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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숙의 숨겨진 그림 이야기] 새로운 인생을 꿈꾸며
[박희숙의 숨겨진 그림 이야기] 새로운 인생을 꿈꾸며
  • 박희숙
  • 승인 2020.06.08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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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1910년, 캔버스에 유채, 204*298,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
'꿈'-1910년, 캔버스에 유채, 204*298,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

기대 수명이 늘었다. 기대 수명이 늘었다는 것은 축복인지 재앙인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삶의 시간이 생각보다 많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은 많지만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인생에서 시간이 많은 시기가 도래했을 때 전문가들이 인생의 2막, 즉 새로운 인생을 설계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2막 인생을 설계하기란 쉽지 않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생산적인 일도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2막 인생을 화가로서의 삶을 꿈꾸었고 성공을 한 화가가 앙리 루소다. 하지만 그가 화가가 되고 싶어 했던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다. 

앙리 루소<1844~1910>는 투기로 모든 재산을 탕진한 아버지 때문에 학교를 졸업하지 못한다. 루소는 어린 나이에 여러 가지 일을 하며 보내다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가장이 된다. 

가장이 된 루소는 파리 시의 말단 세관원으로 일을 한다. 박봉에 가족들을 부양하면서 루소가 꿈꾸었던 것은 부자였다. 그러던 중 루소가 파리에서 살던 시절 이웃에 살던 화가 클레망가 살롱전에 입상하면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클레망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루소는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화가로서의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루소는 어린 시절 그림에 관심이 있었지만 형편이 어려워 그림 공부를 하지 못했다. 

정식 아카데미에서 그림을 배울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루소는 클레망의 도움으로 루브르 박물관과 베르사유 궁, 주립 미술관 등 작품을 베껴 그릴 수 있는 허가증 얻어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했다. 또한 가난한 살림은 그에게 전업화가의 길을 열어주지는 못했다. 

루소는 세관원으로 충실하게 일하면서 화가로 성공을 꿈을 꾸었고 그것을 실현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1893년에 은퇴할 때까지 22년 동안 직장 상사의 배려 덕분에 주변의 단조로운 풍경을 그릴 수 있었으며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이 본 가로등, 나무, 건물, 강의 모습을 포착해 그것을 집에서 완성했다. 

루소는 화가로 성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앙당팡단전에 출품한다. 화단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처음에는 조롱거리가 되었다. 원근법을 무시한 것이 그림의 기초가 없어서라는 이유였다. 

비평가들에게 수없는 조롱 속에서 루소의 진면목을 발견한 사람이 피카소다. 피카소가 그의 작품을 구매함으로써 비평가들과 지식인들은 그를 주목하기 시작한다. 루소의 자연을 소재로 한 정글 작품들은 비평가들의 호평으로 이어졌고 곧 미술계와 학자들, 후원자들에게 주목을 받는다. 특히 피카소가 루소를 파티에 초대하면서 그에 대한 평가는 달라진다. 

루소의 정글 그림 대표작이 <꿈>이다. 

여인은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정글을 향해 손을 뻗고 있다. 정글 속에는 사자, 원숭이, 새가 정글 숲속에 숨어 있다.  

루소는 이 작품에서 50가지의 녹색을 사용해 오크, 등나무, 유칼립투스, 라일락, 바나나 나무, 산세비에리아, 양치류, 야자수, 선인장, 용설란을 다양하게 연출했다. 식물들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했지만 사실 그의 상상력에서 나온 식물들이다. 그가 상상으로 식물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식물원을 다닐 시간이 없어서 동네 화단을 보고 그렸기 때문이다. 그는 정글처럼 보이기 위해 식물도감에 없는 식물을 만들었다. 또한 이 작품에 등장하고 있는 동물도 마찬가지로 루소가 자신의 상상력으로 임의대로 묘사했다. 

화면구성이 복잡하지만 어느 것 하나 두드러진 것이 없이 서로 어울려 있다. 이 작품에서 초록빛 향연이 펼쳐지고 있는 낙원 같은 정글의 아름다움과 나무 사이사이마다 숨어 있는 깊은 어둠은 정글의 또 다른 얼굴인 잔인함을 표현했다. 

루소의 이 작품은 실내와 야외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데 여인이 누워있는 모습은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정글의 야생과 대비되어 여인의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원근법을 무시한 루소만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정글 그림은 루소가 한 번도 정글에 갔다 온 적이 없이 상상으로만 제작된 것으로 그가 정글에 갈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비행깃값이 없어서다. 

하지만 루소가 평생 원했던 부와 명성을 화가로서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은 수없는 좌절 속에서도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고 해도 루소처럼 당대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천재성을 믿어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지만 당대에 성공하지 못하고 후대가 알아준 화가가 고갱이다. 

