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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의 뮤직톡]코로나19 사태와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김형준의 뮤직톡]코로나19 사태와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 김형준
  • 승인 2020.06.15 1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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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극복 마음 자세

코로나19 사태로 세상 급격하게 변화
사회적 우울 벗어나려면 인식 전환 필요
현재 하는 일과 앞으로 해야 할 일 성찰

석학 말콤 글래드웰(사진)은 코로나19 사태처럼 모든 것이 갑자기 변화하고 전염되는 극적인 순간을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라 정의하고, 급변 구간에 어떤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사회적인 큰 변화를 초래한다고 한다. 티핑 포인트는 대략 4가지 특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예기치 못한 일이 갑자기 발생하여 전염병처럼 빠르게 퍼져나가며, 둘째, 작은 행동, 작은 변화만으로도 커다란 결과를 초래하며, 셋째, 기존의 균형을 깨고 한 순간에 전파되는 극적인 순간을 맞이하며, 넷째, 판매가 저조한 상품이 갑자기 폭발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서 판매란 사회적인 운동이나 세계적인 유행 등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다.

14세기에 수년 동안 유럽을 휩쓴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의 1/3이 사망하였다. 이로 인해 유럽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는데 영주들의 농노 확보 경쟁이 심화되어 파산하는 영주들이 생겨나고, 농노들의 몸값이 치솟아 구매력 향상에 따른 시장경제가 출발하고, 노동력을 대체할 기계산업의 등장으로 1차 산업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다. 또한 기존의 신앙체계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여 고대 그리스, 로마문화에 대해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인문학과 르네상스의 출발점이 된다. 

르네상스 음악 시대에 마르틴 루터(1483-1546)는 1517년 10월 31일 면죄부 판매에 반대하는 95개 논제를 비텐베르크교회 정문에 내걸어 종교개혁을 출범시켰으며, 티핑 포인트의 대표 사례로 손꼽힌다. 그는 예배 형식에 있어 음악의 위상을 크게 높였다. 음악은 하나님 말씀 다음으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고 인간 감정의 주인이자 지배자로 묘사하였다. 음악이 슬픈 자에게 평안을, 경솔한 자에게 자제를, 절망한 자에게 용기를, 교만한 자에게 겸손을, 흥분한 자에게 차분함을, 미움이 가득한 자에게 부드러운 마음을 가져다준다고 하였다. 예배시간에 자주 불리는 찬송 “내 주는 강한 성이요”는 루터가 시편 46편 1절의 말씀에 곡을 붙인 것으로 음악적으로 형식이 잘 갖추어져 있다. 

루터는 당시 한정된 사람들만 부르던 성가를 일반인들도 부르도록 만들었다. 그 당시 미사 때 회중들은 가만히 듣고만 있고 성가대원들만 영광송(Doxology)을 번갈아 불렀지만 그는 일반 회중도 찬송을 부를 수 있게 예배 형식을 개혁하였다. 많은 찬양 곡을 작사, 작곡하였으며 ‘코랄’이라는 장르로 자리매김한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가 작고 노래를 잘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플루트와 류트를 능숙하게 연주하고 작곡하는 음악가였다. 

최근 들어 코로나 바이러스가 다시 확산되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방법 외에 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 이러한 사태가 상당 기간 지속된다고 볼 때 어떠한 마음 자세를 가지고 일상생활을 해야 할까. 사회적 우울 증세에서 벗어나려면 인식의 전환이 우선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면 변화된 물결에 올라타야 한다. 지금까지 해보고 싶었지만 미루어 오던 일들을 시작해 보자. 비록 작더라도 뜻이 있는 소중한 일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면 지지자들이 생기고 티핑 포인트를 만들어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 

티핑 포인트의 사례로 뉴욕 지하철의 범죄율을 낮춘 것인데 단지 무임승차를 단속하고 낙서를 지우는 활동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오늘날 미국 흑인들의 인권이 크게 신장된 것은 가냘픈 흑인여성 로자 파크스(1913-2005)가 자신의 신념을 지킨 것으로부터 출발되었다.

그녀는 1955년 12월 1일 백화점 일과 후 버스를 타고 유색인 칸 표시 좌석에 앉았다. 앞에서부터 4줄까지는 백인들만 앉는다. 몇 정거장 지나 백인들이 여럿 타고 그중 2~3명이 서게 되자 버스 기사가 유색인 칸 표지판을 뒤로 밀고 흑인 4명에게 일어나라고 하였다. 이들은 유색인 칸에 앉았지만 어쩔 수 없이 3명은 일어나고 로자는 일어나지 않았다. 기사가 독촉 하자 “일어날 이유가 없다”고 거절하였다. 경찰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지만 유색인 칸에 앉은 것이 입증되어 풀려난다. 그날 로자는 친구와 함께 유인물을 제작하고 몽고메리버스 보이콧운동을 시작하여 382일간 지속된다. 로자가 보이콧 운동을 시작하자 사흘 후(12월 4일) 흑인교회들이 동참하고 다음 날 마르틴 루터 킹 목사가 참여한다. 당시 그는 알려지지 않은 젊은이였으나 흑인인권단체가 몽고메리진보협회 초대회장으로 초청하여 그가 수락한 것이며 흑인 인권운동의 시초가 된다.

로자는 백화점 직장을 잃고 재봉 일을 하면서 각지를 돌며 연설을 하였으며 나중에 흑인 하원의원의 비서 일을 맡게 된다. 그녀는 현재 캐피톨 힐에 31번째로 안장되어 있으며 여성으로는 첫 번째, 흑인으로서는 두 번째인 영예를 안게 된다. 그녀는 불의에 굴하지 않고 단지 의자에 계속 앉아 있기만 하였는데 티핑 포인트가 되어 사회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주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의료인을 위시하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지만 소중한 뜻있는 일들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것이 쌓여 우리 사회를 크게 변화시킬 동력이 되리라 믿는다. 코로나 19사태를 계기로 우리들이 현재 하는 일과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성찰해 본다면 현재의 어려움이 기회로 반전되리라 확신한다.

김형준 경영&뮤직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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