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13:10 (수)
21c 한국사회를 위한 학술아젠다
21c 한국사회를 위한 학술아젠다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3.12.2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육평준화 공과 점검, 정치권 부패척결 제도화 주목

새정권 출범에 따른 개혁 기대는 다소 주춤해졌다. 오히려 그동안 누적돼 있던 문제들이 수면위로 떠 올라 혼탁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에 우리신문은 학계의 중진인사를 중심으로 2004년 한국사회가 가장 시급하게 풀어야할 문제점은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서 학계는 어떤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지 설문조사를 마련했다. 사회적 현안에 대한 학술적 과제를 선정하기 위해서다. 이 조사를 기본으로, 학계 내부에서 정립돼야 할 아젠다를 10회에 걸쳐 진행할 예정이다. 주요학회의 임원진, 교수/학술단체대표, 계간지 운영위원 및 활발한 학술활동을 펼치고 있는 소장학자 45명이 선정위원으로 참여했다.

*학계가 정한 10대 학술아젠다

2004년 한해동안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학계 주요인사 43명의 선정한 최우선 과제는 ‘공교육의 정상화’(25표, 이하 복수응답)와 ‘정치개혁 및 부패 척결’(24표)이었다. 이 두 과제는 우선순위를 두기 어려울 만큼 경합을 벌인 셈. 그 뒤로 ‘사회통합적 노사관계확립’(16표), ‘빈부격차 해소 및 빈곤퇴치’(14표), ‘환경문제 해결 및 대체에너지 개발’, ‘인문학/이공계 등 기초학문 확립’(각각 11표), ‘외국인노동자 억압 등의 인권 문제 해결’, ‘노령화 사회에 대비한 복지시설 확충’(각각 10표),  ‘평화?생명 가치의 확산’(9표), ‘지역 분권 및 지방 자치’(8표) 등이 꼽혔다. 이외에도 한국사회의 성격 규명,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론의 성격과 전망,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국가과학기술발전 방향의 확립, 기업문화 변화, 문화교육 운동의 구체적인 대안 도출 등이 해결과제로 지적됐다. 다사다난했던 지난 한해를 반증이라고 하듯이, 현안이라고 일컬어지는 거의 모든 문제가 논의대상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아젠다 1  공교육의 정상화 -교육평준화의 공과 점검, 교육공공성 실현
교육 문제는 그 심각성에 비해, 해결 논의는 뒷전으로 물러서 있기 일쑤였다. 여기엔 당장에 큰일이야 나겠냐는 안이한 태도가 작용해왔다. 그러나 올해는 공교육의 정상화가 다른 현안을 제치고 가장 먼저 해결해야할 과제로 꼽혔다. 지난 한해 이른바 ‘수능 사태’와 ‘NEIS 논란’ 등 누적돼 있던 문제점들이 터져 나온 것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공교육 정상화에 대한  학계의 진단은 초중등 교육과 대학교육 가릴 것 없이 두루 제기됐다. 중등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교육 개혁, 특목고 및 사립고 신설 여부 문제 해결(임현진 교수), 사립대학의 사유화 방지와 공익성 보장을 위한 사립학교법 개정 논의(손승영 교수), 국립대학 통합네트워크 논의 필요성(정진상 교수) 등 당면한 사안들의 조속한 해결 촉구가 그렇다. 보다 근원적인 문제제기로는 교육평준화에 대한 재고를 들 수 있다. 교육평준화를 시작한 지 30년이 지난 지금, 다시금 공과를 매기고 경쟁력 있는 교육제도를 만들자는 것이다. 덧붙여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재고 및 대학별 고사 부활 논의 등 기존의 입시 제도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터져 나왔다. “국가의 성격과 발전방향의 규정 아래서 공교육의 위상을 정립하고, 한국교육체제의 장기적인 플랜 설립이 필요하다”라는 문유찬 교수의 지적처럼, 공교육 정상화  과제는 체제개편을 통한 대수술을 겪더라도 개혁이 시급하다는 것이 학계의 공통된 지적이었다. 한편 강내희 교수는 ‘교육공공성의 실현’이라는 주제로 논의거리를 던졌다. 신자유의적 교육정책과 공교육과 기초학문 붕괴현상의 관계를 분석하고, 이 결과를 토대로 “대학개혁의 방향을 시장중심주의가 아닌 대학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는 공공주의를 실현”으로 이끌어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젠다 2: 정치개혁 및 부패척결- 정치개혁의 주체와 방향성 논의
‘공교육의 정상화’와 각축을 벌이던 정치개혁은 미세한 차이로 2위를 차지했다. 다만 정치개혁에 대한 분분한 의견 속에 구심적으로 작용한 것은 부패척결의 요구였다. 이는 불법 대선자금 모금 비리의 파장으로도 해석된다. 조국 교수는 “정치개혁법안의 통과, 정당 및 기업의 공개적 사과 및 반부패 선언”을, 최협 교수는 “선거법 위반사범의 신속한 처리, 정치인과 고위공직자의 부패를 다룰 전담 기구 설치” 등을 제안했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단절하기 위해서는 부패 범죄에 대한 엄격한 법집행 등의 제도개혁이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한발 더 나아가 정치문화 개선방향을 지적하는 견해도 있었다. 김영한 교수가 제시한 “기존의 고비용 정치구조 개선 및 돈 안 드는 정치 구조 형성 방안 논의”와 곽병선 교수가 제시한 “시민의 힘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정치개혁과 반부패운동방안 모색” 등이 그 예다. 정치개혁의 주체와 방향성 논의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은, 정치개혁의 주체가 시민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해 주고 있다.