폴 고갱<1848~1903>은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1919년>의 모티브가 된 화가다. 고갱은 성공한 주식 중개인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다가 화가가 된 것은 1882 프랑스 주식 시장의 붕괴가 원인이다. 중개인으로 부를 축적한 고갱은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수집하면서 취미로 조금씩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의 그림은 아마추어의 수준을 넘어 본격적인 화가로 대접받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주식시장의 붕괴로 인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고갱은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을 믿고 화가의 삶을 선택한다. 고갱의 결정에는 화가로서의 자신의 천재성이 빠른 성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감과 그리고 주식 시장에서의 성공에 따른 행운을 믿은 것이다. 이제까지의 삶이 성공적이었던 것처럼 앞으로 화가로서 성공을 해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갱은 시대 상황을 잘못 판단했다. 주식 시장이 붕괴되면 모든 사람들이 타격을 입지만 특히 미술 시장도 붕괴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고갱은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국 예술가의 길을 선택한다. 그의 선택으로 인해 그 이후 가족을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 두 사람은 1894년 돈 때문에 싸울 때까지 친구 관계를 유지한다. 

가난하지만 직장과 가정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고갱은 지상의 낙원이라고 생각한 남태평양 타이티로 떠난다. 그가 타이티를 선택한 것은 피에르 로티가 쓴 <로티의 결혼>때문이었다. 피에르 로티는 열대 천국을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상적인 장소로 묘사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타이티는 고갱이 생각했던 낙원은 아니었지만 아직도 원시성을 가지고 있었다. 타이티 문화에 대해 깊이 있게 알고 싶었지만 타이티의 생활은 아무런 수입이 없었다. 프랑스에서 온 관료들은 무명의 화가의 그림을 사지 않았고 원주민들은 그림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고갱은 아무런 수입이 없어 타이티에서 고통 받고 불행하고 절망적이었다. 

고갱은 자신의 재능이 그대로 녹아 있는 타이티를 소재로 한 그림들이 팔릴 것으로 생각해 프랑스로 돌아온다. 화려한 귀향을 꿈꾸었지만 파리에서 고갱의 작품 세계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인상주의가 대세인 시대에 원색으로 그려진 그의 작품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그를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결국 고갱은 파리에서 희망을 버리고 상처투성인 채로 마지막 종착지 타이티로 돌아온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1897년, 캔버스에 유채, 139*357, 보스턴 미술관 소장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1897년, 캔버스에 유채, 139*357, 보스턴 미술관 소장

고갱은 타이트로 돌아와 인생이 마지막으로 생각해 제작한 작품이 <우리는 어디서 와서 우리는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다.  

이 작품은 고갱이 그린 작품 중에 가장 큰 대작으로서 세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 특징으로 그가 천국처럼 생각했던 남태평양의 타이티에서 사랑했던 가족들, 자존심, 예술에 대한 동경과 확신을 상실한 채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로 마음을 먹고 제작했다. 

첫 번째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에 해당되는 주제가 화면 오른쪽 아래 잠든 아이와 젊은 여자 세 명이 모여 앉아 있는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 뒤로 주홍색의 옷을 입은 인물들은 운명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원근법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가운데 쪼그려 앉아 있는 여인은 운명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인물들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무엇인가?’ 두 번째 주제가 화면 중앙에 과일을 따고 있는 인물이다. 이 작품에서 과일을 따고 있는 남자는 살면서 더 많은 것을 원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상징한다. 화면 왼쪽 양 팔을 들고 서 있는 신상은 다가올 세상을 암시하고 있으며 신상은 과일을 먹고 있는 어린아이를 바라보고 있다. 

마지막 주제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는 화면 왼쪽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노파다. 노파는 죽음을 앞에 두고 생각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다. 노파의 발밑에는 도마뱀을 타고 앉아 있는 흰 새가 있다. 이 작품에서 흰 새는 의미 없는 언어의 공허함을 상징한다. 

이 작품의 배경은 고갱이 열대 낙원 이러고 생각했던 타이티 섬이다. 한 달 동안 제작한 이 작품은 인간의 운명과 다양한 행로를 상징하고 있다. 

고갱은 이 작품이 완성한 후 자살을 시도하지만 그것마저 실패로 끝난다. 루소는 그의 천재성을 눈여겨 본 피카소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생은 혼자 이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혼자 할 수 있을 것만 같아도 누군가가 자신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루저가 될 뿐이다. 

박희숙 화가, 전 강릉대 교수.
박희숙 화가, 전 강릉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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