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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는 구체제를 붕괴시켰나
금서는 구체제를 붕괴시켰나
  • 최성일 출판평론가
  • 승인 2004.01.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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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리뷰 : 『책과 혁명』(로버트 단턴 지음, 주명철 옮김, 길 刊, 582쪽, 2003)

▲ © 예스24
이 책을 읽는 것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나는 적어도 세 번은 깜짝 놀랐다. 우선, '고양이 대학살'(문학과지성사 刊)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저자가 2백여 년 전의 방대한 자료들을 섭렵했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25년에 걸친 연구의 결정체인 이 책은, 물론 이 기간 다른 연구를 병행했겠지만, 책을 옮긴 주명철 교수의 표현대로 "성실함과 우직함이 낳은 대작"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프랑스 혁명 이전의 책에 관한 자료들이 많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특히, 스위스의 주네브 공국에 위치한 뇌샤텔 출판사가 프랑스의 서적상들과 주고받은 5만 통의 편지가 남아 있는 것은 신기하기조차 하다. 그러니 이 책이 다루고 있는 2백여 년 전의 금서가 현전하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이 책의 성격을 한마디로 딱 잘라 말하기는 난처한 노릇이다. '책과 혁명'이라는 번역서의 제목은 별다른 정보를 주지 못한다. 그것보다는 번역서의 부제목으로 사용된 원제목이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 책은 "프랑스 혁명 이전의 금지된 베스트셀러"에 관한 책이다. 그래도 이것 역시 너무 포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책의 내용이 워낙 풍부해서다. 저자는 이 책을 "서지사항, 서적의 유포, 서적의 원문을 모두 포함하는 서적 그 자체에 바"치고 있는데 이는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역사학자인 저자는 때로는 꼼꼼한 서지학자로, 때로는 깐깐한 서적 유통 전문가로, 때로는 명민한 문학평론가로 변신을 거듭한다.

"금서는 그 체제의 뿌리를 흔들어 정통성을 허물어갔을지 몰라도, 그것을 쓰러뜨릴 목적에서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금서는 단지 문학시장의 불법적 부분에 대한 수요에 맞추기 위한 것이었다."-본문 161쪽에서

프랑스 혁명 이전의 금서들은 당시 출판업계에서 "철학책"이라 불렸다. 금서의 별칭은 위험을 내포했다는 뜻이지 본래의 철학과는 무관하다. 물론 철학적인 내용이 담긴 '철학책'이 없진 않았다. 저자는 '철학책'들을 철학적 포르노그래피, 철학 개론서, 정치비방문의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계몽사상가 테레즈', '2440년', '뒤바리 백작부인에 관한 일화'를 각 분야의 대표작으로 분석한다. 제4부 철학책 모음에는 이 세 권이 발췌돼 있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그런데 저자는 분석과 해석에서 시종일관 아주 신중한 자세를 취한다. 단언을 해도 괜찮다고 여겨지는 경우에도 섣부른 결론을 내리는 것을 삼간다. 이것이 이 책이 주는 세 번째 놀라움이다. "금서가 구체제를 붕괴시켰는가"라는 책의 핵심 주제에 대해 저자는 전적으로 그렇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 그렇다는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별 흠은 안 된다. "우리의 목적은 금서의 수요와 그 수요를 전달하고 만족시키는 수단을 이해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옥에 티 하나. 책을 조심스럽게 펼쳐 읽는 필자가 한 번 읽은 '책과 혁명'의 책등 안쪽 풀칠이 떨어지고 앞 뒤 표지가 약간 들떴다. 양장 제본이 다소 튼튼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책, 출판, 독서에 관한 알짜 지식이 가득한 이 책은 한 번 읽고 말 그런 책이 아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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