아젠다 3: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확립 - 노동의 인간화, 지속발전 가능한 경제구조의 재편
경제분야에서는 ‘사회통합적 노사관계확립’이 가장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박병섭 교수는 “기존의 효율성은 노동통제와 노동강도를 높여 이뤄졌으나 앞으로는 노동의 인간화 통한 노동의 효율성 제고 쪽으로 논의를 해야한다”라고 지적했는데, 이는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과 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동시에 도모할 수 있는 한국형 노동구조의 혁신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확립은 근본적으로는 지속발전 가능한 경제 구조로의 재편 논의로 이어진다. 경제구조의 재편 방향 역시 논의해야할 부분이다. 반면에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확립에 대한 의견은 상당히 엇갈리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정진상 교수는 “산별노조체제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통한 산업민주주의 구축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라고 다소 급진적인 과제를 제기하는 반면, “사회위기의 근본원인은 근로정신의 쇠퇴에 따른 개인의 책임감 소멸에서 발생하고 있다”라는 의견도 개진됐다. 윤리의식과 준법정신 붕괴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규명과 사회적 합의 도출이 오히려 학계가 풀어야할 과제라는 지적이다.

 아젠다 4: 빈부격차 해소 및 빈곤퇴치 - 복지 전달체계 강화 및 효율화 방안 논의
지식기반사회/정보화사회 등 유연한 사회축적 체계로의 전환은 또 다른 문제를 불러왔다. 계층간의 소득격차와 상대적 빈곤감 등 새로운 빈곤문제의 대두다. 경제활동인구의 15.5%에 해당하는 360만명이 신용불량자가 (2003년 10월 기준) 됐다는 사실은, 경제문제의 어두운 단면 중 일부일 뿐이다. 사실상 빈곤문제 해결에 있어서는 사회복지 지출의 증대와 공적 부조제도 강화 등의 제도적인 차원의 보안을 논의할 수밖에 없다. 복지국가로서의 성격 강화가 대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신정완 교수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갈 것을 요구했다. “제도적인 차원의 보안뿐만 아니라, 복지 전달체계 강화 및 효율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것. 국가 부의 고른 분배를 위해 복지제도의 효율화 방안이 무엇보다도 절실하지만, 여기에 대한 학계의 아이디어는 빈약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일자리 창출’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2003년 10월 기준으로 청년실업률은 7.3%. 전체 실업률의 두배 이상을 기록하고 있는 수치다. 청년 실업문제 해결을 위해 강내희 교수는 “신자유주의로 무너진 사회적 공공성 회복을 위해 공역의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라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아젠다 5 환경 문제 해결 및 대체 에너지 개발- 환경정의론 정립
환경문제는 급속도로 현안으로 등장한 이슈 중 하나다. 최근 각종 국책사업에서 경제논리와 환경논리가 첨예하게 대립되면서 분쟁이 심화돼 왔는데, 새만금 사업, 경부고속철도 천성산?금정산 구간, 경인운하,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북한산 관통 터널 등이 첨예한 대립을 낳았던 사안들. 지금까지는 국가기반확충을 위해 국책사업은 경제논리에 따라 타당성이 인정될 경우 큰 무리없이 진행돼 왔지만, 환경파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이를 직접적인 환경권리로 인식하게 됨에 따라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는 환경갈등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갈등에 대해 학계는 환경논리의 편을 들어주고 있다. 최병두 교수는 ‘환경정의론’ 정립을 과제로 제시했다. “환경을 무시한 신개발주의에 반대해 지역주민들의 환경권을 우선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환경정의론이 정립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신항식 교수 또한 “보이지 않는 사회기반 시설 확충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해, 환경권 역시 사회기반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밖에도 화석원료와 핵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적 에너지원 개발을 위해 국가의 투자가 절실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아젠다 6 인문학/이공계 기초학문 확립-탈근대적 평등주의 인문학 확립
인문학 및 이공계 위기를 극복하고, 기초학문의 자리매김을 위한 방안으로는 학문후속세대 양성 방안의 현실화로 의견이 수렴되는 듯하다. 가장 기본적으로 우수한 학문후속세대가 지속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임정빈 교수는 “이공계 연구인력의 병역 제도 개선”을, 심광현 교수는 “인문?자연 분야 연구자들의 일자리 제공”을 제안했다. 병역?구직 문제 등에 있어서 실질적인 혜택을 줄 수 있는 제도 확립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한편 정진농 교수는 “국내대학원의 공동화 현상을 막기 위해, 국내파 연구자들에 대한 국가적인 차원의 보호가 있어야 한다”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보다 거시적인 시선으로 학문 토대 설립의 방향을 제시하는 의견도 있었다. 장시기 교수는 근대성과 탈근대성 논의의 확산과 동아시아 문화담론의 형성으로 서구 중심적 인문학이 아니라 탈근대적 평등주의 인문학의 토대를 확립할 것을 요구했다. 동아시아적?한국적 인문학 설립으로 아젠다를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이한구 교수는 “시대적 상황과 요구에 맞는 인문학의 재정립”을 제기해, 인문학 내부의 변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아젠다 7 외국인 노동자 등 인권문제 해결 -다문화 이해, 인권교육의 확산
인권 문제 특히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 유린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가장 즉각적으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이주노동자를 강제단속하고 추방하는 대신 그들에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거나 적어도 합리적이고 인권적인 방향을 새로이 모색하라는 것이다. 이광수 교수의 △유엔이주민협약에 비준하는 원칙을 세울 것 △이주노동자 강제단속 및 추방 중단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사업연수생제도 폐지 △사업장 이동 자유 보장 주장 등이 그 예. 다문화 교육?인권교육의 확산 등 교육적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 역시 고르게 분포했다. 조국 교수는 “대학의 인권학 강좌 개설을 의무조항으로 할 것, 국가인권위원회의 지방 분소를 설치할 것”을 주장해 인권교육의 확대를 주문했다. 최협 교수 역시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법과 제도 개선으로 국민의식 전환에 기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아젠다 8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노인복지제도 방안 마련- 새로운 부양 모델 정립
노인/아동/장애인 복지 등의 복지 분야의 산재한 과제 중에서도 노인문제 해결의 필요성에 학계의 관심이 모였다. 지난 2002년 가임여성의 1인당 출산율은 1.17명이다. 한국 사회는 저출산과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어, 인구과소사회 및 고령화사회로의 진입이 멀지 않았다는 전망. 그러나 건강 보험?연금 재정의 위기 등에서 볼 수 있듯 이렇다할 논의와 대안은 설정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더군다나 전통적인 가족 형태가 점차 붕괴됨에 따라 노인 부양을 책임질 곳도 불분명한 상태다. 고령사회 진입에 따라 예상되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예측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지적이었다. 윤현숙 교수는 △고령자 취업 유도 방안 △실버산업의 전망 등을 논의 과제로 제출했다. 노인을 요보호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생산계층으로 흡수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함인희 교수는 “서구식 개인주의적 모델의 장점과 우리식 가족주의 모델의 장점을 결합해 한국적 부양모델의 정립”을 요구하면서, 새로운 가족 모델의 모색을 과제로 제시했다.

