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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해체 주장을 접하면서 : 김기봉 교수의 글을 읽고
국사 해체 주장을 접하면서 : 김기봉 교수의 글을 읽고
  • 이노형 울산대
  • 승인 2004.01.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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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사에 치우친 해석...민족문화사의 특수성 고려해야

김기봉 교수가 제기한 견해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 고구려 멸망 이후 중세의 동아시아 질서는 중화가 주도한 것이었다. 둘째, 근대 이전 민족 형성은 선험적 망상일 따름이다. 셋째, 동아시아 근대는 일제가 준 것이다. 넷째, 동아시아 역사도 서양사와 서로 크게 다를 바 없다.

김 교수의 의중을 잘못 이해한 것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필자의 문제제기성 견해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자 한다.

고구려 멸망 이후 이 땅의 문명사가 중화문명사라 할 경우 자기 힘으로 창조한 '국제적 문명'의 존재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지. 이를테면 금속활자와 청자, 한글과 과학기기, 거북선과 해군전술 등은 자력에 기초한 세계문명들이다.

국제성까지야 따지지 않더라도 민족의 예술양식 중에는 독창성을 확보한 것들이 지천으로 넘쳐 난다. 아리랑이나 김홍도, 국어문학을 비롯하여 민족적 특성을 뚜렷이 반영한 예술양식들은 중화문화권과 서로 무관하다. 고유하고 다채로운 풍속들도 중화풍속이 아니다. 옷이며 김치, 된장을 들어보아도 마찬가지다.

중화의 유교와 한문이 긍정적, 해독적 영향을 두루 미친 사실을 인정하되 과연 그런 것들이 민족사의 진보적 발전을 주도한 것이었다고 하면 필자의 질문은 우문이 되고 말수도 있다. 

근대 이전 민족형성이 망상일 따름이라면 강감찬, 서희로 상징되는 대거란투쟁이며 삼별초와 부마국으로 상징되는 대몽항쟁은 무엇이며 거기에 반영된 정신은 민족의식이 아닌 것일까. 임진병자 투쟁사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불굴의 줄기찬 반침략투쟁사에는 과연 민족의식이 없었던 것일까. 기본동력인 의병이며 민중은 단순히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하여 혹은 지배계급에게 속아서 그다지 빛나는 헌신을 한 건가.

우리의 근대와 국민국가 및 근대적 민족주의는 과연 일본제국주의의 등장에서 비롯된 것일까. 역사발전단계 구분기준을 사회경제사로서만 이해하고자 할 경우 그것은 언뜻 선명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식민지근대를 그런 식으로 재단할 경우 수탈체제를 인정할지라도 민족의 근대는 일본제국주의가 전해준 선물이란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항일선열들의 정치투쟁이 민족 근대를 규정하는 더욱 근원적인 기준이 아닐런지. 식민지근대의 피눈물을 극복하고 자율적 경제를 확보하기 이전에 마땅히 선행해야 할 근대적 과업이 민족적 정치권을 회복하는 투쟁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근대 기점에 대한 시비는 적어도 신미년과 갑신년, 갑오년, 혹은 간도나 상해 등의 반침략적 정치투쟁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근대에서 일제의 영향력은 철저히 비본질적인 것이었다. 근대 민족경제의 측면에서도 그것은 자주적 근대경제를 철저히 유린하는 적대적인 것이었다.

지구촌 역사의 보편적 발전단계는 지역마다 민족마다 특수성을 가지는 걸 전제해야 한다. 서양 중세사는 김 교수의 견해대로 민족사가 없었던 역사다. 민족사가 없었던 지역을 민족사가 있었던 지역에 그대로 적용할 수가 있는가. 서양 중세사의 경우는 오히려 미개의 특수성을 지닌 것으로 분석되어야 한다. 밥과 빵이 동일 미각일 수는 없다.

동서양 중세사에서 기독교와 유교가 지배권의 중심추로 작용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동양에서 곧바로 민족사의 근본성격을 규정하는 건 아닐 것이다. 우리 민족사 훼손의 책임은 내부적으로는 계급적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한 지배계급의 반민족적 지배이념에서 기인한다.

만일 민족주의를 부르주아 민족주의라는 단 하나의 범주로만 규정해버린다면 필자의 질문은 우문이 되고 만다. 과연 고려며 조선 농민의 눈부신 반침략투쟁사는 단순히 통치계급만을 위한 거사였을까.

멀리 떨어진 사물의 존재와 속성에 대한 왈가왈부는 선험적일 지도 모른다.

현대 동구사회주의 붕괴는 무엇을 뜻할까. 이런저런 원인진단들이 가능하겠지만 사회주의 통합 초기이든 전개과정이든 거기에는 해소하지 못했던 민족모순도 한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 게 아닌가. 사회주의 통합과정이 드러낸 민족의 강제통합이나 이식적 사회주의화에서 파생된 민족적 독자성의 훼손이 정권의 민족적 토대를 상실케 한 것일 수도 있다.

지금 이 땅에서 전개되는 반외세 및 민족단결의 흐름은 또한 무엇이어야 하나. 기층대중들이 국내 부르주아 계급에 속고 있거나 자기계급적 이익을 훼손하기 위해 벌이는 무모한 망상인가. 민중의 피어린 애국심은 허영일까.

모순이 있는 곳에 반항이 있다면 그것은 민족문제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 사회주의도 민족을 전제해서야 가능한 법이다. 마오쩌뚱은 티베트민족을 처절한 유혈로 강제통합했다. 역사의 합법칙성은 다민족국가의 사회주의가 민족적 모순을 안고 있을 때 그것은 진정한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끝내 붕괴될 수밖에 없음을 자명하게 보여 주었다. 민족 분단의 상처를 이용하여 재주 부리고자 하는 침략적 민족주의는 저들 민족모순의 태생적 한계를 더욱 표면화할 시점을 앞당길 수도 있다.

우리 민족은 유구하고 단일한 민족이며 또한 처절하고 굳센 투쟁으로 민족근대를 창조했다. 일반적 민족주의도 이 땅에서는 유구하다.

이노형 / 울산대, 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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