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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논의에서 소외된 주제들 다뤄…문화적 이질화 분석 소홀
통일논의에서 소외된 주제들 다뤄…문화적 이질화 분석 소홀
  • 고유환 동국대
  • 승인 2004.01.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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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서평: 『통일과 문화』(귄터 그라스·백낙청 외 지음, 역사비평사 刊, 246쪽)

남북이산가족상봉. 이 눈물의 만남은 체제의 통일이 문화적 교류 속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 외교통상부

"옛 동독에서는 30마르크를 쓰면 책을 3권 구입하거나 술 1병을 살 수 있었지만, 통일된 독일에서는 같은 돈으로 책은 1권밖에 못 사고 술은 3병이나 마실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독일이 통일되기 전 베를린 훔볼트대 한국어 과장을 지냈으며 20년 이상 에리히 호네커 옛 동독 공산당서기장의 한국어 통역을 맡은 헬가 피히트 교수가 독일 통일이 안고 있는 가장 큰 취약점을 '물질만능'으로 꼽으면서 지적한 말이다(연합뉴스, '현장대르포 통일독일의 명암:통독 3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1993, 213쪽).

독일 통일 사례는 우리에게 반면교사로 많은 시사점과 교훈을 준다. 독일통일에 대한 국내의 논의는 지나치게 통일의 정치·경제적 측면에 집중돼왔다. 독일통일의 과정과 통일 이후의 통합과정은 전혀 예상치 못한 난관이 여러 영역에서 잠복해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통일의 어려움은 정치·경제의 영역보다 사회·문화의 영역에서 더 심각하게 나타났던 것이다.

통일문제의 소외된 주제들 다뤄

무엇보다 동서독간 정치제도의 차이와 경제적 격차는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극복돼 가는 반면, 심리적·정서적 간극, 즉 문화적 이질감은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동독 사람들이 통일독일에서 느끼는 문화적 이질감이 심화되면서 동독지역에서는 구동독의 정체성이 부활하는 이상기류가 확산되고, '동독에 대한 향수'를 뜻하는 오스탈지아(Ostalgia)라는 신조어까지 유행하게 됐다.

▲ © 예스24
통일 독일이 우리에게 준 이러한 교훈 속에서 이 책의 엮은이들(김누리·노영돈)은 "통일은 '제도'나 '체제'의 통합이기에 앞서 '인간'과 '정신'의 융합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책은 귄터 그라스, 백낙청 등 진보적 통일론을 펼친 독일과 한국의 학자(로타 프롭스트, 볼프강 엠머리히, 김문환), 시인(우베 콜베), 소설가(황석영) 등의 글을 통해서 "통일의 사회적 내용, 통일과정에서 문화가 수행할 역할, 통일을 위한 언론의 기능, 통일문학의 가능성과 한계, 통일과정에서 지식인이 떠맡을 구실 등을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지금까지 국내의 통일논의에서 크게 주목하지 못했던 문제들로서 심도 있는 통일논의를 위한 토대를 제공할 뿐 아니라, 통일정책의 방향 설정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귄터 그라스는 "문화는 분단의 과정에서 가장 저항력이 있는 것으로 증명"됐다고 주장한다. 경제·군사·이데올로기 등이 모두 분단돼 자본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로 모든 것이 나뉘었지만, 문화만은 분단에 저항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분단되지 않은 문화가 남북대화의 초석이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귄터 그라스, 남북문화 동질성에 주목

귄터 그라스는 "한반도에서도 문화는 남과 북에서 언제나 분단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남과 북은 분단 이후 반세기 동안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면서 자본주의·개인주의 인간형으로 사회화된 남과, 사회주의·집단주의 인간형으로 사회화된 북 사이에 문화적으로도 상당한 이질화가 진행됐다. 어쩌면 민족도 단일민족에서 '자본주의 민족'과 '사회주의 민족'으로 나뉘어졌는지도 모른다. 너무나 오랜 시간 남과 북 사이에는 교류가 차단된 상태에서 서로 다른 생활권을 형성해왔기 때문에 혈통, 언어, 지역의 공통성에 기초한 민족 개념에서 볼 때 단일민족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이질화가 진행됐다. 남과 북의 주민사이에 핏줄은 같지만 겉모습이 많이 달라졌다. 식량난 등으로 남북한의 평균키와 몸무게 등에 많은 차이가 생겼다. 남과 북의 초등학교 학생들의 평균키가 약 20센티미터 차이가 난다고 한다. 언어 또한 순수 우리말(문화어)을 고집하는 북과 외래어가 침투한 남 사이에 의사소통에 불편을 느낄 정도로 변했다. 김일성 주석 사후,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으로 자주성이 구현된 조선민족을 '김일성민족'이라고 부르고 있다.

