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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문 요약 : 속악원보 일제 때 왜곡
발제문 요약 : 속악원보 일제 때 왜곡
  • 남상숙 원광대
  • 승인 2004.0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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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있는 합주음악은 변할 수 없어"

‘속악원보’는 종묘제례악의 변화된 모습을 처음 보여주는 악보며, 1음1박으로 된 모든 궁중음악의 변화근거를 보여주는 중요한 악보다. 그런데 官撰樂譜면서 기존의 것들과는 달리 구성체제/기보방식/편찬연대표시 등에서 모두 특이한 면을 나타낸다. 편찬체제와 수록곡을 분석한 결과 이 악보가 지닌 고유의 특성은 편찬 목적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걸로 판명됐다.

‘속악원보’는 인/의/예/지/신 5책으로 나눠, 지편까지 각 편마다 다른 곡이 수록돼 있다. 마지막 신편에는 앞에 수록된 곡이 선율은 변함없으나 각각의 음길이가 모두 균등시가의 음악으로 변해 반복 수록돼 있다. 국악계에서는 이 신편악보에 근거해 “한국의 궁중음악은 중국의 아악처럼 1음1박의 음악으로 변해왔다”고 설명한다. 불균등 시가의 음악이 균등 시가로 변했다는 것이다. 변화 전후의 가장 큰 차이는 장단이 없어지게 된 점이다. 한국음악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장단임을 안다면, 1음1박화는 생명을 잃은 것과 다름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엉뚱한 장고점 삽입해 의도적으로 왜곡

세조9년(1463)에 정비된 정대업, 보태평은 선율, 시가, 장단이 변함없이 ‘대악후보’(1759년)까지 지속된다. 궁중에서 음악연주가 오랫동안 중단됐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도 ‘세조실록악보’의 정대업, 보태평은 그대로 이어졌다. 정조10년(1786)에 정대업의 소무, 분웅, 영관 세 곡의 가사만 바꿔 만든 ‘무안왕묘제악’ 악보가 ‘속악원보’ 의편에 수록돼있는데 ‘세조실록악보’의 것과 일치한다. 1786년까지 정대업, 보태평에 전혀 변화가 없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다.

현행 종묘제례악으로 사용되는 보태평 11곡과 정대업 11곡이 ‘속악원보’에서 어떻게 변화되는가 그 과정을 살펴보자. 전란을 겪고도 3백년 넘게 지속됐던 정대업, 보태평이 ‘속악원보’ 인편에서 처음 변한다. 이상한 건 정대업 11곡은 그대로며, 보태평의 곡들만 변하는데 그것도 본래 박을 네 번 치는 음악은 변화가 없고 6拍/8拍/12拍 등 4박 아닌 것만 4박으로 변하면서 시가가 변하고 장단이 무너진다는 점이다. 시가의 변화도 본래 짧은 음은 길어지고 긴 음은 짧게 변한다. 음악의 단락을 짓는 박은 가사단락과 무관하게 가사 중간에 오게 돼 제례악에서 가장 중요한 가사의 의미를 잃게 된다. 음악적으로 맞지 않은 이런 박의 위치는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이왕직아악부악보’의 박의 위치와 정확히 일치한다. ‘속악원보’의 편찬자는 광서18년이라는 편찬연도를 다섯 번이나 기록해 일제강점기에 편찬된 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관찬악보에 편찬연도를 밝힌 건 ‘속악원보’가 유일한 예다.

‘속악원보’ 知篇은 모두 4/2/4 정간보를 사용했다. 이전의 정간보들은 3/2/3 구조였다. 陽과 陰을 나타내는 3과 2로 구성된 3/2/3 정간보 구조원리는 훈민정음과 같이 자연의 원리에 상응하는 것이다. 4/2/4 정간보를 사용한 지편에서의 장고장단 변화는 의도적인 왜곡임을 잘 보여주는 예다. 본래의 장고점 사이사이에 엉뚱한 장고점을 마구 삽입했다. 그 결과 본래의 장단은 사라지고 궁중 밖의 음악에 많이 사용되던 간단한 장단으로 대체됐다. 

학계에선 4/2/4 정간보에 대한 구구한 해석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음양논리나 그 외 어떤 이유로도 이 악보를 의심한 적이 없다. 1759년에 편찬된 ‘대악후보’ 권6에 수록된 영산회상 악보가 ‘속악원보’ 지편과 같은 4/2/4 정간보기 때문이다. ‘대악후보’의 전체 수록곡 54곡 중 영산회상 단 한 곡만이 4/2/4 정간보에 기록돼 있다. 그런데 이번에 현존 ‘대악후보’의 영산회상은 본래 것을 없애고 후대에 끼워 넣은 악보임이 새롭게 밝혀졌다. 즉 4/2/4 정간보는 없었다는 걸 증명한다.

1음1박 변화, 자연스럽지 않다

‘속악원보’ 지편의 4/2/4 정간 악보의 근거를 남기기 위해 ‘대악후보’에 4/2/4 정간보의 영산회상을 후대에 끼워 넣은 것이다. 결국 ‘속악원보’의 편찬은 우리음악의 1음1박화를 정당한 변화로 위장해 우리 고유의 음악을 영원히 사라지게 하기 위한 작업이었고, 그런 작업의 철저한 위장을 위해 ‘대악후보’의 영산회상을 탄생시킨 것이다. ‘속악원보’ 신편 악보에 의거해 종묘제례악을 비롯한 한국의 궁중음악이 1음1박 음악으로 변했다는 주장은 불가하다. 근본적으로 악보가 있는 합주음악은 의도적인 변화가 아니고는 변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상숙 / 원광대 한국음악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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