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07:10 (금)
자본과 이데올로기
자본과 이데올로기
  • 조재근
  • 승인 2020.06.05 09: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본과 이데올로기.
자본과 이데올로기.

 

토마 피케티 지음 | 안준범 옮김 | 문학동네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사회의 불평등을 정당화 혹은 ‘자연화’하는 정치적-이데올로기적 동역학을 분석한다. 이를 위해 피케티는 ‘불평등주의체제’와 ‘소유주의 이데올로기’라는 두 개의 핵심 개념을 축으로 역사 속 다양한 사회들을 역사 자료와 통계 데이터로써 종횡하는데, 이로써 그가 궁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바는 현대의 극단적인 부의 집중과 불평등이 고정불변일 수 없다는 점이다. 피케티는 1980년대 이후 증대된 21세기의 불평등이 1차대전 발발 직전 최고조에 달했던 ‘벨에포크’ 시기(1880~1914년)의 불평등에 비견될 만큼 심화되어가고 있으며, 공동선을 명분으로 정당화되기가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본다.

즉 뉴딜정책과 소득과 자산에 대한 강력한 누진세가 불평등을 완화하고 경제적 번영을 이끌었던 20세기 중반 이후, 레이건과 대처로 상징되는 ‘보수혁명’을 거쳐 사적소유에 대한 절대적 신성화를 기반으로 한 소유주의 이데올로기가 다시금 강력하게 부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선형적이지 않을지언정 인류의 진보를 향해 진전되어왔다. 피케티는 한 사회의 불평등은 그 사회의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통해 정당화되고 고착되기도 하지만, 사회를 다른 형태로 전환시키는 힘이기도 하다는 것을 역사학적이고도 경제학적인 연구를 동원해 매우 실증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피케티는 서문에서 “불평등은 경제적인 것도 기술공학적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치적인 것이다. 이것이 분명 이 책에 제시된 역사 연구의 뚜렷한 결론이다”(19쪽)라고 밝히고 있다. 『21세기 자본』이 불평등과 재분배를 둘러싼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진화를 일종의 블랙박스처럼 다룬 한계를 지녔다고 자평하는 피케티는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이를 정면에서 다루고자 한다. 따라서 이 책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불평등이 경제 논리에 의한 필연이 아니며, 사회의 지배이데올로기와 정치적 세력균형에 따라 형태를 달리해 진화해왔다는 점이다.

책의 1부는 사회적 불평등과 그 정당화의 기원을 다룬다. 특히 근대 이전의 전사(귀족)-사제(지식인)-제3신분(노동자와 농민)으로 이루어진 삼기능적 신분사회가 프랑스혁명이라는 단절을 경유해 19세기 서유럽에서 만개한 소유자사회로 전환되는 과정을 기술한다. 2부는 유럽 열강의 제국적 식민주의를 통해 한 사회의 불평등이 그 내부와 외부를 가로지르며 전개되는 모습을 기술하는데, 특히 식민지배의 종언에서 유럽 국가들이 가장 공을 들인 것이 식민지 피지배 노예들에 대한 배상이 아니라, 유럽인 노예소유자들에 대한 배상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적소유’가 불가침의 신성한 권리로 완성되는 데는 정치체제와 소유체제가 불가분의 관계로 부단히 연결되어온 역사적 과정이 놓여 있다는 것이다.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볼셰비키혁명과 양차대전, 유럽 사민주의사회의 출현을 거치며 세계의 불평등은 역사적으로 가장 완화된 형태를 띠게 되었으나, 냉전과 1980년대 이후 미국과 서유럽의 보수 우경화 및 소련과 공산주의의 몰락을 거치며 21세기에 불평등이 다시금 폭발적으로 증대하고 있다는 점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책의 3부와 4부는 금융자본의 세계화와 초집중, 조세피난처로 상징되는 불투명성으로 인해 한 국가 안에서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재분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현시대를 다룬다.

이에 대한 분석과 더불어 부의 불평등이 세대를 건너 대물림되며 더욱 집중되는 현상, 유럽 사민주의 정치가 재분배를 향한 야망을 포기한 대가, 구舊공산국가 지배자들의 과두지배와 재정 불투명성, 엘리트 중심의 교육 불평등으로 심화되는 소득 불평등 등 모든 것이 20세기 중반에 상대적 평등을 실현했던 계급정치의 실종으로 귀결되었음을 보여준다. 과거 노동자들의 정당이었던 좌파 정당이 고학력자들(고소득자들)의 정당으로 바뀌어가고, 전통적인 상위 자산 보유자들의 정당인 보수 정당들이 사회토착주의를 통해 가난한 50%를 유인하게 되는 현재의 정당정치가 전 세계적 현상임을 증명하는 장들은 이 책의 백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