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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 과학이라는 발명(Invention of Science)
[책을 말하다] 과학이라는 발명(Invention of Science)
  • 교수신문
  • 승인 2020.06.04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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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지식이란 과연 무엇인가
정태훈
정태훈 교수(동아대)

과학이라는 발명(Invention of Science)

데이비드 우튼(David Wooton) 지음 | 정태훈 옮김, 홍성욱 감수 | 김영사 | 1016쪽

우리는 과학으로 만들어진 세계에 살고 있다. 이것은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가? 데이비드 우튼의 역작 《과학이라는 발명》(2015)의 주제는 유럽의 근대 과학을 태동한 17세기 과학혁명이다. 근대 과학의 발전이 꾸준하고 연속적인 것이었느냐 아니면 본질적인 수준 상승을 지닌 도약이 일어났느냐의 문제는 많은 역사가, 철학자, 과학자들의 관심사요 논쟁거리였다. 찰스 밴 도렌은 《지식의 역사》(1991)에서 “새로운 지식을 획득하는 방법이야말로 서구사회가 세상에 선보인 모든 지식 중에서 가장 귀중하며 1550년에서 1700년 사이에 일련의 유럽 사상가들이 이 ‘과학적 방법’을 창안했다”고 말했다.

1930년대에 위대한 과학사가 알렉상드르 쿠아레는 이 사건을 ‘과학혁명’이라고 불렀다. 이 용어는 루퍼트 홀의 《과학혁명》(1954) 이후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19세기의 역사가들에게는 유럽을 근대로 밀어 넣은 동인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었지만, 홀은 16세기 시작된 수리물리학과 사실들의 발견에 주목했다. 그러나 과학사회학자 스티븐 셰이핀은 그의 《과학혁명》(1996)에서 과학혁명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현재의 과학사 연구의 주류는 근대 과학이 ‘패러다임의 전환’이며 중세 과학에서 연속적으로 발전했다는 연속성 논지(데이비드 린드버그의 《서양과학의 기원들》(1992)이 그 전형적인 예다)를 견지한다. 

이에 비해 이 책의 저자는 근대 과학은 튀코 브라헤가 신성, 새로운 별을 관찰한 1572년과 뉴턴이 《광학》을 출간한 1704년 사이에 ‘발명’되었고, 이 새로운 과학이 ‘혁명적’이었음을 강조한다. 저자는 근대 과학을 잉태한 유례없는 지적·문화적 혁명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 역사를 설명해온 지배적인 정통적 견해에 주요한 도전을 제기한다.

저자는 콜럼버스와 지리상의 발견,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수륙지구 개념의 대두, 망원경의 발명과 갈릴레이의 목성의 위성 발견, 인쇄술의 발명, 발견과 발명의 우선권, 뉴턴의 《프린키피아》와 《광학》의 출간 등 우리에게 익숙한 여러 사건들의 전개를 통해 ‘자연을 탐구하고 개념화하는 방식의 변화’를 통찰해낸다. 이 책은 과학의 탄생, 과학의 초창기에 대한 이야기이자, 과학이 위대한 거인이 되어 우리를 그 그림자 속에서 살게 만든 특별한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치밀하면서도 유려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쿠아레에게 과학혁명은 ‘자연의 수학화’의 출현과 승리였고, 실험과 경험은 새로운 과학에서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측면이었다. 쿠아레는 과학의 진정한 발전은 실험과 경험에 의해서라기보다는 플라톤적, 수학적 사유의 틀 속에서 일어난다고 보았다. 이러한 수학적 관점의 영향으로, 근대과학의 기원을 설명할 때 전통적으로 천문학과 역학에 많은 부분이 할애되어왔다. 하지만 이 책은 물리학, 화학, 의학, 생명과학도 근대과학의 탄생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자연의 수학화’와 더불어 실험과 경험의 ‘비수학적’ 측면도 균형 있게 다룬다.