백낙청은 독일통일로부터 한반도에 곧바로 적용될 교훈은 별로 많지 않다고 본다. 한반도의 분단은 독일과 전혀 다른 역사를 통해 성립됐으며, 전혀 다른 성격의 체제(regime 또는 system)로 자리잡았기 때문에 독일식의 해결책은 한반도에서 불가능한 것으로 본다. 명분 없는 분단, 동서대립, 제3세계 사회변혁에 대한 패권국의 통제, 한국전쟁에 따른 분단고착화 등으로 남과 북은 "서로 대립하면서도 일정하게 상호 의존하는 분단체제가 성립"됐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반도 분단은 독일 분단과 베트남 분단이 복합된 형국으로 볼 수 있다고 백낙청은 밝히고 있다. 전자가 동서 냉전의 좀더 직접적인 표현이었다면, 후자는 냉전적 요소가 가미되긴 했지만 민족해방전쟁의 면모가 더 강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베트남은 동서 냉전의 도중에 통일될 수 있었고, 독일은 냉전 종식과 더불어 통일된 데 비해 한반도는 냉전시대 이후에도 여전히 분단상태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백낙청은 분단체제의 복합적 성격에 걸맞은 복합적이고 더욱 발본적인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내부식민화' 경계한 공존의 모색

백낙청은 세계체제론적 관점에서 "현존 세계체제의 대세에 비추건대 한반도 전체가 자본주의 세계시장에 어떤 식으로든 통합되는 과정은 불가피하다"라고 보고, "분단체제는 현존 세계체제의 한 하위체제로서 그 현상유지에 충실히 복무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분단체제의 극복은 세계체제가 좀더 나은 체제로 변하기 위해서도 결정적으로 중요한 과정이며, 또 그만큼 힘들고 복잡한 과업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백낙청은 "지금은 통일보다 평화를 강조하고 분단체제의 주어진 여건 아래서 최대한 화해와 교류를 추구할 단계"로 본다. 분단체제의 극복운동은 넓은 의미의 문화적 작업으로, 남북의 민중은 분단의 벽을 넘어 만나고 소통할 뿐더러 그간의 갈라진 삶에 대해 성찰하면서 새롭게 태어나는 지적·도덕적·정서적 과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김문환의 주장처럼, 독일통일을 제대로 '반면교사' 삼고자 한다면 '민족'과 '영토'에 근거한 통일 대신 '문화'와 민족주의적이고 공화주의적인 '헌법'에 토대를 둔 새로운 형태의 통일을 추구하는 서독 지식인들의 경우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통일을 서독의 잘못된 자본주의와 동독의 잘못된 사회주의를 변증법적으로 지양할 수 있는 기회로 보는 한편, 민족의 통일성을 지속적으로 담보하는 것은 결국 문화"라는 귄터 그라스의 믿음이 시사하는 바를 의미있게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통합 13년이 지났지만 동서독간에는 여전히 '게으른 동독놈들(Ossis)'과 '역겨운 서독놈들(Wessis)' 사이의 사회적·문화적·심리적 분단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정치·경제 '체제'의 통합은 이뤄졌지만 사회통합 측면에서 보면 독일은 여전히 분단상태라는 것이다. "사실상 외적 통합이 내적 분단을 어정쩡하게 봉합·은폐하고 있는 것이 독일의 현실(김누리)"이다.

독일 통일 경험에서 얻은 결론은, 한반도에서의 통일은 한쪽에 의한 다른 한쪽의 '내부식민화'로 귀결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통일 이후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남과 북의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가운데 상대 문화의 기본적 특성을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공존의 문화를 바탕으로 민족동질성을 회복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과 북의 지식인들은 통일에 앞서 남쪽의 '기형자본주의'와 북쪽의 '봉건사회주의'의 고질적인 모순을 해소하는 노력을 지속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필자는 동국대에서 '발전과 저발전론에 관한 방법론적 고찰: 종속론과 세계체제론을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북한정치와 통일을 전공했으며 '금강산 관광사업과 남북 경협', '북한학 입문', '21세기 남북한 정치' 등의 저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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