아젠다 9 평화 생명 가치의 확산 - 이반 일리치의 반산업주의 사상 고찰
문화저변을 형성해 나갈 변화의 원동력으로는 평화/생명 가치의 확산이 꼽혔다. 이라크 전쟁과 관련해 반전과 세계평화 등의 거시적인 논의뿐만 아니라, 보다 일상적인 측면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억압의 문제를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바탕으로 해결하겠다는 흐름이 특징적이다. 예를 들면 윤현숙 교수가 “가정 폭력 아동?노인 학대, 한국남성의 폭력 문화 등의 일상적인 폭력 문제 해결에도 생명과 평화 가치의 확산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한 부분이 그렇다. 이밖에도 환경 문제 해결에 있어서의 생명 의식 확산, 질병?재난 문제해결에 있어서의 생명 의식 확산 필요도 지적됐다. 김명인 황해문화 주간은 “6.15 남북공동선에 기초한 평화통일안 마련, 국가보안법 폐지, 북한을 포함한 국비축소 논의 본격화 필요” 등을 지적해, 국제 평화의 기틀 마련안을 제출했다. 한편 이승렬 교수는 이반 일리치의 반산업주의 사상에서 해답을 구하기도 했다. “이웃한 모든 생명의 존엄함을 나의 존재와 연결시키는 사상의 확립과 확산”이 전반적인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아젠다 10 지역 분권 및 지방 자치 - 지역주민의 참여민주주의 확립
지난 7월 참여정부는 자립형 지방화, 분권형 선진국가를 목표로 지방분권 비전과 종합 청사진을 담은 ‘지방 분권 로드맵’을 발표했다. 각종 이견이 분분한 가운데로 정부의 행정수도 이전 문제는 진행되고 있다. 이런 현안들의 진행 때문에, 행정 수도 이전 및 지방분권 3대 특별법의 실행 등의 법안 때문인지 가시화된 현안의 조속한 시행을 촉구하는 의견이 주류를 이뤘다. 그러나 “단순히 중앙의 권력 분화라는 생각 대신, 지역주민들의 참여민주주의 확립과 전문가?관료 중심의 사회조직을 해체해야 한다”, “중앙정부 권한 지방이양과 획기적인 재정분권‘에 대한 요구도 있었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