과학이라는 발명
과학이라는 발명 / 김영사 

 

또한 유용한 지식의 탐구에 참여한 유럽 지식인들, 엔지니어, 기계공, 장인, 산업가, 발명가들과 이들 사이에 있었던 지식의 교류가 근대과학의 탄생에 기여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우튼은 ‘근대 과학을 특징지은 것이 실험의 수행이 아니라 발견들을 평가하고 그 결과들을 재현할 수 있는 비판적인 전문가 공동체의 형성에 있다’고 말한다.

한편 이 책은 미술과 근대과학의 관련성에 주목하면서, 컬러도판으로 많은 르네상스 원근법 회화를 싣고 있는데, 그것의 기하학적 원리들이 천문학자들로 하여금 어떤 물체들―새로운 별들―이 천체에서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지를 규명하기 위해 그것의 거리를 측정하는 데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했고, 그러한 활동은 자연을 파악하는 일에서 수학의 능력에 관한 새로운 확신을 확립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책의 핵심적인 부분은 과학에 관해 사고하고, 이야기하고, 서술하기 위한 새로운 언어의 발전에 관한 것이다. 이 새로운 과학은 단지 새로운 발견들이나 방법들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았다. 그것은 지식이 무엇인가에 관한 새로운 이해에 의존했다. 이와 함께 발견, 진보, 사실, 실험, 가설, 이론, 자연 법칙 등 신선한 언어가 출현했다. 비록 이 모든 용어들이 1492년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그 의미는 급진적으로 변화하였고, 그것들은 과학적으로 사고하는데 도구가 되었다. 이제 우리 모두는 과학혁명 동안에 발명된 이 과학 언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과학적 질문에 대해 사고할 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거의 전적으로 17세기의 구조다. 이 언어는 과학이 진행되었던 혁명을 반영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그 혁명을 가능하게 했다. 저자는 산업혁명의 과학적 기원을 탐색하면서, 산업혁명은 이전에 생각된 것보다 더 일찍 일어났고 과학혁명에 더 가까웠음이 드러났다고 주장한다. 이후의 과학혁명들(양자역학, DNA, 디지털 혁명 등)은 자연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크게 변화시켰지만 우리의 지식 개념을 해체하여 재구성하는데 이르지는 않았다. 

과학혁명의 실재성을 인정하는 것은 과학 지식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와 직결된다. 과학 지식에 대해서는 두 대립적인 관점을 존재한다. 한 관점은 우리가 도달하게 되는 지식은 문화적으로 상대적이고, 우연히 발견되고, 특이성이 있는 것으로 바라보지만, 다른 하나의 관점은 우리가 얻게 되는 지식은 상식적이고 예측 가능하고 필연적인 것으로 본다.

토머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1962)에서 이들 사이의 긴장에도 불구하고, 혁명기 과학과 정상 과학을 구분함으로써 양쪽의 관점을 견지하려고 노력했다. 쿤은 “혁명의 결과는 문화적으로 상대적이고, 우발적이고, 특이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진전이 정상이 되는 안정기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저자도 쿤과 같은 입장에 서서, 최상으로 정립된 과학적 이론도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것들이 신뢰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과학은 진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한다. 방법과 실행으로서의 과학은 사회적 구성물이지만 지식 체계로서의 과학은 사회적 구성물 이상의 것이다. 왜냐하면 과학은 실제 사실에 부합될 때 성공적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상대주의와 실재론 사이의 중도적 입장에 서서 과도한 상대주의를 배격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매일 매 순간 근대 과학의 신뢰성을 증명하고 있다. 과학의 한계와 강점을 모두 인식하는 데에는 회의론과 자신감의 특이한 혼합이 필요하다. 상대주의자는 과도하게 회의하고, 실재론자는 과도하게 확신한다. 따라서 우리의 과제는 어떻게 흠 있고, 대단히 우발적이고, 문화적으로 상대적이고, 너무나 인간적인 과정으로부터 신뢰할 수 있는 지식과 과학적 진보가 초래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정태훈 (동아대학교 신소재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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