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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역사를 흔들다
전염병, 역사를 흔들다
  • 교수신문
  • 승인 2020.06.1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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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역사를 흔들다
전염병 역사를 흔들다

 

 

마크 해리슨 지음 | 이영석 옮김 | 푸른역사

이 책은 12년 연구의 결실이다. 700년에 걸쳐 6개 대륙에서 벌어진 전염병과의 투쟁을 꼼꼼하게 살폈다. 자연스레 언급되는 전염병들은 다양하다. 14세기 페스트에서 콜레라, 황열병, 가축 질병인 우역은 물론 광우병 소동과 조류독감 등 동물 전염병과 21세기의 사스와 메르스까지 다뤘다. 당연히 1865년 메카를 습격한 콜레라, 1910년 만주를 강타한 페스트 등 굵직한 전염병 파동을 빠뜨리지 않는다. 이를 위해 지은이는 관련 학자들의 선행연구는 물론 다양한 세미나와 학술대회의 도움을 받았다. 인도 등 여러 나라의 기록을 살핀 것은 물론이다. 그 결과, 특정 국가의 차단 방역처럼 한 나라의 전염병 투쟁사가 아니라 상당한 지리적 범위에 걸친 장기간의 상호작용을 추적한 ‘세계사’로 결실을 맺었다. 이 책의 기본적인 미덕이다.

‘역사의 전제자’ 무역에 초점을 두다
1860년대 영국 의사 윌리엄 버드는 역사의 ‘전제자’로 전쟁과 무역을 꼽았다. 이 둘이 역병을 낳고 그 전염병의 여파가 역사의 흐름을 바꾼다는 경고였다. 지은이 마크 해리슨은 바로 이 대목에 주목했다. 풍토병이 세계사적 문제로 등장하게 된 배경에 있는 무역의 역할, 그리고 세계적 유행병이 지구촌을 어떻게 바꿨는지를 파고들었다. 예를 들어 19세기 중반 온 유럽이 공포에 젖게 만든 콜레라나 아메리카 대륙을 뒤흔든 황열병의 확산 뒤에는 노예무역을 비롯한 국제교역과 노동 이주, 성지순례 등이 있었음을 지적해낸다. 뿐만 아니라 국민 건강과 자유무역의 상충에 대한 고심 등을 짚는다. 그런 점에서 전염병의 역사를 ‘의학사’로 한정하거나 전염병과 굵직한 역사적 사건의 인과관계를 성찰한 기존 전염병 관련 역사책과 남다르다.

‘격리’를 축으로 한 전염병과의 투쟁사
인도 벵골 지방의 풍토병 콜레라, 아프리카 풍토병 황열병이 세계적 유행병으로 확산된 데에는 증기선과 철도로 상징되는 교통혁명이 크게 작용했다. 그리고 전염병의 원인이 밝혀지기 전까지 전염병 억제를 위한 노력에서는 ‘격리’가 축을 이루었다. 감염이 의심되는 상인과 상품의 이동의 금지는 일찍이 14세기 이탈리아에서 발령된 피스토야 칙령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655년 암스테르담에 세워진 북유럽 최초의 상설 격리병원, 1845년 노예무역을 감시하다 황열병에 감염돼 선원의 3분의 2가 사망한 ‘에클레어호 사건’ 등 ‘격리’의 역사를 중심으로 전염병 투쟁사를 살핀다. 이 책을 돋보이게 하는 관점이다.

전염병이 이끌어낸 국제공조에 주목하다
전염병이 세계화에 부정적 효과만 끼친 게 아니다. 교통혁명과 산업화로 한 나라 단독으로는 전염병 대처가 불가능해짐에 따라 확산을 막기 위한 새로운 국제 협력 시스템을 끌어내기도 했다. 1851년 처음으로 파리에서 국제위생회의가 열렸다. 3차 콜레라 대유행기에 새로운 국제주의가 시작된 것이다. 이후 1902년 황열병 대처를 위한 범미위생회의 등을 거쳐 1907년 전염병 정보 수합 및 통지 업무를 담당할 상설기구 ‘국제공중보건국’이 파리에 설립되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전신이다. 지은이는 수에즈운하 통제 등 이해관계가 다른 각국의 갈등, 당대의 패권국 영국 대신 프랑스가 이를 주도한 사정 등 21세기 ‘국제 전염병 전선’의 배경을 찬찬히 풀어놓는다.

코로나 사태에 대한 각국의 대응을 보면 19세기 후반으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국제 협조의 정신은 사라지고 세계보건기구의 역할은 미미하다. 각국은 저마다 국경 폐쇄, 무역 중단 등 오직 ‘격리’를 통한 방역에만 몰두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이를 잘 보여준다. 새로운 전염병이 간헐적으로 출현하는 지금은 국제 공조를 바탕으로 새로운 방역 방식과 제도를 창출해야 한다. 전염병과 무역의 길항관계를 파헤친 이 책은 이를 위한 출발점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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