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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리뷰: 『현상학과의 대화』양해림 지음|서광사 刊| 380쪽
주간리뷰: 『현상학과의 대화』양해림 지음|서광사 刊| 380쪽
  • 류의근 신라대
  • 승인 2003.12.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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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호에 묶인 삶의 구체성

이 책은 1부와 2부로 구성된다. 1부는 후설 현상학의 핵심정신을 평이하게 개요하며 후반부에는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계를 논하는데, 이 부분이 특히 유익하게 여겨진다. 2부의 1장과 2장은 현상학을 문학작품, 몸, 영화, 성, 환경, 생명, 과학, 인공지능에 광범하게 적용해보는 응용 현상학을 다각적으로 소개, 논의한다.

3장은 갈등하는 세계의 현실과 남북통일의 현실에 대해 저자 나름의 현상학적 접근의 논리를 적용해, 세계 평화와 남북통일을 위한 하나의 실험적인 현상학을 제출하고 있다. 이 대목은 이 책이 가지는 훌륭한 자극 중 하나다. 

이 책에 나오는 현상학과 대화하는 철학자를 거명하면, 리오타르, 잉가르덴, 메를로-퐁티, 라깡, 요나스, 드레퓌스, 레비나스, 하버마스 등 쟁쟁한 인물들로, 모두 현상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다양한 편차를 보이는 철학자를 상대로, 현상학과의 대화 방식을 그리다보니, 현상학의 실제적 효용성을 다채롭게 예시하는 이점은 있으되, 현상학의 원래 근성(mentality)이 사회적으로 내면화되는 인간 삶의 실제적 현장을 그려내지 못하는 약점을 지닌다.

"냉전 이데올로기에 얼룩진 북한사회에 대해서는 현상학적으로 판단을 중지하고, 북한에 대한 객관적 시각 및 생활세계적 공통감각을 형성해야 한다."-본문 332쪽에서

말하자면 이 책은 인간의 현실적 삶의 문제들을 시종일관 현상학적 정신으로 철두철미하게 읽어내는 면이 미흡하다. 그래서 1부에 소개했던 후설 현상학의 근본정신과 체험이 어떻게 현실에 관철되는가를 이해하고자 하는 면에서는 일반 독자에게 부족한 감을 준다.

‘현상학과의 대화’에서 현상학의 정신이 실종된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응용 현상학의 원래 의도가 현상학을 다양한 방향으로 현실에 응용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일 수 있다. 그래서 비판적 지적은 이 책에 대한 하나의 기대일 뿐, 그 이상은 아니다. 오히려 저자가 현실과 괴리된 철학(현상학)의 곤경을 조금이라도 덜어 보려는 의도에서 이 책을 내놓았다는 걸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한국 현상학의 비판적인 현실 적응력을 고양하는 또 하나의 공헌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에게는, 현상학의 정신이 사회생활의 연관 속에서 육화됐던 모습을 좀더 구체적으로 드러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여전히 남는다. 응용 현상학을 주제로 다루다보니 실증적 사실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실증적 사실의 근본 의미와 근원 체험적 구조를 밝히는 것을 소홀히 하게 됐다.

또한 요나스의 원서명이 ‘책임의 원칙’으로, ‘책임의 원리’로 번역돼 통일을 기하지 못한 점과 주요 용어의 오자, 탈자도 여러 군데 눈에 띈다. 또한 메를로-퐁티의 ‘세계-로의-존재’, ‘세계에로의 현전’은 여러 역어가 있지만 ‘세계-에로-존재’, ‘세계-에로-현전’으로 번역되었으면 한다.

류의근/ 신라대, 서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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