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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문화 칼럼]디지털과 연필
[김희철의 문화 칼럼]디지털과 연필
  • 교수신문
  • 승인 2020.06.1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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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 리뷰

노동 문제, 복지 문제를 다루는 토론장에서 많이 언급되는 영화를 꼽자면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켄 로치 감독은 1936년생 고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최근에도 <미안해요, 리키>(Sorry We Missed You, 2019)를 통해 비정규직 프리랜서들이 겪는 애환을 그려냈다. <풀 몬티>(1997), <빌리 엘리어트>(2000) 등의 영국 영화들이 노동 문제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 전통을 갖고 있다면, 켄 로치의 작품들은 그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보다 직접적인 표현 방식을 취하고 있다

수십 년 목수로 일해온 다니엘은 최근 심장 질환 때문에 작업 도중 추락사할 뻔 했다. 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엎친 데 겹친 격으로 질병 수당 신청마저 기각되었다. 

“죄송하지만 상담원이 모두 통화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인내심을 갖고 몇 시간 만에 성공한 상담원과의 통화는 그의 울화통만 더 키운다. ‘디지털 시대’의 행정은 사람들에게 인터넷 신청을 권하지만 ‘연필 시대’ 사람인 다니엘에겐 언감생심일 뿐이다.

복지 수당 신청 센터에서 다니엘은 딱한 처지에 놓인 케이티와 두 아이에게 눈이 간다. 동병상련을 느껴서일까? 런던에서 살던 케이티네는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다니엘이 살고 있는 뉴캐슬로 이사 왔다. 케이티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청소 전단지를 들고 호텔과 카페를 돌지만 시원치 않다. 가스 전기 요금 독촉장도 날라온다. 급기야 케이티는 마트에서 생리대 같은 생필품을 훔치기까지 한다. 정 많고 손재주도 많은 다니엘은 케이티네 집에 가서 자잘한 수리도 해주고 식료품 무상 지원소에 케이티네 식구를 데려가기도 한다. 그는 그들을 도우며 먼저 떠난 아내를 그리워한다.

다니엘이 직접 나무로 만든 모빌, 죽은 아내의 추억이 담긴 카세트테이프 등이 가난을 위로하는 소품으로 등장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그저 힘들 때, 예상하지 못한 난관이 닥쳤을 때 잠시 기대어 쉴 수 있는 곳이 필요할 뿐.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 각 지자체별로 재난 소득 지급 등이 있었다. 또한 여러 관공서들이 코로나19와 관련하여 다양한 지원책들을 내놓고 있지만 가난을 증명하는 서류를 열 가지 넘게 제출하라는 곳도 있고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의 정책들도 많다.  

필자의 경우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창작지원금을 신청했었다.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점수를 얻어놓고도 고용보험 가입자라는 이유로 탈락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강사로 등록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 학기엔 한예종 수업이 폐강되어 그곳에서의 수입이 없는데도 그렇다. 프리랜서를 지원한다는 고용노동부의 프로그램에서도 고용보험 가입자는 예외였다. 고용보험이라는 족쇄에 묶여있는 기분이다. 내 주변 예술가, 프리랜서, 사업자들의 딱한 사연들도 들었다. 개인정보 동의서에 사인을 안 했다는 이유로 탈락시킨 경우도 많았다. 

코로나19 대책 회의로 연일 바쁘실 정치인들과 행정 고위 관료들이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 이 영화를 봐주길 바란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난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난 굽실대지 않았고 이웃이 어려우면 그들을 도왔습니다.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지도 않았습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김희철
<잠깐 운전하고 오겠습니다> 저자, 서일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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