. 죽고 싶다고 죽었으면 나는 벌써 이 세상에 없는 거죠. 그럼 남는 것도, 변하는 것도, 행복을 느낄 것도 모두 없어지는 거예요.

 


<목 차>

머리말 <여자 사람 친구>를 펴내며

1 은 “남자를 만나고 여자를 만나고의 문제가 아니다”
은은 1988년생으로 경기도에 거주하고 있었다. 종교는 천주교이며, 당시에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현재는 공부를 하기 위해 외국에 머물고 있다.

2 달로 ‘니들이 몰라도 나는 여기에 있지!’
달로는 1991년생으로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 종교는 없고, 인터뷰 당시 직업은 대학원생이었으나 현재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3 완두 “어떤 대상에게 관심과 에너지를 쏟느냐의 문제이지, 그게 곧 연애로 귀결되는 문제는 아니에요”
완두는 1990년생으로 인천에서 태어났고, 현재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다. 종교는 없으나 불교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인터뷰 당시 직업은 활동가였으나 지금은 콜센터에서 상담원으로 일하고 있다.

4 랑랑 “나는 레즈비언이고 페미니스트입니다”
랑랑은 1973년생이고, 부산에 거주하고 있다. 종교는 불교이며, 직업은 타로 연구가이자 인권운동가다. 랑랑은 한국 레즈비언 운동사에 기록되고 기억되어야 할 멋진 레즈비언 활동가다.

5 주디 “네가 내 딸인 건 변함이 없고, 너는 나의 자랑스러운 딸이고, 앞으로 네가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거다”
주디는 1995년생으로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 종교는 없으며, 인터뷰 당시에는 대학생이었으나 현재 원하는 직장에 입사하여 열심히 출퇴근하고 있다.

6 사과 “의미는 찾는 게 아니라, 살다 보면 생기는 것 같아요”
사과는 1987년생으로 경기도에 거주하고 있다. 종교는 없으며, 사회복지 계열 회사에 다니고 있다.

7 브라이튼 “잘 사는 게 아니라 잘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브라이튼은 1980년생으로 경기도에 거주하고 있었고, 입사를 앞두고 있었다. 현재는 충청도에 거주하고 있으며, 종교는 가톨릭이다.

8 해바라기 “내가 내 힘으로 내 애인과 잘 산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어요”
해바라기는 1979년생으로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기독교인이다. 직업은 학원 강사이다. 요새 여러 가지로 생각도, 고민도 많다.

9 수연 “연애랑 결혼 얘기를 계속해요. 답답해요. 정말 답답해요”
수연은 1979년생으로 부산에서 40년을 거주했다. 서울에서 거주한 지는 1년이 조금 넘었다. 종교는 없으며, 직업은 사무직 회사원이다. 현재 직장 생활과 학업을 병행 중이다.

10 윤김명우 “중요한 것은 나는 여자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그런 삶을 살기로 내가 선택했다는 거예요”
나의 이름은 두 개입니다 / ‘남자 같은 아이’로 자랐던 시간들 / 레즈비언 정체성을 깨달은 뒤 방황을 시작했다 / 드디어 레즈비언 집결지, 서울 명동에 진출하다 / 양동 집창촌에서의 잊지 못할 기억들 / 나의 레즈비언 선배들 / 나는 남자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었는데 / 내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전부 어머니의 덕 / 내 인생에 사람은 이 사람뿐이구나, 했던 15년 / 다시, 레즈비언 되기 / 여자가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

      <저자> 박김수진

2003년 10월부터 레즈비언 생애 기록 활동을 해오고 있다. <레즈비언생애기록연구소>의 대표이다. 낸 책으로는 레즈비언 바로 알기 입문서 『너는 왜 레즈비언이니?』와 동물권 입문서 『고기로 태어나고 싶은 동물은 없습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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