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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낡은 시대에 머무는 것들
학이사: 낡은 시대에 머무는 것들
  • 윤명민 한양대
  • 승인 2004.01.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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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민 한양대  정보사회학

언젠가 전공수업 시간에 자신의 사이보그 지수를 계산해보라는 숙제를 낸 적이 있다. 40%라는 학생부터 95%라는 학생까지 있었다. 그들의 인식에 의하면 우리는 모두 사이보그인 셈이다.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인공적 기구나 환경에 의존하는 비율이 급증하고 있다. 인터넷이 만들어낸 사이버공간은 물론이고 현실공간에서도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 에어컨과 강제환기에 의존하는 사무실, 백화점, 아파트, 그리고 이동전화를 이용한 통신 등 24시간 365일 내내 우리는 기술적 환경을 떠나지 못한다.

사이보그 시대에 우리의 성찰과 학문적 활동은 인간과 기술, 혹은 자연과 인공의 전통적 구분을 뛰어넘어야 한다. 자연회귀도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겠지만 대다수의 도시인들에게는 비현실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학교경영진은 그러한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거나 인식한다고 하더라도 대학이 무엇을 해야 할 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시대적 변화가 대학의 파격적인 리모델링을 요구하고 있건만 변신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교수들도 학교경영진보다 낫지 않다. 그들은 학문 간의 전통적인 울타리를 지키는데 있어 학교경영진보다 왕왕 더 보수적이다. 대학도 학문도 시대의 산물이건만 그들은 거기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려 한다. 학생들이라고 진취적인 것은 아니다. 그들은 대부분 고등학교 때부터 익숙해진 문과와 이과의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한다. 몇 년 전 필자가 기술공학 과목들을 개설하자 몇몇 학생들은 사회학과에 웬 공대과목이냐고 거세게 반발했다.

대학은 인문/사회 과학과 기술공학의 결합에 대한 시대적 요청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
첫째, 인문/사회 과학은 이제 기술공학적인 지식의 배경 없이 학문의 완결성을 추구할 수 없다. 인간의 인식과 존재가 기술공학의 기반 위에서 이뤄지는 세상에서 철학, 문학, 사회비평, 예술비평 등 어느 인문학적 활동이 기술공학적 지식 없이 가능하겠는가.

둘째, 이미 기술공학은 사회과학적 지식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정보시스템은 점차 인간의 활동을 제어하고 대체한다. 그러한 정보시스템을 개발하는 소프트웨어 공학에는, 도메인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행정학?경영학?사회학 등 각 가지 사회과학적 지식이 총동원된다. 기술과 인간 사이를 매개하는 인터페이스의 개발도 심리학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셋째, 한 걸음 더나가 이미 사회과학과 기술공학의 합체가 진행되고 있다. 공학은 과학적 지식을 응용해 특정 목표의 성취를 지향하는 학문이다. 문과에서도 공학적 성격이 강한 영역에서는 이미 경영정보학?행정정보학?교육공학과 같은 혼종의 사회공학이 등장했다. 앞으로 사회문제 해결에는 사회과학과 기술공학의 양자선택 대신 그것들의 적절한 혼합이 추구될 것이다. 

실천적 세계에서는 종합적 사고와 문제해결 능력을 지닌 전문가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데 학문적 세계는 구시대적 구분에 안주하고 있다. 대학과 대학인의 각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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