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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전시장
욕망의 전시장
  • 교수신문
  • 승인 2020.06.18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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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전시장
욕망의 전시장

 

최병택 지음 | 서해문집

지금 우리의 삶은 과거에서 이어져, 현재를 이루고, 미래로 나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삶의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현재뿐 아니라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 과거 중에서도 현재와 멀지 않은 근현대를 돌아보는 일은 더 의미가 클 것이다. 새롭게 선보이는 ‘한국근현대생활사큰사전’은 ‘내 안의 역사를 성찰하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플랫폼’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근현대 인간의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상을 돌아보는 시리즈다.

한편, ‘큰사전’을 시리즈명으로 내세운 이 시리즈의 구성은 특별하다. ‘섹션’이라 불리는 큰 범주(시각/섹슈얼리티/건축 등) 아래 다섯 개의 ‘키워드’(시각: 광고/박람회/텔레비전/영화/포스터)를 각각 하나의 책으로 엮어내는 구성이다. 즉 이렇게 모인 다섯 가지 키워드의 다섯 권의 책이 한 섹션을 이루고, 섹션들이 모여 큰사전을 이루는 구성이다. 사소하지만 중요한 개인의 일상들이 모여 사회와 인간의 역사를 이루듯, 한 권의 책으로도 충분한 키워드들이 시리즈로 모여 전체적인 근현대 생활사를 보여주는 셈이다. 이번에 시리즈의 시작으로 ‘시각’ 섹션의 두 키워드(광고/박람회)를 먼저 선보이고, 이어서 같은 섹션의 다른 키워드들은 물론, 다른 섹션들도 선보일 예정이다.

시리즈 ‘시각’ 섹션의 키워드 중 하나인 ‘박람회’를 다룬 이 책은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를 비롯해, 1920년대의 박람회와 공진회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공진회’와 ‘박람회’는 일제강점기 때 식민 당국이 자주 개최한 전시 행사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서도 개최된 박람회와 달리 공진회는 규모나 수준이 조금 떨어지는 전시 행사로, 1910년대 초부터 조선총독부가 조선의 여러 지방에서 개최했다는 특징이 있는 행사다. 그런데 일제는 왜 식민지 조선에서 이런 행사들을 개최했을까? 그리고 조선 사람들은 이런 행사들을 어떻게 보고, 느꼈을까?

조선총독부가 박람회와 공진회 등을 개최한 이유는, 조선에 대한 식민 지배가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일제는 공진회와 박람회를 통해 자신들을 ‘문명의 전파자’ 또는 ‘문명의 교사’로 설정했고, 그에 맞게 식민지 조선인을 자신들의 지도를 받아야 하는 ‘열등한 인간’으로 자리매김하려 했다. 하지만 당시 서구의 박람회에 비한다면, 조선에서 열린 공진회와 박람회의 수준은 조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

더구나 공진회에 전시된 물품들은 조선인의 무관심과 냉소를 자아냈다. 조선의 지형과 기후 현실에 적합하지 않은 벼 품종을 과대 선전하는 모습이나, 짚신 같은 일상용품만 잔뜩 쌓여 있는 전시장을 바라본 조선인은 조선총독부의 개최 의도를 의심하기도 했다. 공진회에 대한 조선인들의 부정적 시각은 1920년에 접어들어 더 커졌다. 1923년 조선부업품공진회 때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공진회를 비아냥거리기 시작했고, 공진회 열기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때부터 공진회는 일본인 상인과 여관업자의 돈벌이 기회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고, 이들의 요구로 공진회가 박람회로 바뀌어 열리기도 했다. 하지만 박람회도 조선인의 외면을 받았고, 그저 소리만 요란한 서커스 행사로 기억되기에 이르렀다. 일제 역시 공진회와 박람회를 개최한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주요 내용이 이 책에서는, 당시 행사 사진들과 더불어 상세히 펼쳐진다. 1장(식민권력이 바라본 박람회)에서는 박람회 개최 배경과 규모 등을 보여주고, 2장(1910년대 지방물산공진회)에 이어 3장(1915년 시정 5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과 4장(1923년 조선부업품공진회)에서는 시기별 대표적 공진회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마지막으로 5장에서는 공진회가 박람회로 바뀌는 과정과 이유 그리고 그 결과를, 1926년과 1929년 열린 박람회를 통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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